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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movie 'Vice' 041019
주인공에게 이렇게나 정이 안 가다니... 알고 보니 감독의 의도?
[리뷰] 영화 <바이스>, 대통령보다 힘센 부통령 이야기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주인공한테 이처럼 정이 안 가는 영화는 드물 것이다. 역사적으로 악명을 날린 인물을 다룬 영화일지라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주인공한테 끌리기 마련이다. 주인공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영화에 푹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주인공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조지 워커 부시(아들 부시) 때의 부통령인 딕 체니(재임 2001~2009년)가 주인공인 영화 <바이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한테 정이 들지 않도록 단단히 장치를 해놓은 영화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 영화 <바이스>.ⓒ 콘텐츠판다

제목 <바이스>에 쓰인 영어 vice는 딕 체니의 공직인 부통령(vice president)과 더불어 부정적 뉘앙스도 함께 떠오르게 만들 만한 단어다. 범죄나 악행을 뜻하는 또 다른 의미의 vice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스>란 제목을 보면서 처음에는 '부통령'을 떠올렸을 관객들이 나중에는 '악행'을 떠올리게 만들려 했던 게 감독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주인공한테 정이 안 가는 영화다.

<바이스>는 영화 <빅쇼트>로 2015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때 "거대 은행과 석유회사의 돈을 받는 후보들을 찍지 말라"는 수상 소감을 발표했던 아담 멕케이 감독의 작품이다. <바이스>의 주인공 딕 체니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아버지 부시) 때 국방장관을 지낸 뒤 석유탐사 회사인 핼리버튼사의 사장으로 일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바이스>의 감독과 주인공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그러니 주인공한테 정이 안 가도록 감독이 머리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이스>는 다큐 형식과 영화 형식을 섞어 딕 체니의 인생을 시간순으로 다뤘다. 사실적으로 다룬 듯하지만, 영화이므로 100% 사실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딕 체니가 처음으로 근무한 사무실이 훗날 국방장관이 될 럼즈펠드 의원의 비서실이라고 했지만, 그 시기에 딕 체니가 실제로 근무한 곳은 와이오밍주 상원이었다. 거기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딕 체니의 부모님은 민주당원이었다. 그런데 청년 시절 술에 취해 살며 사고만 치던 딕 체니(크리스탄 베일 분)는 야심만만한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 분)의 자극을 받으며 '힘센' 공화당 쪽으로 눈을 돌린다. 의회에 근무할 당시부터 공화당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뒤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며 대통령비서관과 하원 의원을 거쳐 아버지 부시 때 국방장관에 오른다.

아버지 부시 퇴임 뒤 핼리버튼 사장이 되어 정계를 떠난 딕 체니를 다시 불러들인 사람이 아들 부시다. 영화 속에서 망나니처럼 묘사된 아들 부시는 자기가 취약한 외교 분야 등을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약속하면서 딕 체니를 대선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인다.

부시는 대통령이 된 뒤 그 약속을 지킨다. 그래서 외교 분야에서는 딕 체니가 사실상의 대통령이 된다. 영화에서는 9·11 사건 당시 딕 체니가 조지 부시를 대신해 대통령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체니는 9·11뿐 아니라 이라크전쟁과 관련해서도 대통령 권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무능한 점을 활용해, 미국 석유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이끌어간다. 영화 속의 체니는 조금도 부통령답지 않은 부통령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세계를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 <바이스> 속의 딕 체니 부통령(크리스챤 베일 분).ⓒ 콘텐츠판다

<바이스>는 부시 행정부 8년 동안의 실질적 대통령이 딕 체니였음을 증명하고자 영화 자막과 팸플릿을 통해 네 가지 사실관계를 강조했다.

첫째, 그 8년 동안 백악관 서버에서 사라진 이메일이 2200만 건이라는 점. 그중 상당수는 딕 체니의 대통령 직무 수행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둘째, 이라크 침공 이듬해에 핼리버튼사의 주식이 500%나 상승했다는 점. 부시 행정부가 실은 딕 체니의 사적 이익을 충족시키는 데 활용됐다는 것이다.

셋째, 딕 체니 부통령이 벌어들인 스톡옵션이 1000만 달러(113.6억 원)라는 점. 넷째, 그가 벌어들인 연봉이 15만 달러(1.7억 원)라는 점. 딕 체니가 부통령, 아니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민간 기업에 충성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딕 체니를 비롯해, 대통령도 어쩌지 못할 막강한 세력이 백악관을 지배하면서 대기업들의 이익을 관철시켰다는 게 <바이스>가 던지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국민들한테 백악관의 실체를 직시하도록 촉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 이런 장면이 있다. 남편인 딕 체니가 부시한테 부통령직 제의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부인인 린 체니가 "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장면이다. 그 전에 린 체니는 남편과 함께 파티에 갔다가 부시가 술에 취해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린 체니의 눈에 비친 부시는 아버지 덕에 호강하고 그 돈으로 출마해 텍사스 주지사가 된 망나니였다.

