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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Beyond evangelical beliefs-2 091819
복음주의 신앙을 넘어서(중)
[읽는설교] 이사야서 53:2~6


(서울=코리아위클리) 길희성 형제(한국 새길교회 신학위원)

복음주의 신앙의 문제

지금까지 나는 ‘복음주의를 넘어’를 말하기는커녕 진정한 죄의식이 무엇이고 복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했다. 오히려 복음주의 신앙의 장점에 대해, 왜 복음주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복음주의 신앙을 넘어>를 말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나라 복음주의 신앙이 그 원조 격인 미국 복음주의와 더불어 너무나 심각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받아야 마땅한 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그 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개신교의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넘어 새로운 복음주의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이제부터는 이 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첫째, 나는 말끝마다 죄를 들먹이는 우리나라 복음주의자들이 정말 진정한 죄의식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말로는 툭하면 죄인이라고 하지만 일단 교회 밖을 나가면 죄의식과는 무관하게 산다. 뻔뻔하기 짝이 없이 산다. 교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사회로,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갑질'을 일삼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사는 '독실한' 신자들이 많다. 정치인들, 고위장성들, '성공한' 기업인들, 교장이나 교감, 그리고 일반 교사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많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이나 학생들에게 교회에 나가라고 압력을 가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우리 한국인으로서 여리고 여린 죄의식의 소유자를 들라면, 지체 없이 2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청년 윤동주를 말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사랑하는 그의 시구 가운데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구절이 있지만, 정말 우리사회에는 인간 이하로 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는 뻔뻔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 가운데는 복음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경건한’ 신자들이 적지 않아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조롱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나 사회적 특권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부채의식 같은 것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기며 당연시한다.

둘째, 한국 복음주의 신앙이 지닌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점은 진정한 죄의식 없이 말로만 죄를 외치고 말로만 은총을 떠들다보니, 신앙과 은총이 공허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십자가는 오직 예수의 몫이고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여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아무런 자기희생이나 수행의 노력 없는 싸구려 은총(cheap grace)으로 복음이 변질된다. 그야말로 공짜 은총을 남발하다 은총이 ‘자동적으로 주어진 기계적 은총,’ 공허한 은총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죄와는 무관하게 2000년 전 한 유대 청년의 죽음으로 인해 온 인류의 죄가 자동적으로 사하여졌다는 공허하기 짝이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복음, 말하자면 2000년 전 머나먼 지역 어디선가 하나님과 당신의 아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무슨 ‘거래’ 같은 사건으로 느껴진다.

셋째, 복음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진짜 죄의식이 없다는 것, 죄 사함이 정말로 복음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강한 기복신앙에서 잘 드러난다. 복음주의에서는 죄의 문제가 최대 문제이고 최대 관심사이며, 당연히 죄 사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최대 은총이고 축복인데, 정작 한국 복음주의자들의 신앙행태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사람 모두가 바라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약속하는 기복신앙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세상적 축복에다 신앙의 초점을 맞추는 신앙의 이해를 ‘번영복음’(prosperity gospel)이라고 부른다. 복음주의 신앙인일수록 기복신앙에 더 열심이다. 기도를 해도 출세와 세속적 축복이 주관심이다. 복음주의와 기복신앙은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복음주의 신앙은 기복신앙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늘 붙어 다닌다. 믿고 기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린다고 하며, 하나님께 윽박지르듯이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내 아이, 내 가족의 건강이나 출세를 벗어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기복신앙은 결국 기적신앙이기 때문에, 한국 복음주의 신앙인들은 주로 기적체험을 강조하는 신자가 많다.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세상의 복을 얻으려는 것처럼 얌체가 어디 있는가? 병이 낫는 것도 공짜, 대학입학과 취직도 하나님 빽으로 공짜, 그리고 영생과 구원과 천국도 다 공짜라고 하니, 그저 교회만 다니면 된다고 하니, 한국 복음주의신앙은 모두 ‘공짜’ 병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의존하고 복을 구하는 신앙 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신앙인에게 무엇이 참 ‘복’이냐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것이 복이 아니고, 심지어 죄 사함마저도 주된 복과 은총이 아니라 물질적, 세속적 복이 주된 관심사이다.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가치관을 추구하다 보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상을 더 어지럽히는 사람이 되기 쉽다. 세상의 질서와 가치와 긴장 속에서 도전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대신 세상과 짝하는 종교가 되고 만다. 기적신앙은 자칫 이기적이고 얌체 같은 신앙인을 양산하기 쉽다. 하나님 자신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는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복음주의 신앙은 성서문자주의 신앙과 연계되어 있다. 기복신앙과 마찬가지로 성서문자주의 역시 복음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함에도 그렇다.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말하고 죄의 용서를 말하는 메시지는 요한복음이나 로마서, 갈라디아서 정도면 충분할 터인데, 굳이 무리하게 성서 전체가, 구약성서까지 포함해서 일점일획이 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근본주의 신앙을 고집한다. 그렇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데도 말이다. 구약성서까지 통틀어서 성경 전체를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숭배자들'이디.

