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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The surprising sight in Pyongyang 032019
평양서 본 놀라운 풍경 "저 외국인은 누구길래..."
[신은미의 북한 이야기 - 신의주에서 평양까지④] 평양시민의 일상 속으로



▲ "평양친선병원" 수기치료(지압)" 의사와 함께. ⓒ 신은미

(LA=오마이뉴스) 신은미 기자

평양친선병원 진료... 사례 하려고 했지만

2017년 5월 18일, 아침에 일어나니 안과의사 선생님 말대로 눈은 괜찮은데 팔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내가 팔 통증으로 고생하는 걸 잘 아는 남편이 안내원 경미에게 말하니 어서 병원에 가잔다. 경미가 나를 데려간 곳은 외국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말하자면 외국인촌이었다. 여러 나라 대사관들의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 입구에는 '평양친선병원'(Pyongyang Friendship Hospital)이라고 적혀 있다. 접수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경미에게 물었다.

"왜 외국인촌에 있는 병원에 왔어?"
"아, 이 병원은 외교관 같은 외국인 거주자들이나 조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그리고 해외동포들을 위한 병원입니다. 긴데 여게(여기) 수기치료(지압) 전문의사가 있어 왔습니다."

이제 보니까 생각난다. 북한에 대한 정부 전복 행위로 체포돼 노동교화형 15년형을 받고 2년 후 석방돼 미국으로 돌아온 재미동포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씨가 수형생활 중 지병을 치료받았다는 바로 그 병원이다.

수기치료 전문의사 선생님이 1시간 넘게 정성을 다해 치료해준다. 선생님께 감사의 뜻으로 약간의 돈을 드리자 손사레를 치며 극구 사양한다. 2015년 6월 평양호텔에서 일주일 내내 나를 치료해 준 수기치료 의사도 그랬었다.

"우리 조국에서는 무상의료입니다."
"네, 알고 있는데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저는 말하자면 외국인인데."

"외국인은 사람 아닙니까? 아니, 신 녀사님. 아무리 기래도 기렇지 의사인 제가, 그것도 조국을 찾은 해외동포 환자로 부터 돈을 받갔습니까? 녀사님 마음은 잘 알갔습니다. 조국에는 언제까지 계실 건지요?"

"한 일주일 정도 더 있을 거에요."
"기러면 평양에 계시는 동안은 매일 오셔서 치료를 받으십시요."

앞으로 치료를 더 받는 동안 이 의사의 취향을 잘 관찰해 마지막 날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가야 겠다.


▲ 평양 길거리에서 본 외국인 거주자.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 신은미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한 외국인 여성이 자전거를 끌고 인도 위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경미야, 저 외국인은 누구길래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혼자 다니니?"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일 겁니다."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이라면?"
"뭐 외교관, 유엔 직원들, 사업하는 사람들, 그들의 가족들, 유학생들... 그런 사람들일 겁니다."

북한에 살면서 수양딸들과 오래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경미에게 물었다.

"혹시 나도 여기서 장기체류할 수 있을까?"
"글쎄요. 흔히 장기체류하는 해외동포들은 주로 사업하는 분들입니다."
"어떤 사업들을 해?"
"식당, 찻집 같은 거 하시는 분들도 있고 지원활동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같은 해외동포가 장기간 체류하려면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가장 용이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양에서 장을 보다


▲ 평양 광복거리에 있는 수퍼마켓. ⓒ 신은미

점심식사를 위해 햄버거 식당으로 향한다. 식사 후엔 전날 경미에게 부탁한 '미래과학자거리' 아파트의 한 가정을 방문한다. 그런 다음에는 첫째 수양딸 설경이네 집에 가서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햄버거 식당으로 가는 도중 예전(2015년 6월)에 한 번 와 본적 있는 수퍼마켓이 눈에 들어온다. 저녁에 해먹을 음식을 미리 사기로 했다.

이 마켓은 평양에서 가장 큰 국영 슈퍼마켓이다. 건물 내에 음식코너도 있고,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백화점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외화를 사용할 수 없고 북한돈만 쓸 수 있다. 마켓 안에 있는 화폐교환소에서 달러를 내고 북한돈을 받았다. 환율은 1달러당 북한 화폐 8천 몇백 원이다. 50달러를 냈더니 북한돈 한 뭉치를 내준다. 지갑에 넣을 수가 없어 가방에 집어 넣었다.

