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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Uncle John who loved God and human, the church and the world, and human and nature(3) 040319
하나님과 사람, 교회와 세상,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 엉클 존(하)
[20세기 세계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 존 스토트 - 목회자·BBC 복음주의자·엉클 존·애조가·한인애요한


엉클 존

많은 이들이 스토트에게 20세기 기독교의 명설교자이자 목회자, 세계 복음주의 운동 최고의 지도자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동료와 후배, 제자, 독자, 청중에게 가장 오래도록 남긴 인상은 이런 공적이고 외적인 찬사나 호칭 이면에 있는 다른 무엇인 것 같다.

스토트가 2011년 사망한 직후 영국 IVP에서 펴낸 <John Stott: A Portrait by His Friends>에는 스토트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추억하고 회고하는 이들의 글이 35편 실려 있다. 그해가 가기 전에 신속하게 번역 출간된 이 책 한국어판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에는 원서와는 달리 44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스토트에게 영향을 받은 한국인 저자 9명의 글이 원서의 35편에 추가로 실린 것이다. 저명한 인물이자, 일평생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한 거인의 죽음 직후 그를 추모하는 글을 모은 책에는 어느 것이든 고인의 밝은 면, 중요한 업적, 좋았던 추억 위주의 글이 실리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어두운 단면, 실수와 오류, 껄끄러운 관계는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법이다. 이 책도 그 점에서 다르지 않다.

필자(이재근)는 평전이나 회고록 종류의 책이나 논문을 자주 대하는 편이다. 연구 중심 종합대학의 박사과정에서 엄격한 학문적 틀로 문헌을 대체로 '삐딱하게' 읽으며 비평하는 훈련을 철저하게 받은 역사가다. 그런 역사가의 눈으로 보면, 비록 내리 찬사로 가득한 글이라도, 이면에 담긴 꼬인 속내, 뉘앙스, 차마 노골적으로 밝혀 꺼내지 못하는 부정적 감정과 비아냥이 행간에서 자주 읽힌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44편이라는 상당히 많은 회고자의 글에서는 사실상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찬사, 혹은 마지못해 주저하며 내리는 씁쓸한 인정 같은 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모두는, 한두 차례 짧은 접촉이었든 동료로서의 잦은 만남이었든, 존 스토트와의 만남이 자신들의 과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거나, 심지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고백을 진심을 담아 전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 저자들은 스토트와의 개인적인 추억을 상기하는 자체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깊은 감회에 젖어든 것 같다. 냉정한 필자에게도 그 감흥과 젖은 눈시울이 전염될 정도였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회고하는 스토트의 가장 위대하고도 중요한 유산은 전염성 높은 '친밀함'이다. "개신교의 교황"이라 불릴 정도로 무게감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가 확보한 권위는 조직과 제도, 형식이 부여한 것이 아니었다. 나이·국적·성별·교파·인종·배경에 상관없이, 스토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이는 그를 '교황 성하'가 아니라, '스토트 신부님/목사님'(Reverend Stott)도 아니고, '존'(John), 또는 '엉클 존'(Uncle John)이라 불렀다. 책 제목이 알려 주듯, 이들 모두에게 존 스토트는 '친구'였다.

그는 개신교에서는 권위와 형식, 질서와 서열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성공회에서 교구사제이자, 왕실 목회자(Chaplain to the Queen)까지 지명된 인물이었다. 케직사경회 주 강사, 영국복음주의연맹, 성서유니온, 티어펀드, 국제기독학생회 등의 주요 복음주의 기관 회장을 수없이 역임했다. 어바나 대회 정기 성경 강해자, 로잔언약 작성위원장, 로잔계속위원회 특별위원, 성공회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 소장에다, 잉글랜드국교회에서 학문적으로 탁월한 공을 세운 성공회 사제에게 수여하는 램버스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최고위 성직자가 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다. 잉글랜드 여러 주교좌의 주교, 호주 시드니 대주교, 몇몇 신학대학 교수, 옥스퍼드 위클리프홀 학장, 세계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이 될 기회를 모두 거부했다.18) 그는 오직 한 지역 교회 사제로 봉사했고, 권위와 명예보다는 실제적 헌신이 필요한 자리에서만 회장직을 맡았다.

