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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Do you know North Korean artificial meat rice? 060519
북한 '눈물의 인조고기밥'을 아십니까
[신은미의 북한 이야기 -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⑥] '고난의 행군' 때와는 달라진 식문화


(LA=오마이뉴스) 신은미 기자 = 2017년 5월 20일 토요일, 며칠간 너무 무리했다. 긴 여행에 이어 평양에서의 일정에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경미에게 오늘의 일정을 묻는다.

"오전에 병원 가시는 일과 오후에 장기수 선생님 방문하시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원하시는 데 있으면 말씀하십시요."
"아냐, 오늘은 두 일만 보고 쉬어야겠어. 경미도 힘들지?"
"아닙니다. 저야 뭐 어린데... 저야 하는 일이 이 일인데요, 일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떠날 때까지 주말도 없이 함께 다녀야 하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근무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아침식사를 마친 뒤부터 호텔에 돌아올 때까지 안내를 맡는다. 저녁때는 집에 전화를 걸어 남편과 아이들의 근황을 묻기도 한다.


▲ 두부밥(왼쪽)과 인조고기밥(오른쪽). ⓒ 신은미

병원에서 지압치료를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 그런데 밥 생각이 없다. 경미를 위해서라도 식당에 가긴 가야 할 텐데... 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뭘 먹을지 결정하기로 했다. 호텔로 가는 도중, 길거리 음식매대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 여행 때 길거리 매대에서 김밥과 몇 가지 음식을 사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경미에게 매대 이야기를 꺼내니 내게 묻는다.

"오마니, 매대에서 파는 '인조고기밥'을 드셔 본 적이 있으시나요?"
"글쎄,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콩으로 만든 건데 고기맛이 나서 인조고기라고 부릅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콩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갖고 만든 음식입니다."

"콩기름 만든 찌꺼기로?"
"긴데 지금은 찌꺼기로 만들지 않고 순전히 온전한 콩으로 만들어서 맛이 좋습니다. 아이들도 아주 좋아합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학교가 파하면 동무들과 매운 양념을 발라 먹는 인조고기밥을 학교 앞 매대에서 사 먹고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 맛이 그땐 얼마나 좋던지... 학교 파할 시간만 기다릴 때도 있었다니까요. 하하."

내 학창시절,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분식집으로 조르르 달려가 떡볶이를 먹던 것과 같다는 생각에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혹시 요즘도 콩찌꺼기로 만든 '인조고기밥'을 파니? 나는 그게 먹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마니 그거 못 드십니다. 정말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으면 몰라도."

2013년 북한여행 때 '니탄국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 자강도(옛 평안북도의 일부) 동포들이 '니탄'이라는 석탄으로 만들어 먹은 국수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대체 그 국수를 인간이 먹을 수는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북녘 동포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뜻에서 기름을 짜낸 콩찌꺼기로 만든 '인조고기밥'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지만, 지금은 석탄으로 만든 '니탄국수'도, 콩찌꺼기로 만든 '인조고기밥'도 더 이상 없단다.

"'인조고기밥'은 매대에서만 팔아?"
"아닙니다. 상점에서도 다 팝니다."

인조고기밥을 사가지고 호텔에 가서 먹을 생각으로 차를 세워 상점으로 들어간다.

국산화 열풍

상점의 식료품부에 비교적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요즘 북한의 상점에 두드러진 현상이 있다. 다름 아닌 '국산화'다. 특히 식료품이 그렇다. 빵, 버터, 소시지 등 모두 북한산이다.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식료품을 비롯한 상점의 많은 상품들이 중국산이었다.

예상외로 북한은 수입에 많이 의존한다. 자체 생산하면 될 것 같은 경공업 제품들도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북한 동포들은 이를 '수입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식료품을 시작으로 국산화의 열풍이 대단하다. 중국산 식품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고. 내가 다른 경공업 제품들의 국산화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경미가 말한다.

"그까짓 경공업 발전은 시간문제입니다. 1년이면 모두 국산화할 수 있습니다."
"근데 왜 안 해?"
"나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 '우선순위'가 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서 국산화가 이뤄져 북한동포들이 생활에 필요한, 품질 좋은 물건들을 싸고 쉽게 구입할 수 있길 바란다.


