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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Kim Won-bong, who has more achievements than Rhee Syng Man 041019
이승만보다 '한 수 위'인 김원봉은 왜 서훈 못 받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제1호 수훈자 이승만, 남북 모두에게 버려진 김원봉... 기묘한 역사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어느 국회의원처럼 퀴즈 문제 하나 내볼까 한다. 삼척동자도 단박에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다. 다음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단재 신채호로부터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었다'고 비판 받고 탄핵당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통일 정부가 여의치 않으니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제주도민 3만여 명을 학살한 4·3사건의 최종 책임자.

더 이상 예를 들지 않아도 답은 나올 테지만, 이왕 문제를 낸 김에 그의 중요한 이력을 몇 개 더 적어본다.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한 여수 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수 순천 지역 민간인 1만여 명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한 장본인. 그 직후 지금까지도 양심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인물. 좌익 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준다며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해놓고선 6·25전쟁이 발발하자 빨갱이로 몰아 집단 학살한 장본인.

친일파보다 빨갱이가 더 나쁘다며 온 국민의 염원을 담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한 인물. 정권 연장에 눈이 멀어 국회 프락치 사건, 발췌개헌안 파동, 사사오입 개헌 등을 주도한 민주주의의 파괴자. 죽산 조봉암 등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정치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법살인의 설계자.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들에겐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며 사전 녹음한 방송을 틀어놓고선, 전날 36계 줄행랑을 친 것도 모자라 때늦은 피난민들이 건너던 한강철교 폭파를 명령한 잔인무도한 권력자. 그리고 86세의 나이로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4·19혁명이 일어나 끝내 국민들의 손에 쫓겨난 노회한 정치인.

당연히 정답은 이승만이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죄악 중에 교과서에 실린 굵직한 것들만 뽑아도 이 정도다. 그가 3·1운동 직전 자의적으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일과, 미국에서 대통령을 참칭하며 독립활동 자금을 유용한 사건, 서울 수복 후 피난가지 못한 이들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한 행위, 6·25전쟁 중 미국에 작전권을 통째로 넘겨버린 일 등 다 쓰자면 족히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이다.


▲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1948. 8. 15.).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6년 전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수업 자료로 활용했다가 '일베'에 의해 간첩신고를 당하는 등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숨진 지 반 세기가 넘게 지났음에도 '국부(國父)' 이승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의 공과 과를 따져보는 것조차 위험한 일이었던 시절이었다.

느닷없이 이승만의 행적을 도마 위로 올린 까닭은 약산 김원봉을 톺아보기 위해서다. 지난 3월 26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지금의 기준으로는 어렵지만, 김원봉의 서훈 수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항일 무장투쟁을 한 김일성에게도 훈장을 주고, 그의 손자인 김정은에게도 보훈 연금을 줘야 하느냐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각 언론마다 대서특필된 이 뉴스를 접한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반민족 행위를 서슴지 않은 악질 친일파들이 버젓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고, 6·25전쟁 당시 친일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국군의 날'이 제정되는 마당에 그깟 훈장이 뭐라고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싶었다.

백범보다 더 컸던 현상금, '거물' 운동가 김원봉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정치인들이 법을 제정하는 국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현실에서 김원봉의 서훈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기득권을 누려온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독립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김원봉에게 훈장을 준다는 건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다. 숱한 친일파들을 안장한 국립묘지처럼, 그들끼리 나눠가져온 대한민국 훈장의 품격과 권위는 애초 특별할 게 없는 것이었다.

은근 겁도 나지만 양심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본다. 명실 공히 품격과 권위를 갖춘 훈장이라면, 이승만보다 김원봉에게 격이 높은 훈장이 주어져야 옳다고 믿는다. 이승만의 권위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성토할 테지만, 공화국 대한민국의 시작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에 둔다면, 김원봉의 업적이 이승만보다 한 수 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승만은 김원봉보다 나이가 23살이나 많다. 국권 피탈 당시 이승만은 36살이었고, 김원봉은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고작 13살이었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당위성과 책임에 대해 이승만의 역할은 어린 김원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불과 5년 만에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속성으로 따서, 여느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운신의 폭이 훨씬 넓었다. 하지만 '박사'라는 명망에다 미국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그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연대하기는커녕 분란만 일으켰다. 그의 권위와 역량을 오로지 자신의 권력 쟁취와 유지만을 위해 활용했기 때문이다.

