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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biography 041719
장일순, 5ㆍ16쿠데타로 구속돼
[무위당 장일순평전 14회] 일생일대의 시련에 직면하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재판받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 재판받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 ⓒ 무위당 사람들 제공

장일순은 일생일대의 시련에 직면하였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5ㆍ16은 이승만 정권 이래 평화통일을 주창해온 이 나라 양심세력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장일순은 기대했던 장면 민주당 정권이 두개로 쪼개지고, 학생과 혁신계가 '2대악법'으로 규정한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을 금하기 어려웠다. 해서 강력히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자신은 비록 총선에 나섰다가 낙선했지만, 그래도 민주당 정부가 4ㆍ19혁명 정신을 제대로 구현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5월 16일 새벽 군부쿠데타가 일어나고, 5월 18일 장일순은 다른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경찰에 검거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반공을 국시로 내걸고 2대 악법 반대투쟁과 평화통일 또는 중립화통일 주창자들을 용공으로 몰아 일제히 구속했다.

부인 이인숙의 증언.

5ㆍ16 쿠데타가 나고 나서 박정희라는 사람이 누구야? 누구야? 하는데 5월 18일에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마당으로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애들 아버지가 시내에서 경찰에 붙들려갔다고 하는 거에요. 무슨 영문인지 몰랐죠. 그 다음날 형사들이 들이닥치더니 가택 수색한다고 집안을 뒤져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책이며 편지며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글씨를 쓴 쪽지를 전부 찾아내서 가져가더라고요. (주석 1)

쿠데타 주동자는 박정희 장군이었다.

그는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해방 후에는 남로당 군부책임자였다가 전향한 인물이다. 자신의 전력과 관련, 미국이 쿠데타를 용인하지 않고 의심의 시선을 거두려 하지 않자 혁신계 인사들을 재물로 삼았다.

쿠데타세력은 민주당 정부 각료와 정치인ㆍ혁신계ㆍ학생ㆍ교수 등 7만 6천여 명을 체포했다. 쿠데타세력이 급조한 통치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반국가적 반민족적 또는 반혁명적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자 1961년 6월 21일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조직법'을 제정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소급법인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공포했다.

7월 말부터 진행된 이른바 '혁명재판'은 3ㆍ15부정선거 관련자나 부정축재 관련자들과 함께, 4월혁명 이후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들을 처벌하였다.

주요사건 별로는, 통일사회당ㆍ사회대중당ㆍ혁신당ㆍ사회당 등 혁신정당 관련 사건이 15건, 민통전학련(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 등 청년ㆍ학생 단체 관련 사건이 1건, 통민청(통일민주청년연맹) 사건이 1건, 민민청(민주민족청년동맹) 사건이 8건, 민자통(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등 정당 주도 통일단체 사건이 8건, 피학살자유족회 등 사회단체사건 2건, 기타 민족일보사건, 교원노조사건 11건 등 총 48건에 달했다. (주석 2)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부는 물리력을 동원하여 전광석화식으로 민족ㆍ민주세력을 일제히 구속했다. 사건의 주요 일람이다.

5월 17일 - 장면정부 전 국무위원 자진출두 명령.
5월 18일 - 쿠데타세력, 혁신계 3,300여 명과 조용수 등 민족일보 관계자 전격체포.
5월 19일 - 민족일보 폐간.
5월 22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정당ㆍ사회단체ㆍ노조해체 포고령, 치안국 용공혐의자 2,000여 명과 깡패 4,200여 명 검거발표.
5월 23일 - 최고회의, 언론정화 포고령 발표, 정기간행물 1,200여종 폐간.
7월 4일 - 반공법 공포8월 25일-혁명재판소, 반공청년단 종로구단장 임화수 사형, 반공청년 단장 신도환 무기, 유지광 징역 12년 선고.
8월 28일 - 혁명재판소, 민족일보사건 1심공판.
9월 14일 - 혁명재판소, 사회당사건 관련자 최백근에 사형선고.
9월 30일 - 혁명재판소, 경무대 앞 발포사건 관련 홍진기ㆍ곽영주에 사형선고, 유충렬 무기, 민통학련사건 피고 전원에 유죄판결.
10월 31일 - 혁명재판소 민족일보사건 조용수ㆍ안신규ㆍ송지영에 사형선고.
11월 8일 - 혁명재판소, 사회당사건 상고심 기각 최백근에 사형선고.
12월 20일 -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송지영과 안신규 무기로 감형.
12월 21일 - 최인규ㆍ곽영주ㆍ조용수ㆍ임화수ㆍ최백근 사형집행.

1961년 5월부터 이해 연말까지 한국사회는 거친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집권한 군부는 주로 진보적 민족주의 인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앞에서 말한대로 미국이 박정희의 전력을 의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군부권력은 부정선거 원흉, 자유당 간부들의 처단이나 부정축재자 처벌보다 진보적 민족주의 인사들을 훨씬 더 심하게 단죄했다. 최고회의는 통일운동, 피학살자유족회 활동 등을 특수반국가행위로 규정하고, 6월 22일 소급법으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공포했다.

혁명검찰부에 따르면 혁신정당과 민자통, 교원노조, 민통련, 유족회 활동자가 주대상인 특수반국가행위 사건은 225건 608명으로 혁명검찰부에 수리된 사건 전체 인원의 41.3%나 차지한 반면, 3ㆍ15부정선거 원흉들은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더라도 최인규 내무장관이 사형당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2~3년 내에 석방하였다.

그러나 혁신계와 청년ㆍ학생들은 다수가 장기복역했고,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와 사회당 간부로 남북협상을 주장했던 최백근이 처형되었다. 희생양이었다. (주석 3)

주석
1> 김찬수, <이인숙 사모님과의 대화>, '무위당 사람들' 제공.
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한국민주화운동사> 1, 356~357쪽, 2008.
3> 서중석, <한국현대사 60년>, 95쪽, 역사비평사, 2007.
 
 

올려짐: 2019년 4월 18일, 목 7: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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