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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critical biography 103019
생명의 존귀함과 가치에 대해 깊이 사색하다
[무위당 장일순 평전 28회] "작은 벌레도 거룩한 스승이다"



▲ 무위당 장일순 선생 기념관 ⓒ 김수종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울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동학은 대단히 심오하고 원대한 민족종교사상이다. 하여 이를 압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장일순이 동학의 생명사상을 설명한 것을 한 인터뷰어는 이렇게 정리했다.

동학은 물질과 사람이 다같이 우주생명인 '한울'을 그 안에 모시고 있는 거룩한 생명임을 깨닫고 이들을 '님'으로 섬기면서(侍) 키우는(養) 사회적, 윤리적 실천을 수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을 자기 안에 통일하면서 모든 생명과 공진화해가는 한울을 이 세상에 재현시켜야 할 책임이 바로 시천(侍天)과 양천(養天)의 주체인 인간에게 있다고 한다. (주석 1)

1970년대 중반 이후 장일순의 활동의 기조는 동학정신(사상)의 실천에 기초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생명사상이 그 본질이었다. 시인 김지하가 감옥에서 나와 "선생님 운동의 방향을 바꾸셨더군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 그걸 자네 어떻게 아는가?
난 사실은 77년서부터 결정적으로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네. 땅이 죽어가고 생산을 하는 농사꾼들이 농약중독에 의해서 쓰러져가고, 이렇게 됐을 적에는 근본적인 문제서부터 다시 봐야지. 산업사회에 있어서 이윤을 공평분배하자고 하는 그런 차원만 가지고는 풀릴 문제가 아닌데.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꿔야 되겠구나, 인간만의 공생이 아니라 자연과도 공생을 하는 시대가 이제 바로 왔구나 하는 것 때문에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지. (주석 2)


장일순의 동학 특히 최시형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파격적이고 또한 사실적이다. "왜 그렇게 최시형 선생님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답변이다.

최시형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거룩한 스승 아닙니까? 그분이 안계셨다면 3ㆍ1만세운동이라든가 망국의 한을 갖다가 어디에 기초하고 뭘 할 수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분이 계셨기에 손병희 선생이 계셨고, 또 3ㆍ1만세운동도 됐고, 또 하나는 아시아에 있어서 뭐냐하면 식민지 상황에 있던 중국이라든가 인도에도 커다란 각성운동을 준 게 아닙니까? 그래서 최시형 선생이 대단한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석 3)

장일순이 동학의 최시형을 부활시킨 것은 호기심에서 '역사인물 복원'의 차원이 아닌 그 정신과 철학을 복원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곧 생명운동이다.

동학사상을 단지 잊혀졌던 지식의 복원이라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오늘날 가장 필요한 삶의 실천적 원리로서 살려낼 수 있었다는 점에 장일순 선생의 커다란 공로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상이건 그것이 살아있는 것으로 되려면 우리에게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건전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정신적 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일순 선생은 동학의 한울님사상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계의 모든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증하는 생명사상으로 읽어내고, 이것을 현실의 사회생활에 적용하여 한 살림공동체운동으로 풀어내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 나름의 가장 실질적인 녹색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으로서 한살림운동이 원주에서 처음 실천에 옮겨졌던 것이다. (주석 4)


장일순이 살아오면서 한 일이 다양하지만 알짬이라면 최시형의 사상을 모태로 하고 자신의 철학을 보태어 정립한 생명사상일 것이다.

생명경시, 물질만능의 세태에 생명존중을 시대적(미래적) 가치로 제시한 일이다. 생명은 우주만물의 근원이고 중심이다. 생명이 없는 사회ㆍ지구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부처의 말씀도 '독존(獨尊)'이라는 한자식 표현에도 불구하고 근본 뜻은 생명의 존귀함을 말한다.

영어의 'life' - 불어의 'vie', 독일어의 'Leben' - 를 우리말로 대개 '생명'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며 쓰는 '생명'이라는 말에는 그 단어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어떤 다른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명이라는 글자를 풀이해보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감 잡을 수 있다.

'생명(生命)'에서 생(生)이라는 글자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한다. 이 글자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의미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늘과 땅의 큰 힘을 받고 땅을 뚫고 하늘을 향해 새 싹을 틔워 그 사이에 존재하게 됨'이다. 생명에서 명(命)이라는 글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命)은 '입 구(口)'자와 '명령할 명(命)'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주석 5)


장일순은 최시형의 생명사상에 접하기 전에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있었다. 어릴적에 따르던 형을 잃은 아픔을 겪고, 6ㆍ25한국전쟁 과정에서 뭇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도 총살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학창시절 4ㆍ19전사들의 주검은 바로 곁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평화통일론자 조봉암을 사법살인하고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관련 청년 8명에게 누명을 씌워 죽였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다가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전쟁으로 죽고 권력이 죽이고 각종 재해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상하고 죽었다. 인명(人命) 뿐이 아니었다. 산업화의 이름 아래 아름답던 자연이 파헤쳐지고 과수원과 논밭에는 각종 농약이 살포되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장일순의 생각은 깊어갔다.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생명의 존귀함과 더불어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가끔 한밤에 풀섶에서 들려오는 벌레소리에 크게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萬象)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시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면 내 일상의 생활은 생활이 아니고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이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의 작은 벌레가 엄숙하게 가르쳐 줄 때에 그 벌레는 나의 거룩한 스승이요, 참 생명을 지닌 자의 모습은 저래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주석 6)


<주석>
1> 송향숙, <늘 깨어 있는 사람>, <생활성서>, 1990. 6.
2> 황필호, 앞의 MBC TV 인터뷰.
3> 앞과 같음.
4> 김종철, <한살림운동과 공생의 논리>, <녹색평론>, 1992년 11~12월호,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169쪽.
5> 이기상, <생명, 그 의미의 갈래와 얼개>, <우리말 철학사전(2)>, 우리사상연구소 엮음, 127쪽, 지식산업사, 2002.
6> 장일순, <삶의 도랑에서>, <나락 한알 속의 우주>, 8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1월 03일, 일 10: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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