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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biography 042419
쿠데타세력의 민간인 대량학살 음모
[무위당 장일순평전 14회]



▲ 재판받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 ⓒ 무위당 사람들 제공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쿠데타 초기 주체세력이 이른바 '용공분자'라 하여 검거한 인사들을 재판절차없이 대량 살육할 가공한 음모가 있었다는, 쿠데타 실세의 한 사람이던 유원식 예비역 준장의 증언이다.

5ㆍ16 직후 한ㆍ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군사정권과 미국정부가 평행선을 달리며 긴장이 고조되어 있을 때 박정희 소장은 그의 사상이 의심받고 있음을 알고 그의 측근자들과 함께 자신들이 좌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마침내 가공할 만한 사건을 야기할 뻔하였다. 소위 용공분자 일제 검거가 그것이다.

육군본부에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별관인 전 국회의사당으로 이사한 이튿날 아침에 출근해서 박정희 부의장실에 들어갔을 때 마침 김종필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박 부의장에게, "어젯밤에 모두 잡아 넣었습니다. 약 2만 8천 명 가량 되는데, 수송에 필요한 열차도 준비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들을 거제도로 데려가서 한데 모아 놓고 기관총으로 한꺼번에 사살해 버리는 것뿐입니다."

나는 옆에서 이 말을 듣고 무슨 내용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알아보니 김종필이 그 때 당시의 정보과장으로 치안본부에 가 있던 방(方) 모 대령에게 극비리에 지시하여 전국의 요시찰인 명부에 실려있는 사람을 일제히 검거했다는 것인데, 김종필의 아침 보고는 그 검거가 모두 끝나고 사후 대책까지 마련되었다는 일종의 결과보고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몇 번씩 물어 본 끝에 비로소 그 전상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한꺼번에 학살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비정상적인 정신병자라도 생각하기 어려운 만행이었다. 유태인을 집단 학살한 나치의 만행에 비견할 야수와도 같은 광란이다. (주석 1)

다행히 일부 인사들의 반대로 '집단학살극'은 취소되었다. 장일순도 하마터면 이때 거제도로 끌려가 처형될 뻔하였다.

쿠데타 사법부, 장일순에 징역 8년 선고

장일순은 1961년 5월 18일 구속되어 경찰에서 혹독한 수사를 받고 10월 26일 혁명검찰부 검찰관 최민근에 의해 기소되었다. 소급법인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였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한 공소장 내용을 살펴보자.

공소장

피고인 장일순은 서울 배재중학을 거쳐 서기 1947년 서울대학 공과대학 화공과 2년을 수료하고 동 1950년 5월 동교 미술대학으로 전학하여 동교 3년 수료 후 교육사업에 종사하여 오다가 4ㆍ19 이후에 급격히 대두한 혁신세력에 가담하여 동 1960년 6월 사회대중당 창당준비중앙위원으로서 동 1960년 7월 29일 실시되는 민의원의원 총선거에 동당 공천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입후보하여 낙선된 후 동 1961년 3월 경 통사당 주관의 소위 2대악법 및 한미경제협정반대 공동투쟁위원회 강원도 대변인 및 동년 3월 민족자립운동발기준비회 대표로 활약하여 오던 중인 바, 피고인은 북한공산괴뢰집단이 대한민국을 궁극적으로 공산화할 의도하에 남침의 기회를 노려 호시탐탐하면서도 무력적화 기도를 은폐하는 술책으로서 4ㆍ19 이후 장면 정부의 부패 무능으로 인한 민심의 불안정, 실업자의 증가, 무제한으로 허용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방종적인 자유, 반공체제의 이완 등에 편승하여 소위 평화통일론을 내세워 마치 그들이 진실로 평화통일을 희원하고 있는 것 같이 가장하고 남북협상, 남북간의 서신 문화 경제교류를 제의하는 한편

민족자주적인 감정에 편승하고 반미사상을 조장하여 반공체제를 약화시키고 난동적인 데모를 선동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질서를 교란하는 등 간접침략을 획책하고 있음을 충분히 지실함에도 불구하고, 모두에서 적시한 정당 및 사회단체의 운영 전반에 참여하는 주요 간부로서

동 1961년 2월 8일 대한민국의 경제적 안정 및 자립경제 수립을 목표로 체결된 한미경제협정과 동년 3월 하순경 반공체제를 강화하고 난동적인 데모를 통제하기 위하여 입법을 추진하게 된 반공임시특별법안 및 데모 규제법안 등 2대 특별법의 입법안에 반대하여

동 입법을 반대하여 입법을 저지시키면 간접침략을 획책하고 있는 북한 공산괴뢰집단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제1, (一) 서기 1961년 2월 24일 원주시 일산동 소재 기독청년회관에서 원주시 유학생 주최로 개최된 한미 경제협정성토대회에 혁신계 대표로서 참석하여 동소에 참집한 학생 10여 명에게 "미국의 경제원조 방식은 피원조국의 주권침해와 굴욕적인 것임에 반하여 소련의 원조방식은 피원조국의 주권침해나 협박적인 것이 아니고 무이자의 원조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여 소련과 북한괴뢰집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찬양함과 동시에 반미사상을 고취하고,

(二) 동년 2월 28일 모두 전기 피고인 자가에서 전시 제1과 동지(同旨)로 한미경제협정을 반대하는 내용의 벽보 30매 가량을 작성한 다음 이를 원주시내 각 요처에 착부하여 동 시민에게 경제협정의 진정한 의의를 왜곡선전하고,

