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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biography 050819
서대문형무소 수감과 부인의 옥바라지
[장일순 평전 15회] 33살에 사상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장일순은 33살의 나이에 사상범이라는 무거운 낙인이 찍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3년 전에 결혼한 아내와 1958년에 태어난 장남 동한, 1960년 출생의 차남 동호(東祜)는 아직 젖먹이였다. 그리고 애써 설립한 대성고등학교의 이사장직도 내놓고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서대문형무소는 병탄 과정에서 일제가 한국의 의병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현대식 감옥이었다. 몇 분 의병장이 이곳에서 처형당하고, 이후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거나 처형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평화통일론자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수감되었다. 조봉암ㆍ조용수를 비롯하여 인혁당 관련 8인도 이곳에서 사형되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가 의병ㆍ독립운동가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던 악의 유산을 이승만 정권에 이어 박정희 군부세력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형용할 수 없는 각종 고문 등 악행이 자행되고, 가장 열악한 것 중의 하나는 형편없는 식사문제였다.

교도소의 주식은 콩을 섞은 보리밥이다. 쌀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잘 보이지 않고 씹히지 도 않는다. 형틀로 꽉 찍힌 것을 한덩어리씩 주는데, 밥덩어리의 크기가 1등부터 4등까지 있다. 1등이 제일 크고 4등이 제일 작은데, 1등부터 3등까지는 기결수 중에서 작업 종별에 따라 주는 것이고, 미결수는 모두 4등이다.

이밖에 환자용은 쌀밥으로 찍은 5등(4등보다 더 작다)이 있고 역시 쌀로 쑨 죽이 있었는데 지금은 5등 밥이 없어졌고, 죽도 보리쌀로 쑨 죽이다. 젊은 사람들은 4등밥으로는 양이 안 차서, 밤낮 먹는 타령만 한다. (주석 1)

가족이 감옥에 갇히게 되면 남은 가족의 생활은 망가지기 쉽다. 5ㆍ16 후 한국사회는 군사정권의 거센 반공정책으로 '안보사범'의 가족은 빨갱이로 취급당하게 되었다. 가까웠던 친척이나 이웃들도 거리를 두게되고, 그래서 생업에도 크게 지장을 받았다.

이인숙은 남편이 구속되어 8년 선고를 받게 되자 직업을 찾았다. 시부모와 두 아들을 먹여살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서울대 사범대를 나왔기에 중고등학교 교사자격이 있었다. 학창시절의 꿈은 좋은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연좌제'에 걸려 이 꿈도 무산되고 말았다.


▲ 서대문 형무소 정문

5ㆍ16이 나고 유치장에 계실 때 (남편이 ㅡ 필자) 원주에 있는 학교에 이력서를 내면 안될 줄 알고, 춘천여고에 이력서를 냈는데, 교장, 교감이 좋다고 하면서 숙소는 어디로 정할 거냐고까지 물어보는 거야. 나는 속으로 다됐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신원조회를 해보더니 안 되겠다고 하는거야. 일종의 연좌제였던 거지. 그때 돌아가신 양반(남편)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좀 많았나.

그때 생각을 하면…결혼할 때 신으려고 명동의 인류 양화점에서 맞춘 구두를 신고 갔는데, 돌아오면서 화가 나서 새 구두를 돌부리에 차면서 돌아왔어. 그 구두 아끼느라고 버선에 고무신 신고 짧은 다후다 치마 입고 다녔는데, 그때 둘째가 갓난아이였는데 젖이 나오지 않아서 잘 먹이질 못했어.

내가 교사가 되면 애는 어떻게 돌보나 하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남편 때문에 교사가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속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나 잘 돌보자는 생각을 하고 바로 단념했지. 내가 자존심이 강해서 바로 단념했어.
(주석 2)

이인숙은 "시집오기 전에는 발 씻는 물도 일하는 언니가 떠다 줄 정도로 애지중지 키우셨는데" (본인 증언)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남편이 구속되면서 차츰 '이념가의 아내'로 바뀌어갔다.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 이인숙은 면회가 어려운 데도 먼 발치에서 남편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서울행을 멈추지 않았다.

옥바라지를 해야 하니까 경희대 앞 회기동 친정집에 둘째 아이를 맡기고, 혁명검찰청을 혁검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재판을 받으셨는데 면회가 안됐어. 나가는 모습을 보려고 매일 영천에 가서 밑에는 낭떠러지가 있는 계단 위에 올라서서 하루 종일 있었어. 그러다보면 죄수들을 호송하는 버스가 떠나면 계단 위에서 보이거든. 면회를 안시켜주니까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해서 아침 일찍부터 회기동을 출발해서 영천까지 다녔어.

그러다가 혁명검찰청으로 재판받으러 가는 남편을 봤어. 그때는 사형도 많이 시켰어. 사형수들을 용수를 씌워서 교수형시킨 뒤 낭떠러지 구덩이에 바로 들어가게 하는 거였어. 형벌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5.16이 나고 처음에 잡혀간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많았거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야.

면회가 안되니까 혁명검찰청으로 취조 받으러 갈 때 죄수번호가 게시되거든. 그때 버스타고 가는 걸 몇 번 봤지. 형무소 밖에 가족 대기실이라고 천막이 있었어. 내가 버선에다 고무신 신고 시골서 왔다고 업신여기고 대기실에서도 상대를 안해주는 거야. 시골촌 아낙이 왔다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 장도영 장군도 감옥에 있었거든. 장도영 부인이 경기여고 같은 반 동기였는데 걔가 면회 왔다가 나를 보더니 "너 여기 어쩐 일이냐?"고 하는 거야. 형무소에 있는 군인들이 두 분이 어떻게 아냐고 물으니까 장도영 부인이 여학교 때 한반 친구였다고 말했어. 그러자 그때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어. 세상이 그래요.
(주석 3)

주석
1> 원충현, <옥중 회고록, 이 줄을 잡아라>, 103~104쪽, 선우사, 1981.
2> <이인숙 사모님과의 대화>, '무위당 사람들' 제공.
3> 앞의 증언.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5월 11일, 토 6: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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