이곳 물가가 장마당이나 동네에 있는 소형 슈퍼마켓보다 싸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단다. 하지만 채소는 장마당이 더 싱싱해 채소를 살 때는 주로 장마당을 선호한다고 한다.

오늘 설경이네 집에 가서 남편과 내가 차릴 저녁 메뉴는 '강냉이 국수(옥수수 국수)'로 만드는 파스타다. 비싸고 쉽게 구할 수 없는 스파게티 국수보다 이곳에서 흔한 '강냉이 국수'로 스파게티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아이들이 언제든 쉽게 해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강냉이국수 파스타, 과연 어떤 맛일지 나도 무척 궁금하다.

강냉이국수 한 봉지, 올리브유, 토마토, 마늘 그리고 조개 등 해산물을 산 다음 햄버거 식당으로 향한다.

간판도 없는 햄버거집

우리가 찾아간 햄버거집은 상가도 아닌 곳에 있는, 겉보기에 허술한 건물에 있다. 2015년 10월에 갔던 햄버거집은 김일성대학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집은 제법 잘 꾸며져 있어서 밖에서 봤을 때 한눈에 패스트푸드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간판도 없다. 도저히 레스토랑이 있을 것 같지 않다.


▲ 평양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허름한 건물에 간판도 없었지만 내부는 화려했다. ⓒ 신은미

잔뜩 실망하고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 패스트푸드 식당답지 않게 고급스럽다. 의자에는 천이 덮혀 있고, 천정엔 디자인 조명이 달려 있다. 내가 잠시 망각했다. 대형 국영식당을 제외한 많은 북한 독립채산제 식당들이 허술하게 보이는 건물에 있고 간판도 없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잘 꾸며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 페인트도 벗겨져 있고 시멘트도 떨어져 나가 누추해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그런대로 갖출 건 다 갖추고 산다. 적어도 자기 공간만은 잘 챙기고 산다.

2012년으로 기억한다.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이 동년배로 보이는 안내원에게 "대체 평양의 공중 위생실(화장실) 수도꼭지와 변기는 모두 물이 줄줄 새, 이것만 고쳐도 평양의 수돗물 걱정을 없을 거요"라면서 불평했다. 그러자 그는 "에... 이게 자기 물건이면 닦고 조이고 할 텐데 자기 것이 아니라서..."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식당 건물도, 아파트도, 공중화장실도 모두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다.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물이나 공공시설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소유물은 '닦고 조인다'. 사회주의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 생각한다. 고급스러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실내를 보며 든 잡념이다.

부리토(토르티야에 콩과 고기 등을 넣어 만든 멕시코 요리)의 맛은 일품이나 매운소스가 중국산인 점이 아쉽다. 소스가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다. 소스를 자체적으로 만들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시 중국의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온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간판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재중동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일 수도 있겠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공부"를 한다니...


▲ "미래과학자거리"의 한 아파트 입주자. 낯선 동포를 반갑게 맞아줬다. ⓒ 신은미

'미래과학자거리'의 한 살림집으로 향한다. 집주인에게 무척 미안하다. 얼마나 귀찮고 성가실까. 집구경을 하고 싶다는 부탁을 하지 말 걸... 후회를 한다. 집주인이 "어서 들어오시라"면서 반갑게 우릴 맞는다.

"아휴~, 미안해요. 이렇게 집구경을 하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고 죄송해요."
"어서 앉으세요. 이역만리 긴 여행길에 이렇게 저희 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부인의 손님맞이가 마치 예전 우리 어머니 세대의 모습이다.


▲ "미래과학자거리"의 한 아파트 내부. ⓒ 신은미

집을 둘러보니 적게 잡아도 실평수가 100평은 족히 넘을 듯하다. 큰 방이 6개,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 온 식구가 함께할 수 있는 공동목욕탕 같은 별개의 목욕실, 부부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길 수 있는,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넓은 공간, 게다가 운동실까지 있다.