▲ "국산화"된 북한식품들. 왼쪽 위부처 시계방향으로 아이스크림(에스키모), 소시지, 빠다크림빵(버터크림빵), 빠다(버터). ⓒ 신은미

'인조고기밥'과 또 다른 길거리음식이라는 '두부밥' 그리고 김밥과 야채만두, 물김치를 샀다. '두부밥'은 그 모양이 '이나리스시'(유부초밥)와 똑같이 생겼다. '인조고기밥'은 콩을 갈아 얇은 밀전병처럼 만들어 밥을 싼 것이다. 두 음식 모두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파,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발라 먹는다.

간식용으로 아니면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한 음식이다. 그러나 북녘의 동포들이 '고난의 행군' 당시 먹었던 그 '인조고기밥' 맛은 이보다 훨씬 못했으리라. 북녘 동포들, 특히 여성들은 '고난의 행군' 얘기가 나오면 눈물을 글썽인다. '지긋지긋'했을 '인조고기밥'이 지금은 북녘의 길거리 음식을 대표하는 별미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남파 간첩'과의 재회


▲ "북송 장기수" 선생님 댁에서. 왼쪽이 김동수 선생님, 오른쪽이 최선묵 선생님. ⓒ 신은미

오후 4시, 북송장기수 선생님 댁에 방문한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지난 2015년 6월, 처음 이분들을 찾아뵀다. 당시 우리가 묵고 있는 고려호텔 바로 옆에 북송 장기수분들께서 사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었다.

나는 이분들이 한국전쟁 중 포로가 돼 남한에서 징역살이를 하던 중 고집스럽게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끝내 북송된 분들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분들이 전쟁포로가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 남파됐다가 체포된 소위 '남파간첩'이라는 설명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내가 상상하던 '남파간첩'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였다. 내가 만난 김동수·최선묵 두 분 중 최선묵 선생님은 고향이 경기도라서 말씨도 남쪽 말씨였다. 이분들이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대해 주시던지! 나이가 들면 눈물이 흔해지는 걸까, 아니면 이분들의 본성일까. 촉촉한 눈을 마주치며 내 손을 잡고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던 그분들께 나는 '평양에 올 때마다 꼭 찾아뵙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분들은 전향을 거부하면서 수십 년간 징역살이를 하며 온갖 고문과 폭력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이분들을 만나기 전까지 장기수라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강철같은 심장'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 통념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 "북송 장기수" 최선묵 선생님 부부. ⓒ 신은미

아파트 입구에 마중 나와 계신 김동수 선생님의 안내로 최선묵 선생님 댁에 들어갔다. 사모님은 계시지 않고 여성이 우리를 맞이한다. 최선묵 선생님께 '사모님께선 어디 계시냐'고 물으니 어서 들어와 앉으라는 말씀만 한다.

북송 후 결혼해 맞은 부인은 만수대 예술단 출신의 은퇴 배우였다. 아주 다정해 보이는 부부는 악기 연주와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었다. 그런데 그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신다.

새로 맞이한 부인은 성격이 온화하고 아주 조용한 분이다. 부인이라고 소개는 받았지만, 내가 보기에 새 부인이라기보다는 함께 기거하며 최 선생님을 돌봐드리는 동료라는 생각도 든다.


▲ "북송 장기수" 김동수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 신은미

"지금은 회고록을 쓰고 있다"는 김동수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를 나선다. 이분들을 처음 만났던 날, 아파트를 떠나던 때가 떠 오른다. 남에서는 '간첩', 북에서는 '영웅'. '신고해야만 하는 북괴 남파간첩'과 '본받아야 할 공화국의 영웅' 사이에 존재하는 '분단'이 이젠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었다.

처절한 마음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노래 <직녀에게>를 흥얼거리면서 호텔로 돌아왔던 기억이다. 그 이후 나는 강연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오늘도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호텔을 향해 터벅걸음을 한다.

"서양식 카페는 자본주의가 아냐"


▲ 평양의 서양식 카페, "별무리차집" 메뉴. ⓒ 신은미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경미가 묻는다.