일평생 독신으로, 런던 올소울즈교회 근처 작고 소박한 플랏(flat, 아파트에 해당하는 영국 영어)에 살면서, 단벌 양복과 단벌 구두만으로 만족한 인물. 가난한 제3세계 출신 유학생과 나그네에게 늘 손수 자신의 주식이던 햄버거와 수프를 대접하고, 이들 각자에게 편지를 쓰고, 함께 기도했던 인물. 비서실 쓰레기통을 손수 비운 인물. 가정이나 숙소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늘 먼저 설거지를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진흙에 엉망이 된 친구의 신발을 닦았던 인물. 한 번 만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만날 때마다 그들의 가족의 안부를 물었던 인물. 하나님의 구속과 은혜의 손길이 교회와 인간에만이 아니라, 자연과 동식물에게도 미친다고 믿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인물. 그래서 세상의 모든 새를 찾아 헤맸던 인물.19) 스토트는 그를 만난 모든 이들의 친구였다.

애조가愛鳥家

스토트는 단순한 애조가를 넘어, 아마추어 조류학자였다. 그는 자신이 찍은 새 사진들을 신앙 묵상과 섞어 엮은 <새, 우리들의 선생님 The Birds Our Teachers>을 1999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 서문('들어가면서')에 따르면, 스토트의 자연, 특히 새 사랑은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전문직업에서는 의사였고, 취미에서는 식물학자였던 아버지는 존을 매 여름마다 시골로 데려가, 입은 닫고 눈과 귀만 열어 놓으라는 자연 관찰법을 아들에게 가르쳤다. 학교에 다니느라 새에 대한 관심을 얼마간 잃었던 스토트가 다시 새를 찾게 된 것은 런던에 사제로 부임하고 난 후였다. 런던의 여러 저수지, 공원, 심지어 폭격 맞거나 오래되어 붕괴된 건물이 1년 내내 수많은 새의 은신처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관심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모든 세계 집회 일정의 일부로, 그 지역에 서식하는 특별한 새 관찰 일정을 집어넣고, 언제나 망원경을 휴대했다. 북극과 남극에서부터 사막, 열대우림을 포괄하여, 그는 전 세계 약 9000종에 이르는 새 중 총 2500종 이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관찰했다고 한다. 이는 일반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경험으로, 4500종, 7208종, 8000종을 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문 조류학자나 탐험가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새를 실물로 직접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20)

실제로, 스토트가 한국에 첫 방문한 1993년에 비무장지대와 한반도 최서단 칠발도로 떠난 새 탐방 일정에 동행한 유명한 한국 최고의 '새' 박사 경희대 윤무부 교수는 스토트가 자신보다 새를 훨씬 많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더 전문가라고 인정했다. 그해 한국 방문 일정 전체에서 스토트를 수행한 한림대 경영학 안동규 교수는 스토트에게 "당신은 새에 너무 미쳐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스토트는 "나는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신 명령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21)

스토트가 안동규 교수에게 한 대답은 농담만은 아니었다. <새, 우리들의 선생님>의 '차례' 전 페이지에는 성경과 마르틴 루터, 키에르케고르가 신앙과 새를 연결 지어 이야기한 명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첫 문구가 "공중의 새를 보라 - 예수님, 마태복음 6:26에 있는 산상수훈"이다. 서문에서 자기 육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한 후에, 스토트는 성경에서 새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문들을 끄집어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선하다고 선언하신 피조 세계를 열심히 주목하고 관찰해야 하고, 그 관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탐구하는 이 분야를 '조류 신학'(orni-theology) 혹은 '새의 신학'(theology of birds)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익살을 부린다.22)

스토트의 기독교 및 복음주의 신앙이 포괄적이고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것에는 자연과 생명, 환경에 대한 그의 이런 관심과 애정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타락-구속의 패러다임을 이야기할 때, 구속을 단지 인간의 영혼 구원에만 한정짓지 않는다. 구속은 재창조를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타락과 함께 썩어짐의 종노릇하던 (새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도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롬 8:18-23).