김원봉은 3.1운동이 일어난 그해 22살의 나이로 만주에서 항일 의거단체인 의열단을 창립했고, 당시 최강의 군사조직이었던 조선의용대를 결성하는 등 해방 때까지 항일 무장투쟁에 선봉에 섰다. 해방 직전 백범 김구가 이끌었던 광복군에 합류하여, 망명정부 임정의 군무부장으로 선임되는 등 일제에 맞선 그의 항거는 청사에 길이 빛난다.

일제강점기 백범 김구보다 더 많은 현상금이 내걸릴 정도로 자자했던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이승만 '박사'와는 달리 치열한 삶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의 강인하고 옹골찬 삶을 따라 항일 무장단체에 가입한 후배들이 부지기수고, 그들 모두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71살로 이승만이 해방을 맞았을 때, 김원봉의 나이는 이승만이 임정의 초대 대통령직에서 탄핵될 즈음인 47살이었다.

비유컨대, 일제강점기 김원봉이 풍찬노숙을 했다면, 이승만은 뜨듯한 아랫목에서 훈장 노릇을 한 것에 불과하다. 이승만이 공 하나로 과를 모두 가린 경우라면, 김원봉은 과 하나로 공 전부를 덮어버린 격이다.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힘을 보탰다는 그 한 가지 '죄목'으로 그의 생애 전체가 폄훼되고 있지만, 이제와 좌냐 우냐를 묻는 것 자체가 외람된 거물 독립운동가다.


▲ 김원봉. ⓒ 위키백과

살기 위한 김원봉의 '피신', 낙인이 되다니

익히 알려진 바지만, 해방 후 월북하지 않았다면 당시 암살 정국 하에서 그도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밀양 사람'인 그가 월북한 건, 미군정에 중용된 악질 친일 경찰에 의해 빨갱이라는 혐의로 잔혹하게 치도곤 당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현실에 절망한 그는 가슴에 한을 품은 채 북으로 향했다. 곧, 월북이 아니라 피신이라고 해야 옳다.

그가 북한 정권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여부 또한 시각이 확연히 갈린다. 거칠게 말해서, 국가검열상이나 노동상 등 그의 직책에 초점을 맞추면 북한 정권의 핵심인 거고, 그가 이내 숙청당한 사실에 주목하면 북한 정권의 들러리였던 거다. 김일성은 1948년 남북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협상)를 통해 김구와 김규식조차 자신의 권력 강화에 이용한 전례가 있다.

김원봉에게 '김일성에 협력한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건 잔인하다. 그렇다면 친일파의 고문에 끝까지 버텨야지 왜 못 견디고 도망쳤느냐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가의 보도처럼 미소 냉전과 분단 상황을 들먹이며, 고문한 이들은 처벌하지 않고, 되레 고문당한 이들을 탓하는 건 과연 온당한 것인가.

감히 단언컨대, 김원봉의 수훈 여부가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대의의 시금석이라 생각한다. 이념적 좌우를 떠나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을 벌이다 이름 없이 숨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기리기 위해서는 남과 북 모두 그를 묻어두고 갈 수 없다. 만약 김원봉이 훈장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 모두를 기리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약산 김원봉은 그런 존재다.

사족 하나. 이승만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제1호 수훈자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올해 승급된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윤봉길, 김구, 한용운 등 지금껏 31명에게만 수여된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의 업적이 초중고 교과서는 물론, 위인전마다 공통으로 등장하는 그러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건, 그가 훈장을 받은 때가 1949년이라는 점이다. 그때라면 그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시기다. 당시 제주도에선 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반민특위가 해체되었으며, 국회 프락치사건이 터졌고, 김구가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렇듯 비상한 시기에 그는 '셀프 훈장'을 받은 것이다.

국립묘지의 맨 위에 묻힌 이승만보다 한낱 '근린공원'에 잠든 김구가 국민들로부터 더 존경을 받듯, 설령 김원봉이 훈장을 못 받는다고 한들 뭐가 대수랴. 굽이칠지언정 역사는 올곧게 흐르는 법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4월 13일, 토 10:2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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