"오마니, 저녁식사는...? 별로 생각이 없으신 것 같은데 기럼 산책 겸 차집(찻집)이라도 가시겠습니까?"

'차집'이라고 불리우는, 분위기 좋은 서양식 카페에 몇 번 간 적은 있지만 멀리까지 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차집? 차 타고 나가기 싫은데... 요 근처에는 뭐 없을까?"
"여기 저기 많이 있습니다. 이 호텔 바로 앞에도 있습니다. 호텔앞 매대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옆에 차집이 있습니다. 산책 겸 가시겠습니까?"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남편이 "어서 가자"며 일어선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이 찻집의 이름은 '별무리차집'. 이름이 얼마나 예쁜지 메뉴 위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는 순간 갑자기 기분이 '명랑'해진다. '별무리차집',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야아~, 이거 남녘 같으면 이름을 '카페 스텔라(Café Stella)' 아니면 '카페 캘럭시(Café Galaxy)'라고 지었을 텐데..."

남편의 이 말을 들은 경미가 눈을 껌벅거리며 남편에게 묻는다.

"이름을 기렇게 지으면 어케 알고 찾아 갑니까?"
"그래도 다 알고 찾아가."
"젊은이들은 영어를 배웠으니 기렇다 치고, 늙은이(북에선 '노인'이란 뜻)들은 어케 압니까?"
"어차피 노인들은 이런 곳에 안 가니까 상관 없는 모양이지."
"여기선 기렇게 이름지었다간 아무도 못 찾아 갈 겁니다. 기렇게 짓겠다는 생각조차 못합니다."

"경미야, 그건 그렇고 이런 서양식 카페가 많이 생겨나네. 일종의 자본주의 풍이 퍼지는 거 아냐? 실내장식도 완전 서양식 카페고."
"이곳에선 서양식 음료와 음식을 파니까 실내도 서양식으로 해놓은 겁니다. 평양에 일본료리 식당들 많지 않습니까. 그 식당들 실내를 일본식으로 해놨는데 기게 일본풍이 퍼진다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 남편의 선입견이다. 사람들은 북한에서 서양식의 뭔가를 보면 '자본주의가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어떤 해외동포는 북한 휴대전화 가입자가 500만 명이 넘는다는 정보를 듣고 '북한에 자본주의가 퍼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회주의 아래서는 휴대전화의 대중화도, 서양식 카페도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자본주의에서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북한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 평양의 서양식 카페, "별무리차집"에서 경미와 음식을 고르고 있다. ⓒ 신은미

메뉴도 다양하다. 서양식도 있고 조선식도 있다. 속이 별로 안 좋은 나는 잣죽, 경미는 와이트소스 파스타, 남편은 조개탕을 주문한다.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웨이트리스가 "방금 구운 것인데 드셔보시라"며 호밀빵을 올리브유와 함께 내려놓는다. 좀 있으니 카페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고트 치즈와 요거트도 서비스로 내준다.

이런 작은 카페가 빵도, 치즈도 직접 만들다니 앞으로 생활수준이 좀 더 높아지면 별의별 것을 다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역시 손재주 많고 뭐든지 금방 배우는 우리 동포들이다.


▲ 평양 "별무리차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고트 치즈. 경미는 이 고트 치즈를 유심히 관찰했다. ⓒ 신은미

경미는 치즈를 좋아하지만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는 좀 경계하는 눈초리다. 조심서럽게 집어 들더니 냄새를 맡아보고는 열심히 관찰한다. 입에 조금 넣고 나서는 자기는 보통 치즈가 더 좋단다. 향이 비위에 안 맞는다고. 요거트도 한 스푼 잎에 넣더니 같은 평을 한다.

호밀빵은 수준급이다. 자그마한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이런 걸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한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찬사를 보낸다.

이 카페에 오길 잘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피로도, 울적한 기분도 사라졌다. 남편이 주문한 조개탕 덕에 불편했던 속이 확 풀어졌다.

산뜻한 기분으로 카페를 나선다. 밤하늘의 '별무리'를 머리에 이고 호텔로 향한다. 밤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6월 06일, 목 6: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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