그런 망나니 밑에서 부통령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린 체니의 말이다. 이때 린 체니가 한 말 중에 "부통령직은 대통령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리"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망나니를 위해, 아무 힘도 없는 자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딕 체니는 결정적 순간마다 아내의 충고를 따랐지만, 이때만큼은 따르지 않는다. '망나니 같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미국 정치학자들인 나이젤 보울스(Nigel Bowles)와 로버트 맥마흔(Robert Mcmahon)이 공동 집필하고 김욱 배제대 교수가 번역한 <미국 정치와 정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 부통령들의 '딱한 처지'에 관한 것이다.

"전후 시기 동안 4번의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모든 부통령들은 정치적 좌절의 제도적 삶 그리고 보통은 정치적 무명의 삶을 살았다."

정치적 좌절이 제도화된 삶이 부통령의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로 네 번의 예외가 있었다고 했다.

그 네 번에 포함되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딕 체니다. 그는 일반적인 부통령들과 달리 대통령 못지않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에 관해 박성관 경남대 교수의 논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과 외교정책 참모체계의 성격: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설명한다.

"부시 대통령은 ······ 외교정책 경험이 부족한 개인적 배경으로 인해 편의상 외교정책 결정과정을 참모들에게 상당히 위임하는 스타일이었다."

"부시는 ······ 정책결정 시 전문성을 지닌 측근 참모들의 정책적 판단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등 외교정책결정과 집행을 최측근 참모들에게 대폭적으로 위임한 유형이다."

부시는 석유탐사 기업을 직접 운영하고 텍사스 주지사직을 수행했었다. 이런 경력을 거쳤다고 해서 외교적 능력을 못 가지란 법은 없지만, 부시는 그런 능력을 계발하지 못했다. 그래서 딕 체니에게 권한을 위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교뿐만이 아니었다. 국방 같은 여타 분야에서도 권한을 위임했다. 위 책에서 나이젤 보울스 등은 "조지 W. 부시는 체니 부통령에게 그 어떤 정책에도 관여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는데, 체니는 놀랄 정도로 기민하게 이러한 자유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위임을 근거로 딕 체니는 <바이스>에서처럼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통령이 될 수 있었다.


▲ <바이스> 속의 조지 부시 대통령(샘 록웰 분). ⓒ 콘텐츠판다

그런데 딕 체니한테 집중하다 보니, 이 영화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 부분이 있다. 부시가 무려 8년간이나 권한을 위임할 수 있었던 배경을 좀더 충실히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권력욕이 없지도 않은 부시가 권한을 대폭 위임하면서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던 이유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부시는 꽤 단순하고 냉혹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세계를 재단하면서 '우리 편이 되든가 죽든가'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그런 가운데 미국 대기업들의 이익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집행했다.

부시는 그런 신념에 부합하는 참모들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같은 세계관을 가진 참모가 자기 이익을 침해할 리 없다는 신뢰 하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위의 박성관 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부시의 단순한 업무 스타일은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정책 결정으로 비쳐지지만, 이는 엄격하게 말해서 흑백 논리와 이념적 신뢰에 집착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서, 부시는 자신의 기존 고정관념과 자신의 특별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측근들로부터 자문을 구하는 정책결정 방식을 선택하였다."

"부시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9·11 이전에 비해 외교정책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참모들과의 소통 구조도 확대하였으며, 여전히 자신이 선호하는 일부 강경파의 참모진에 크게 의존하였다."

영화에서도 묘사됐듯이, 부시의 옆에는 딕 체니와 도널드 럼스펠드 부통령으로 대표되는 강경파(네오콘)뿐만 아니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으로 대표되는 온건파도 있었다. 부시가 온건파를 약화시키고 강경파한테 힘을 실어준 것은 강경파의 세계관이 자기의 세계관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딕 체니에게 광범위한 위임을 해준 것은 것은 조지 부시가 '덜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딕 체니가 같은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딕 체니가 어떻게 하든 간에 부시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거라고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미국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기득권층이 미국 정치를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부시를 지나치게 덜 떨어진 대통령으로 묘사하게 됐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4월 18일, 목 5: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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