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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Grandfather in 'Baekbum Daily Log' wishes to be rtecognized as an independent meritorious man" 071719
“백범일지에 나오는 할아버지, 독립유공자 인정 받았으면”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안악사건’ 정달하 후손 정상호씨(상편)



▲ <코리아위클리> 사무실 앞 건물에서 포즈를 취한 잭슨빌 거주 정상호씨(81).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정달하 선생은 <백범일지>와 한국독립운동사에도 등장한다. ⓒ김명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드러나지 않은 독립유공자 발굴에 힘을 쓰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후손을 예우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정부는 지난 2018년 1월 기준 독립유공자의 자녀·손자녀 중 1명에게 보상금 58만7000∼211만7000원을 매월 지급해왔고, 기존 보상금 지급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은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 중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로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526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그 ‘예우’라는 것이 주로 금전적인 것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예우는 독립운동가들의 공로를 한국사회에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각인시키는 것은 물론, 그 후손들이 독립운동가 가족으로서 대대로 무한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 믿는다.

본보와 <오마이뉴스>,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사이트 등에 7차례 이상 연재될 ‘북미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기획 시리즈는 북미주 거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을 추적하여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하고 현재와 후대 한국민들의 애국.애족적 삶의 본을 삼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편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에 대한 추적은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상당수의 가짜 독립운동가, 변절자, 친일파들까지 버젓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가하면 그 후손들은 ‘독립운동가 가문’임을 내세워 사회적 예우를 받으며 민족적 정의와 ‘역사’를 욕보이고 있다.

마침 임시정부 수립 및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서' 연재물이 민족적 정통성을 되찾고 역사 바로세우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며, 엄혹한 시절 풍찬노숙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애국 독립지사들과 구 후손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의미있는 일이 되기를 빈다. (기자 주)


“친일한 사람들은 당대에 떵떵거리며 자식을 유학 보내면서 해방 후에도 후손이 잘살 수 있었고, 독립운동 하신 분은 가족을 제대로 못 돌봐 뿔뿔이 흩어지거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해 자식까지 오랜 세월 고생해야 했습니다.(중략)

아주 먼 여러 나라에서 이렇게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고생들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가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후손들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3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8개국 64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한 다짐이다. 특히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해외에 머문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 앞에서 나온 발언이라 해외 한인사회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정권 초기부터 해외에 숨겨져 있던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서 제도적(만경대혁명학원 설립)으로 가시적으로 각별하게 예우해온 사실에 견주면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크게 다행한 일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정부는 작년 4월 독립운동가의 포상기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며 "투옥 사실 등이 공식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더라도 일기·회고록 같은 자료를 반영하고 학생의 경우 독립운동으로 퇴학당한 분들도 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해외에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살고 있다. 플로리다 지역만 하더라도 삼일절 또는 광복절 기념식 등에서 독립 운동가 후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정부로부터 독립 유공자로 일찍 인정을 받은 분들이 있는가하면, 이런 저런 ‘규정’ 때문에 ‘방치’되어 있는 유공자 후손들도 있다. ‘먼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후손들은 독립운동가 선조들에 대한 것은 물론 자신들이 그 후손이라는 사실마저도 가물가물 잊고 살아간다.

“할아버지는 백범 선생도 인정하는 독립운동가”

최근에 <코리아위클리>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독립운동가 후손 찾기’ 연재 공고를 내자, 의외의 연락을 여러 건 받게 되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어쩌면 짐짓 모르는체 숨겨 두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다는 듯 직접, 또는 간접으로 연락을 해 왔다. 독립운동가 가문에 대한 한국사회의 ‘홀대’, 심지어는 ‘학대’라고까지 할 수 있는 치욕스러운 경험이 의식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탓일 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체로 시작부터 절망을 안겨준 한국의 현대사는 혈서로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한 친일파 대통령과 그 아류들의 ‘반공 최우선주의’가 독립운동을 폄하하더니, 이제는 엉뚱하게도 ‘독립운동가=좌빨’이라는 등식으로 ‘학대’하는 지경으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나는 독립운동가 후손입네!’ 하고 어디다 대고 말하기가 마뜩치 않았을 터이다.

잭슨빌 거주 은퇴 의사인 정상호(81)씨가 "우리 할아버지가 백범일지에 나옵니다"라는 전언을 조심스레 건네왔을 때, 기자가 감지한 어투는 ‘이거참, 말해도 될까 모르겠습니다!’였다. 그가 말한대로 ‘살만큼 살았고, 별 평지풍파 없이 말년을 보내고 있는데, 100년 된 할아버지 시대 이야기로 이래저래 오해를 살 것 같은’ 두려움이 묻어나 있었다.

1973년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후 46년 동안 잭슨빌에서 의사로 살아온 정상호씨의 집안 내력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한인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고, 흑인 빈민가에서 의료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지역 한인 신문들과 몇 차례 인터뷰를 했으나 그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 백범일지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주변의 올드 타이머 한인이민자들에게 '닥터 정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란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하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정달하의 독립운동 사실이 기록된 백범일지, 왼편은 1989년판, 오른편은 1979년판(3판) ⓒ 김명곤

만나기 전에 전화로 먼저 확인하면서 그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사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105 사건’(일명 ‘안악 사건’)에 연루된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를 듣고는 귀가 번쩍 뜨였다.

‘105인 사건’이 뭔가. ‘105인 사건’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식민통치를 강화하고, 반일 민족 저항세력들의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수의 신민회(1907년 초에 무실역행務實力行을 방향으로 삼고 안창호, 이동녕, 이승훈 등이 비밀리에 조직한 항일단체) 회원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해 고문한 사건이다.