복음주의 신앙의 다섯 번째 문제는 이웃종교에 대한 지독한 배타주의이다. 우선, 불교를 위시한 이웃종교인들이 아무리 도덕적이고 깊은 영성을 지녔다 해도, 아무리 각고의 수행을 한다 해도 갈 데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지옥을 면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감히 그렇게 말은 못하지만, 부처님과 공자님도 예외가 아니라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죄의 문제는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수용하는 길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지성과 상식, 그리고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일반적 은총과 도덕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원죄, 즉 자신의 노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뿌리 뽑을 수 없는 죄악성을 강조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개신교계가 들썩였지만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신앙’을 외치는 개신교의 ‘오직주의’는 이제는 자랑이 아니라 치명적 약점이고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오직주의는 오늘의 한국 개신교를 형편없이 저질화시킨 주범이기 때문이다. 오직 신앙, 오직 은총만 외치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생각은 설 자리가 없다. 우리 같은 죄인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따르고 본받을 수 있는가 하고 포기한다. 그리고 따를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갔기 때문에 이 은총만 받아들이면 되는데, 굳이 예수를 본받아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예수를 따라서 살려고 해도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도덕적 노력이나 영적 노력을 하는 것은 예수를 통해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을 거부하는 우리의 자만이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공로주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종교, 이런 개신교의 모습이 복음의 저질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세상의 종교치고 그 창시자의 삶을 본받을 수 없다고, 본받을 필요가 없고, 본받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종교가 세상 천지에 개신교 복음주의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은총의 신학이 중세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해방시키는 그야말로 ‘복음’이었지만, 이제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타락시키고 망치는 주범임을 기억하자.

여섯째,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해를 개인의 죄의 용서에만 치중하다보니, 복음주의 신앙은 대체로 사회문제, 사회정의 같은 문제에 관심이 없고 역사의식 같은 것도 없다. 정치니 사회니 역사니 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복음주의 신앙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그런 것을 떠드는 성직자나 신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원칙을 위배하고 개인적으로 무슨 출세의 야심을 가진 자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고발하고 심판한단 말인가, 누가 감히 사회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라고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이며 오십보백보인데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양비론을 전개한다. '적폐청산'을 말하니까, 너희들이 그럴 자격이나 있는가 하면서 '신적폐세력'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오늘의 개혁세력이 언젠가는 신 적폐세력이 될 가능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경계해야만 한다. 개혁세력,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늘 겸손해야 하고 늘 자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오십보백보라고 하면서 가만히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다 개인으로서는 죄인이기에 언제나 자기를 성찰하고 언제나 겸손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덜 악한 집단, 더 좋은 세력, 역사의 발전을 이끌 더 적합한 세력이 있고,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더 악한 세력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가만히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여전히 더 큰 악이 있고 덜한 악(lesser evil)이 있기 마련이다.

복음주의자들이나 맹목적인 보수주의자들은 모두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혹은 공범이 되었던 악을 은폐하고 물타기하려고 한다. 누가 감히 사회를 개혁한다는 말인가 하고 제법 옳은 말을 하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그나마 자그마한 역사의 발전이나 사회개혁도 없을 것이 자명하다. 그뿐 아니라 현실이 있는 그대로 좋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현실참여를 거부하면 현실이 그대로 정당한 것이 된다. 정치참여나 사회참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안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참여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하는 놈들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아예 투표를 하지 말자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 도덕적이고 혼자 잘 난체 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자기 혼자 의롭고 올곧은 사람인양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느라 목에 힘을 주지만, 주로 양비론이다. 실제로는 결국 현존하는 악을 용인하자는 말과 별 차이 없다. 투표 안 하는 것 자체가 투표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복음주의자들처럼 인간의 죄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역사참여, 사회참여, 사회정의를 위한 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명한 그리스도교 윤리학자, 신학자가 있다.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다. 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는 아직도 필독의 명저다.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부도덕한 사람은 물론이고 도덕적 인간, 도덕을 외치며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도 부도덕한 사회에서는 무력하기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개인의 선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개인의 선한 의지도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따른다는 것이다. 지난번 민주당 경선 후보 경쟁에서 모든 정치인의 선의를 믿는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사람이 생각난다. 또 현재 대통령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자주 들린다. 니버가 보았다면, 이 모든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나는 지금 정치를 예로 들었지만, 정치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 문제를 놓고 신학사상을 논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인간관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인간의 죄악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나친 비관주의다. 흔히 루터교 신학(Luteranism)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모두가 죄인이고 다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에는 옳은 면이 있음에도, 그래도 사회에는 더 진보적인 세력이 있고, 잘못된 현실에 눈을 감으려는 더 수구적인 세력이 있는 법이다. 복음주의는 곧 보수라고 하면서 태극기 집회 같은 데 앞장서는 세력이 있다. 과거 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려는 복음주의 신자들이 꽤 많다. (다음호에 계속)
 
 

올려짐: 2019년 9월 26일, 목 11: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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