집구경을 마치고 몇마디 주고 받는다. 집주인 부부가 내 나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보다도 어린 40대 후반이란다. 특히 남편의 그을린 얼굴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이다.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세요?"
"저는 대학의 연구사(연구원)입니다."
"집이 아주 크네요. 좋으시겠어요."
"제가 부모를 모시고 있고 애들이 많아서 넓은 집을 배정받았습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니 자연스레 공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이 연구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공부를 한다"고 한다. 세상에 살다 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공부한다는 사람은 난생처음 본다.

남한 커피믹스 본 북한 세관의 당부


▲ 설경이네 아파트 경비 아주머니. ⓒ 신은미

장을 본 '구럭지(비닐백)' 그리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설경이네 아파트로 간다. 빨간 완장을 찬 경비원 아주머니가 경비초소에서 나와 반갑게 맞이해준다.

"또 오셨구만요. 저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설경이를 자주 보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에그, 이 먼 길을 또..."
"그간 안녕하셨어요?"
"나야 뭐, 경비초소에서 편히 지내지만 설경이 양오마니께선 이 먼 길을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이 먼 길'을 반복하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신다.

1년 반 만에 찾은 설경이. 설경이 남편은 조선국제려행사 간부로 이미 승진해 이젠 더이상 안내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집을 비우지 않는다고. 아들 의성이는 보통 개구쟁이가 아니다.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다 "까부순다"고 한다. 손님이 오면 꼭 안고 있어야 한단다.

선물을 주섬주섬 꺼내 전해준다. 그중에는 북녘의 동포들이 좋아하는 남한의 커피믹스도 있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인마켓에서 구입한 거다. '노란색(커피봉지)'을 가장 선호한다. 설경이에게 커피믹스에 얽힌 이야기를 해줬다.

"글쎄 말이야, 신의주 세관에서 남조선산 커피믹스를 본 세관원이 '이게 뭐냐'며 묻더구나. 커피라고 그랬더니 아주 곤란해 하는 거야. 우리가 마실 거라고 했더니 머뭇거리면서 '껍데기에 '괴뢰글'(설명문)이 써 있으니 드시고 버리실 때 좀 싸서 버리십시요'라고 하기에 꼭 그러겠다고 했어.

근데 문제가 생겼어. 다른 가방에서 또 커피믹스가 200개나 나온 거야. '이것도 두 분께서 드시는 거냐, 커피를 이렇게 많이 마시냐'고 묻길래 '한번 마실 때 많이 만들어 안내원도 마시고 운전수도 마시고 하다 보면 많이 필요하다' 그랬지. 그리고 또 그게 사실이고. 그랬더니 '하여간 버리실 때 꼭 싸서 버리시는 것 잊지 마십시요'라더구나. 너희들도 꼭 싸서 버리거라."

"네, 알갔습니다. 걱정마십시요, 오마니."

'강냉이 파스타'의 맛은...


▲ 설경이네 아파트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 ⓒ 신은미

모두 일어나 부엌으로 자리를 옮긴다. 설경이네 집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기는 처음이다. 남편이 마켓에서 사온 해산물을 손질하기 시작한다. 북한에는 해산물이 비교적 풍부하다. 그리고 '강냉이국수'라고 불리는, 옥수수로 만든 국수가 흔하다. 값도 싸다.

토마토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강냉이국수'로 만드는 여러 가지 요리가 개발돼 있지만 이를 이용한 서양식 요리는 보지 못했다. 우리가 '강냉이 해물 파스타'를 만들어 주려는 이유다.


▲ "강냉이 해물 파스타"를 먹어보다. 왼쪽부터 설경이 남편, 설경이, 필자, 경미. ⓒ 신은미

불행히도 상상했던 맛이 아니다. 국수에서 옥수수 냄새가 너무 강해 파스타 소스의 향과 맛을 모두 덮어 버린다. 설경이 남편도 같은 소감을 전하면서 대신 다른 국수를 이용하면 되겠단다. 그래도 소스가 맛있다며 즐겁게 먹어준다.

남편이 "장국에 말아서 먹는 강냉이국수가 훨씬 맛있다"라며 강냉이 국수로 이런 식의 파스타를 다시는 만들지 말자고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설경이가 다음엔 냉면국수로 만들어 보겠단다. 모두들 함박 웃음을 떠트린다.

행복한 하루였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니 가족의 정이 한층 깊어간다.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바로 통일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3월 21일, 목 4:3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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