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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biography 032719
혁신운동에 참여, 중립화 통일방안에 매료
[무위당 장일순평전 10회] 4월혁명 정신으로 원주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장일순은 학생시절에 이어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유당 정권의 부패 타락상을 지켜보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민생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의 종신집권을 위한 권력욕과 이를 추종하는 자유당은 강도집단을 방불케하는 패악을 저질렀다.

경찰이 반공청년단과 자유당 일선 조직을 동원하여 국민 주권을 유린했다. 뒷날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를 앞세운 정보 정치체제라면 이승만 정권은 명실공히 경찰국가체제였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은 결코 일제 헌병 경찰의 패악에 못지 않았다.


▲ 4월 혁명 당시 모습. ⓒ 4.19혁명기념회

마침내 참다못한 학생과 시민이 궐기하여 4월혁명이 일어났다.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이승만은 하와이로 줄행랑을 쳤다. 자유당은 해체되다시피 몰락하고, '국부 이승만'을 떠들던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 중 하나도 이승만과 운명을 같이 하는 자는 없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갖은 탄압을 받고 설 땅을 잃었던 혁신계는 4월혁명을 계기로 모처럼 기지개를 펴고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승만의 패악 중에는 정치적 라이벌 조봉암을 사법살인하고 진보당 간부들을 투옥한 일도 빠뜨릴 수 없다.

헌정사상 첫 사법거래, 사법농단이었다. 이승만의 폭거에 사법부와 검찰이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한 것이다. 이를 지켜 본 장일순은 무엇보다 정치개혁이 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쳤다.

때마침 진보계열의 인사들이 1960년 6월 17일 혁신정당의 재건을 목표로 구 진보당ㆍ노동당ㆍ민주혁신당 등이 중심이 되어 사회대중당 창당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서상일과 윤길중 등을 간부로 선출하고 창당작업에 착수하여 1960년 11월 24일 창당에 이르렀다. 4월혁명을 주도한 학생 중에 참여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장일순도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사회대중당은 창당을 준비하면서 이 해 7월 29일 실시한 민ㆍ참의원 선거에 참여했으나 재야정당의 난립으로 참패하고 말았다.

장일순도 원주에서 입후보했다가 낙선하였다. 돈도 조직도 그렇다고 선전기능도 없는 혁신정당의 신진이 선거에서 당선되기는 쉽지 않았다. 이승만 치하에서 혁신계는 좌경으로 매도되고 그런 인식은 혁명 후에도 쉽게 국민의 뇌리에서 불식되지 않았다. 또한 4월혁명의 '핏값'은 민주당이 독차지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장일순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던 전 '무위당 만인회장' 이경국 씨의 회고이다.

"나는 그 분이 너무 좋아서 유세를 함께 다녔어요. 자동차도 없어서 리어카에 앰프를 싣고 다니면서 제가 목소리가 크니까 장일순을 국회에 보내자고 호소하고 다녔고, 산에(산골마을ㅡ필자) 갈 때는 지게에 앰프를 싣고 올라가기도 했어요."

장일순이 마음으로 크게 공감하였던 사회대중당의 '창당선언문'과 정강정책은 다음과 같다.

사회대중당 창당선언문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온갖 부정과 비법을 자행하면서 국민대중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던 이승만 독재정권은 순진한 청소년 학도들의 영웅적인 피의 항쟁과 이에 호응한 애국적 국민대중의 과감한 투쟁에 의하여 마침내 전복되었다.

지금 우리의 민주혁명은 종결된 것이 아니고 시작된 것이다. 보수적 과도정권하에서 약간의 개혁이 수행되고는 있지만 이 혁명의 근본정신과 기본적 요구가 관철ㆍ달성되는 것은 금후의 일에 속한다.

그러므로 4월민주혁명의 완수를 저지ㆍ반전시키는 일체의 반동세력을 우리는 분쇄ㆍ구축하여야 하며 이 혁명의 진행을 억제하고 침체시킴으로써 협소한 당파적 이익만을 도모하려는 일체의 기회주의적 보수세력과도 우리는 과감히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투쟁의 당면목표는 민주주의적 정치적 제자유를 완전 쟁취하는 데 있다.

이승만 독재ㆍ폭압정권은 12년 간에 걸친 그의 악정기간 중 농민, 노동자, 근로인텔리, 중소상공업자 및 양심적 자본가 등 국민대중을 대변하고자 하는 혁신적 정치세력의 대두에 대하여 야만적, 살인적 탄압을 가하여 왔다. 그것은 혁명적 정치세력만이 광범한 근로민중의 기본적 제요구를 가장 솔직하고 가장 강렬하게 표백ㆍ대변할 수 있음을 이승만 일당의 우둔한 머리로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악 파렴치한 이승만 일당은 우리 혁신진영에 대하여 '빨갛다'는 누명을 씌워 중상음해하고 혁신진영의 투사들을 날조구죄하여 고문ㆍ투옥ㆍ치사하는 등 온갖 간악한 죄과를 저질렀던 것이다.

위대한 4월혁명은 혁신진영에 대하여 존립ㆍ활동할 수 있는 기본적 입지를 마련하여 놓았다. 우리는 이 입지를 수호ㆍ확보하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여 투쟁할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정책이란 단지 '엉터리'였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공산당을 '관제'로 조장하는 것이었다 함은 천하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당의 정강ㆍ정책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은 노선과 강력한 그 실천만이 공산주의를 그 근저에서 극복하는 가장 철저하고 진정한 반공노선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민족자주를 확립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자주의 확립은 국토통일의 성취와 자립경제의 건설을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내정책에 있어서는 자립경제의 달성을 주요 목표로 하고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통일성취를 중심적 목표로 하여 꾸준한 투쟁을 계속 전개할 것이다.

우리가 농민, 노동자, 근로인텔리, 중소상공업자 및 양심적 자본가 등 여러계층 및 사회적 집단을 대변한다고 할 때에 그것은 결코 계급주의적 입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현하 농민, 노동자, 근로인텔리, 중소상공업자 및 양심적인 자본가 등 사회의 제집단은 상호간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조정 내지 초월하면서 보다 크고 보다 고차적인 이해관계에서 일치할 수 있는 광범한 근로국민대중을 형성할 수 있는 바 우리가 대표하고 대변하려고 하는 국민대중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장하는 민족자주는 민족독선 내지 민족지상주의와 엄격히 구별되는 것이다. 소위 민족지상주의라는 것은 독재주의자가 스스로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견강부회적 또는 마술적으로 수시 악용하는 구호 내지 도구에 불과하다. 이것은 히틀러로부터 그 아류인 이승만 등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적 실례가 증명하여 주는 바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를 엄중히 거부 배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역사는 바야흐로 위대한 변혁기에 처하여 있으며 우리 민족사회도 또한 전환기를 거치고 있다. 우리 사회대중당은 - 광범한 국민대중의 적극적 참가와 지지를 얻어 - 민주혁명의 완수와 평화적 통일의 실현 및 민주적 복지 사회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민족적 대과업을 옳게 담당ㆍ완수할 것을 이에 결의하고 맹세하고 선언하는 바이다.
(주석 1)

주석
1> <한국의 주요 정당ㆍ정책>, 381~382쪽, 시인사, 1978.(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3월 28일, 목 10: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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