1910년 12월 데라우치 총독이 압록강 철교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북지방을 순방할 때 그를 암살하려 했었다고 억지 주장한 총독부 신민회원들과 안악군을 중심으로 황해도 일대의 지식층과 재산가 600여 명을 검거했다.

이른바 ‘안악 사건’으로 잡힌 인사들 중에는 김구(金九), 김홍량(金鴻亮), 최명식(崔明植), 이승길(李承吉), 도인권(都寅權), 김용제(金庸濟), 이유필(李裕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안악의 양산학교(楊山學校)와 면학회(勉學會)를 중심으로 애국계몽과 구국운동에 헌신한 독립지사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일본 경찰은 거짓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자행했다. 이를 통해 600명 중 123명을 혐의자로 기소했고, 20회의 재판이 진행된 상황에서 105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105인 사건’으로 알려지게 됐다.

정상호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안악 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이 같은 사실이 <백범일지>에도 나온다고 했다. <백범일지>는 한국의 청소년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힌 책이고, 기자도 오래 전에 읽고 주변에 권하여 돌려 읽힌 책이다.

아직도 서고에 꽃혀 누렇게 변한 1983년 발행된 7판 <백범일지>(1979년 초판 발행)를 뒤져보니 162쪽에 정달하(鄭達河)라는 이름이 들어있었다.

“이번 통에 잡혀온 사람들은 황해도에서 안명근을 비롯하여…, 재령에서 정달하, 민영룡, 신효범, 안악에서 김홍량, 김용제, 양성진, 김구…, 경성에서 양기탁, 김도희, 강원도에서 주진수, 함경도에서 이동휘가 잡혀와서 다들 유치되어 있었다.”

이름도 쟁쟁한 60여명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11번째로 거명된 ‘정달하’는 177쪽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에서 1년을 선고받은 6명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었다. 김구 선생은 양기탁(주범), 김홍량 등과 함께 같은 보안법으로 2년을 선고 받았고, 앞서 강도범으로 15년을 선고 받은 터였다. 주범으로 찍힌 안명근은 무기징역이었다.

정달하에 대한 기록은 1989년에 발행된 <원본 백범일지> 190쪽과 208쪽에도 같은 내용으로 각각 나와있었다. 정상호씨는 출판 연도를 알 수 없는 다른 <백범일지> 200쪽에도 할아버지 ‘정달하’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며 기자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복사본으로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독립운동가 정달하’에 대한 기록은 구글, 네이버, 다음 등의 검색에서 <백범일지>의 기록이 중복되어 나타난 것 외에는 발견할 수 없었으나, 역사학자이자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정운현(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씨의 글에서 기적 처럼 발견하였다. 오래전 오려 두었던 그의 ‘역사에세이’에서 였다.


▲ 1940년대에 촬영한 정달하 선생(앞줄 두루마기를 입은 남성)의 가족 사진.

“국권회복 운동에 거금 3천원 기탁한 정달하”

정운현은 지난 2011년 백범의 친구이자 변절 친일파 김홍량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독립기념관에서 구축한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의 기록을 인용했는데, 그 가운데 정달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정달하(鄭達河)와 함께 안동현(安東縣)에 이주하여 이곳에서 농업과 무역회사를 공동 경영하면서 이곳에 독립군 기지와 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한국 청년들을 훈련시켜서 독립 전쟁을 일으켜 국권 회복을 이룩할 준비로서 1910년 12월 김홍량이 8500원, 정달하가 3000원을 내고 본격적 준비를 진행하였다.”

위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에 토대하여 좀더 풀이하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안악읍에 양산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한 김홍량이 양기탁, 안창호 등이 주동이 되어 결성한 신민회가 만주에 무관학교를 만들 때 만석꾼 정달하로부터 3000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민속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당시 경인선 여객 운임이 1등석 1원 50전, 보통학교 수업료 1원(1919년), 보통 사람 하루 생활비 5∼20전(1925년)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재 화폐 단위로 단순 환산하면 대략 수억~수십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보여진다.

독립운동가 정달하에 대한 족보적 기록은 정상호씨가 보관하고 있는 호적 등본에 잘 나와있다. 호적 등본에는 출생연도가 나와 있지 않으나, 1800년대 중 후반(1850~1870년) 출생으로 짐작되는(정상호씨 추정) ‘재령 사람’ 정달호는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고, 그의 둘째 아들 정선규의 2남 5녀 가운데 차남이 정상호씨이다.


▲ 용산구청이 발급한 정달하(鄭達河) 선생 호적 등본. ⓒ정상호

할아버지와 1년을 함께 산 정씨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달하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늘 성경을 끼고 사는 분이었다. 정달하는 초시에 합격하여 보통의 양반 가문 자제들이 꿈 꾸는 출세의 가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으나, 막 외세가 밀고 들어오던 조선 말엽은 청년들의 꿈을 뒤틀어 놓았다.

특히 정달하의 삶의 본거지인 황해도 재령과 안악 지역은 구한말과 일제 초기에 양산학교를 중심으로한 교육구국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정달하로 하여금 자연스레 독립운동 그룹에 합세하게 만들었다. 일찍이 받아들인 기독교와 신학문의 영향이기도 했다.

정상호씨는 양조장을 운영하며 지방 토호였던 할아버지가 백범일지와 독립운동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 삶을 바쳤으나 ‘재판 기록이 없다’며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아쉬워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4월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투옥 사실 등이 공식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더라도 일기·회고록 같은 자료를 반영하겠다"고 한 약속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호에서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정상호씨의 미국생활이 이어진다.
 
 

올려짐: 2019년 7월 20일, 토 5:3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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