▲ 2010년, 새를 관찰하러 나온 존 스토트. ⓒ 플리커

한인애요한韓人愛約翰

존 스토트는 전 세계 기독교인의 사랑을 받았다. 올소울즈교회를 제외한 스토트 사역의 공식 후계자라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편집을 맡아 서문을 쓰면서, 스토트 최고의 은사는 그가 놀랍도록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 독신인 스토트에게 '혼자'라는 말은 너무 무색해서, 그를 만난 후 미담을 회고하고 싶은 이들의 글만으로도 백과사전 한 질을 만들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23)

한국인 9명 포함 총 44명의 회고가 담긴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를 읽어 보면, 라이트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스토트는 20세기 개신교인 중 가장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스토트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의 사랑 또한 아마도 세계 최상위에 자리하지 않을까 한다. 한인애요한韓人愛約翰. 한국인은 요한(John)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한다. 스토트 책은 거의 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스토트 책을 읽고 회심했다는 이, 신앙을 버릴 뻔 했다가 회복했다는 이, 소속 신앙 공동체의 폐쇄성에 숨 막혀 있다가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이, 지성과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조망하는 눈을 떴다는 이, 설교와 성경의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는 이,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들을 만난다. 번역된 스토트 전작을 구비하고 있다는 이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2010년 <목회와신학>이 한국 목회자 8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가장 선호하는 기독교 작가로 뽑힌 인물도 존 스토트였다.24)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에 글을 실은 한국인 9인의 회고는 지극히 감동적이고, 에피소드는 하나하나 모두 흥미진진하다. 그 중 스토트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1993년 IVF 전국 수련회 당시 3000명이 모인 연세대 원주캠퍼스 노천극장에서 있었던 일화가 특히 인상적이다. 갑작스러운 우천 때문에 설교를 끝내려는 스토트에게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계속해 주세요", "Go on, Please!"라고 외쳤던 쳤던 IVF 학생들. 그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에게는 "그 수련회가 학생 시절 최고의 수련회”였다. 스토트 역시 "장맛비 속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학생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옥한흠, 하용조, 홍정길, 김상복, 김명혁, 한철호, 이기반, 안동규, 이태웅, 권영석, 김중안, 정옥배, 양희송, 지강유철은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및 그 외 다른 매체에 실은 회고를 통해 자신이 받은 엉클 존의 유산을 추억했다.



1) 100인의 목록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completelist/0,29569,1972656,00.html. 선정된 각 인물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선정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데, 스토트에 대한 글은 빌리 그레이엄이 썼다.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972656_1972717_1974108,00.html.
2) https://www.bbc.com/news/uk-14320915.
3) 로저 스티어, 『존 스토트의 생애』, 이지혜 역 (서울: IVP, 2010), 29-58.
4) J. P. Greenman, "존 로버트 웜슬리 스토트," in 티모시 라슨 편, 『복음주의 인물사』, 이재근, 송훈 역 (서울: CLC, 2018), 755f.
5) 스티어, 『존 스토트의 생애』, 90-110.
6) 스티어, 『존 스토트의 생애』, 111-122; Greenman, "존 로버트 웜슬리 스토트," in 『복음주의 인물사』, 756.
7) 알리스터 맥그래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정성욱 역, 이재근 해설 (서울: IVP, 2018), 53.
8) 존 스토트,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양혜원 역 (서울: IVP, 2004), 32f.
9) John R. W. Stott, Fundamentalism and Evangelism (London: Crusade Booklets, 1956).
10) 브라이언 스탠리, 『복음주의 세계 확산: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의 시대』, 이재근 역 (서울: CLC, 2014), 72-78.
11) 스티어, 『존 스토트의 생애』, 147-149.
12) 스티어, 『존 스토트의 생애』, 159-160.
13) 스탠리, 『복음주의 세계 확산: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의 시대』, 제6장; 이재근,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서울: 복있는사람, 2015), 제5장.
14) 스탠리, 『복음주의 세계 확산』, 89f; 맥그래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57-61; 크리스토퍼 캐서우드 편, 『5인의 복음주의 지도자들』, 김영우 역 (서울: 엠마오, 1987), 112-122.
15) 크리스토퍼 라이트 편, 정옥배 외 기고,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서울: IVP, 2011), 167.
16) 스탠리, 『복음주의 세계 확산: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의 시대』, 제6장과 이재근,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제5장을 참고할 것.
17) 스티어, 『존 스토트의 생애』, 282.
18) J. P. Greenman, "존 로버트 웜슬리 스토트," in 티모시 라슨 편, 『복음주의 인물사』, 759f.
19) 크리스토퍼 라이트 편, 정옥배 외 기고,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서울: IVP, 2011).
20) 존 스토트, 『새, 우리들의 선생님』, 이기반 역 (서울: IVP, 2001), 7f.
21) 라이트 편,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 328f.
22) 스토트, 『새, 우리들의 선생님』, 8-10.
23) 라이트 편, 『존 스토트, 우리의 친구』 , 11f.
24) http://christian.nocutnews.co.kr/news/749780.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4월 04일, 목 10: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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