(三) 동년 3월 1일 원주시내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3ㆍ1절 기념식장에서 한미경제협정 자체를 반대하고 마치 동 협정을 미국이 한국을 경제적 식민지화하였다 라는 내용의 연설로서 동 식전에 참가한 2.000여 군중에게 동 한미협정의 내용을 왜곡선전함과 아울러 반미사상을 고취하고,

제2, 서기 1961년 3월 12일 전시 피고인 자가에서 "자유마저 뺏으려는 반민족적 보수정객들의 언동을 결사 반대하여야 한다. 따로 데모 규제법과 반공임시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손과 발을 묶고 말을 막자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기재한 삐라를 작성하여 원주시내 각 요소에 첨부하여 동 시민에게 전시, 2대 특별법의 진정한 입법취지를 왜곡선전하고,

제3, 서기 1961년 3월 하순경 통일사회당 국회대책위원장 공소 외 윤길중과 소위 강원도 2대악법반대투쟁위를 결성하여 강원 원주시에서 동 반대대회를 개최하기로 상호 공모한 후 공소 외 장동호 동 김상범 등의 협조를 얻어 동년 4월 1일 오후 2시경 전시 공소 외 윤길중 동 고정훈 동 김기철 동 이동화를 원주시로 초청하고, 2시경 원주시 공설운동장에서 소위 2대 악법반대 대회를 개최하여 피고인은 동 대회 개회사를 담당하고 전시 윤길중은 <우리는 왜 보안법마저 반대하여야 하나>, 동 고 정훈은 <국제정세에 관하여>, 동 김기철은 <한국중립화 통일에 관하여>, 동 이동화는 <민주사회주의는 사회주의실현으로 간다>는 각 연제로서 동 대회에 참집한 약 2.000여 명 군중에게 마치 전시 2대 특별법이 야당탄압을 위한 불순한 동기에서 입안된 것처럼 그 입법취지를 왜곡선전하고'

국헌에 위배되는 영세중립화 통일안이 정치적 특수성과 지리적 특수성에 비추어 비현실적이고 무원칙한 통일안임에도 불구하고 동 방안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통일방안인 것처럼 왜곡선전하여서 북한공산괴뢰집단의 목적사항과 동일한 또는 그 기본방향이 동일한 사항을선전 또는 선동하고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 또는 이에 동조하는 등 각기 목적수행을 위한 것이다.
(주석 1)

검찰은 장일순에게 징역 8년을 구형하고, 혁명재판소 재판장 김홍규는 검찰 기소장의 복사판과 같은 판결문으로 8년 징역을 선고하였다. 판결문은 공소장의 복사판이어서 소개할 가치가 없다. 판사 중에는 뒷날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가 된 이회창도 끼었다.

당시 양심수들은 대부분 각 경찰서와 서대문형무소에 구치되었다가 혁명검찰부와 혁명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재판을 받으러 혁명검찰부로 끌려가던 정황을 혁신계 인사 고정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장일순의 경우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혁명검찰부로 처음 끌려나가던 날.

50명이 타면 고작일 버스에 한 80명을 실어놓고, 바닥이고 무릎이고 심지어는 사람의 어깨고 간에 덮어놓고 깔고 앉으라는 따위의 처사가 무리에게 강요되었다.

서 있으면 길거리의 행인들이 호송버스 안의 유명인사들을 인지하고 떠들썩하기 때문에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덮어놓고 앉으라는 성화였다. 무시무시한 염라대왕으로 널리 인식되기 시작한 박창암 혁검부장의 서릿발 같은 명령이고 보면, 형무관들이 쩔쩔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버스 안을 휘둘러보았다. 자유당 거물급 인사, 민주당 거물급 인사, 군출신의 거성, 언론계의 거목, 그리고 혁신계의 유명ㆍ무명 인사들이 군데군데 찢어진 인명록의 내버려진 휴지조각처럼 끼여 있었다.

암만 둘러보아도 저항적 인간은 눈에 띄질 않았다. 모두 도덕군자 아니면 지쳐빠진 사람 같았고 몇몇은 어리둥절해 있기도 했다.
(주석 2)

고정훈의 증언은 이어진다.

다음날에는 이재학ㆍ한희석ㆍ임철호ㆍ박만원ㆍ박용익ㆍ이존화ㆍ조순ㆍ송인상ㆍ곽영주ㆍ박찬일ㆍ강경옥ㆍ신도환ㆍ이정재ㆍ유지광ㆍ조열승ㆍ임화수 제씨와, 선우종원ㆍ현석호ㆍ박병배ㆍ양국진ㆍ엄홍섭ㆍ함병선ㆍ이용운ㆍ김웅수ㆍ정강ㆍ이상국ㆍ박상훈ㆍ김동복ㆍ장도영 등 장성, 이건호ㆍ송지영ㆍ양수정 등 제현, 그리고 나의 공범인 선배ㆍ동료 - 즉 이동화ㆍ윤길중ㆍ김성숙ㆍ정화암ㆍ구익균ㆍ송남헌ㆍ김기철ㆍ이명하ㆍ황빈 제씨, 그리고 외부 한왕균 형 등등 무수한 지상의 기라성들이 혁검으로 실리어 나갔다. (주석 3)

주석
1> 유원식, <5ㆍ16비록 혁명은 어디로 갔나>, 296~297쪽, 인물연구소, 1987.
1> 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한국혁명재판사 제3집>, <강원도2대학법반대공동위원회사건>, 1963.
2> 고정훈, <사형수를 지켜보면서>, 148쪽, 대한출판사, 1972.
3> 고정훈, 앞의 책, 162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5월 10일, 금 3:4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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