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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 Il-soon critical biography 061219
장일순 선생이 박정희 덕에 다시 '먹장난' 하게 된 사연은?
[무위당 장일순평전 22회] "박정희라고 하는 탄압이 없었으면 그놈의 난초가 생길 수가 없잖은가?"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정치개혁에 나섰다가 좌절하고 교육사업에 투신했으나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순전히 정당성이 없는 권력의 횡포에 눌린 결과이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인도의 성자 간디와 그의 제자인 비노바 바베(Vinoba Bhave)의 비폭력 저항운동(사티아그라하운동)과 자활운동에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 간디는 많이 알려졌지만 비노바는 덜한 편이다.

"비노바는 가장 정당하고 합당하게 인간 간디가 아니라 간디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간디를 진리로 인용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항상 자신은 간디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인도의 거의 모든 사람이 간디의 가장 가깝고 가장 진실한 추종자는 비노바라는데 동의한다." (주석 1)

간디가 다하지 못한 일, 곧 사랑과 설득으로 경제적ㆍ사회적 혁명뿐만 아니라 도덕적 혁명을 수행해야 하는 일을 이어받았다.

"내가 간디 선생의 비폭력의 길을 따라서 양심적으로 근면하게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을 나의 마음이 증언하고 있다. 내가 좋아할 수 있었고, 동화될 수 있었던 그의 사상과 가르침들이 어떤 것이었든지, 나는 내 삶의 매 순간 그것을 온전히 인식하면서 실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주석 2)

장일순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간디와 그의 제자 비노바의 사상ㆍ신념ㆍ실천에 주목하였다.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 자연주의 평화사상, 이웃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에 관심이 모였다. 생의 가장 밑바닥이라는 감옥에서 3년여를 지내면서 세속적인 출세와 명예, 물욕 따위가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해서, 보다 근원적인 삶의 가치를 찾고, 세상의 한 구석이라도 정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진실한, 타인에게 거짓되지 않은 삶을 살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1964년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한다. 사회안전법과 정치정화법 등에 묶인 것과는 상관없이 정치는 하고 싶지 않았고, 일체의 사회활동도 할 수 없는데다 대성학원의 운영에서도 배제됨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농삿일밖에 달리 없었다. 차라리 이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회를 바꾸는 일은 패거리 의식과 야합이 판치는 정치판보다는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밑바닥의 농사짓는 일을 택하였다. 가족의 생계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동안(1965년) 삼남 동천(東天)이 태어나 부양가족도 늘었다.

장일순 집안의 가훈은 할아버지가 지은 "하늘과 사람을 대해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였다. 장일순은 이를 늘 가슴에 새기며 살고자 노력하였다. 농사야말로 이것이 가훈에 알맞은 직업이라 믿었다. 뿌린 만큼 거두고 가꾼 만큼 생산되는 것이 농업이다.

장일순은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이 흙을 망가뜨리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하였다. 이 땅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후손들에게 빌려 쓴 것인데, 이렇게 농약을 뿌려 소중한 땅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이 때의 각심은 훗날 유기농을 강조하고 흙살림, 생명사상에 대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웃들에게 성경의 포도원 주인 얘기를 하면서, 아침에 온 일꾼이나 늦게 온 일꾼이나 똑같이 데나리온을 품삯으로 지급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의식주만큼은 평등해야 한다는 평등사상의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포도농사는 4년 여 동안 계속되었다. 생업이면서 자기수련의 기간이었다. 이웃 농민들과 어울리고 더러는 연대하면서 열심히 포도농사를 지었다. 몇 해 후 신용협동조합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장일순은 틈틈이 시간이 나면 다시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 무위당 장일순 <묵란>. 무위당 장일순 <묵란>. ⓒ 장일순

어렸을 때 차강 박기정 선생에게서 배웠던 글씨(휘호)를 세파에 휘둘리면서 한동안 쓰지 못하였다. 장일순은 글씨를 '먹장난'이라 불렀다. 스스로를 다스리고자 '먹장난'을 시작했다. 사연을 들어보자.

가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 말이지, 박정희씨가 아니었으면 내가 먹장난을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 게야. 그런데 그 박정희씨 덕에 먹장난을 하게 되니까 뭐냐 하면 난초가 나왔단 말이야. 난초란 무아(無我) 상태에서 처리가 되는 건데, 그것을 일컬어 미(美)라 한다면, 박정희라고 하는 탄압이 없었으면 그놈의 난초가 생길 수가 없잖은가? 그래서 내 난초는 박정희씨 덕이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구. 그래 요전번에 근원 김양동 선생한테 난을 하나 쳐드리면서 '정란유래정희공(淨蘭由來正熙公)'이라고 화제를 써 준 적이 있지. (주석 3)

맑은 난을 치게 된 배경을 박정희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 무위당 장일순 <묵란-어머니>. 무위당 장일순 <묵란-어머니>. ⓒ 장일순


주석
1> 비노바 바베 지음, 김문호 역, <비노바 바베, 간디를 만나다>, 9쪽, 오늘의 책, 2003.
2> 앞의 책, 17쪽.
3> 황종렬, <모심(母心):깨진놈들의 감(感)>, <무위당 사람들> 33호, 2010년 11월.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6월 14일, 금 11:4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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