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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The great star of Minjung Theology falls 031319
민중신학의 큰 별 지다... 문동환 목사님, 편히 잠드십시오
[추모글] 북간도 나리꽃을 그리워 한 민중신학자, 고 문 목사님 영면에 부쳐


(서울=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 (문동환 목사님이 9일 오후 5시 50분께 99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혜림씨와 아들 창근·태근, 딸 영혜·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씨, 사위 정의길(<한겨레> 선임기자)씨 등이 있습니다. 고 문익환 목사님의 아들인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조카입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이고 발인은 12일 오전 8시입니다. 장례예배는 12일 오전 9시 한신대 채플실에서 진행되고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입니다. -기자 주)

북간도를 그리워하던 문동환 목사님!


▲ 문동환 목사가 지난 9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98세. 2019.3.10 [문동환 목사측 제공]

지난해 5월, 목사님의 고향인 북간도를 갔습니다. 북간도 대통령이라 불린 김약연 목사를 비롯한 선각자들이 개척한 명동촌과 안중근 의사가 사격 연습했던 명동촌 입구의 선바위, 간도국민회본부 자리와 윤동주 시인의 고향 용정과 말없이 흐르는 해란강을 보았습니다. 해란강은 말없이 흐르고 일송정은 용정 시내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병상에 누워 계신 아흔 여덟의 문동환 목사님은 꿈엔들 잊히지 않는 고향 북간도를 그리워했습니다

1899년 김약연 목사님과 목사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을 비롯한 다섯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이주해 '동쪽(한반도)을 밝힌다'는 뜻의 '명동촌'(明東村)을 개척했습니다. 농사 지으면서 명동학교와 명동교회를 만들었는데 그냥 학교와 교회가 아니라 나라를 찾기 위해 공부하는 학교,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기도하던 청년들은 십자가와 총을 들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목사님의 고향 북간도는 기독교 독립운동의 전진 기지였습니다.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명동촌과 나리꽃을 그리워하던 노 신학자


▲ 명동촌 입구의 선바위. ⓒ 조호진


▲ 명동촌의 허물어져가는 옛집. ⓒ 조호진

목사님은 세 살 위의 형인 문익환 목사님과 사이좋은 형제였습니다. 명동촌의 너른 들판은 햇살이 포근해서 놀기 좋았습니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개구리를 잡아먹었다고 했습니다. 허기진 시대였으니까요. 나라를 잃은 시대였으니까요.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은 뒤 형의 손을 잡고 햇살 따사로운 명동촌의 들길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노(老) 목사의의 얼굴은 고난의 시대와 맞서다 지쳐서 병든 목사가 아니라 북간도에서 마냥 뛰어놀던 해맑은 소년이었습니다.

생이 다해가던 2018년, 당신은 명동촌 뒷산의 나리꽃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냥 나리꽃이 아니라 북간도 나리꽃이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던 CBS-TV <북간도의 십자가>(제작 반태경 피디) 제작진들은 가슴이 울컥했다고 했습니다. 치욕과 고난의 근·현대를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며 걸어온 목사님이 북간도로 귀향할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리꽃은 그리운 고향 북간도였을까요? 아니면 불의의 시대를 증언하라 하신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이었을까요?

민중 예수의 길을 따른 민중신학자 문동환 목사님의 길


▲ 지난해 <북간도의 십자가> 촬영 당시의 문동환 목사님. ⓒ CBS 제공

문동환 목사님은 그냥 목사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메는 목사였습니다. 그의 교회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겁을 주며 십일조 등의 헌금을 강요하는 교회가 아니라 나라 잃은 피압박 백성과 독재자의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는 민중들과 함께 한 교회였습니다. 그에게 불의를 사고파는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 불법 건축물이었습니다. 불의에 침묵하고 방조하고 가담하는 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독사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불의와 싸웠습니다. 악덕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세상, 이를 방조하거나 자본가를 감싸는 독재정권 치하에서 그의 교회와 신학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청계천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고, 가난한 민중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신음하는데 어떻게 침묵할 수 있었겠습니까. 목사는 종교 자영업자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받드는 예언자인데 어떻게 침묵할 수 있었겠습니까.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를 획책하자 당신은 김대중 대통령과 형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1976년 3월 1일 '3·1민주구국선언'에 서명하고 회사의 폐업조치에 항의 농성을 한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예수는 부자와 권력자의 편이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이웃의 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괴롭히는 불의한 권력에 맞섰다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스승 예수처럼 문동환 목사는 독재자에 맞섰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고난 받는 민중과 분단의 역사와 함께한 그의 고향은 북간도입니다. 교회당 꼭대기에 십자가가 걸린 명동교회,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메고 역사의 길을 걸어오신 당신은 형 문익환 목사님과 함께 분단의 철조망을 헐려고 했으나 끝내 헐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단의 철조망이 걷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을 넘어오고 넘어서면서 악수하고 포옹하며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여는 것을 보셨습니다. 목사님, 시대의 예언자로서 뿌린 평화의 씨앗이 마침내 움트고 있습니다.

떠돌이로 사셨던 문동환 목사님의 귀향


▲ 일송정 푸른 소나무 아래 용정 시내가 보인다. 그리고 해란강이 흐른다. ⓒ 조호진

목사님, 이제 명동촌 뒷산의 나리꽃을 보러가세요. 이제 하늘나라 본향에 가셔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세요. 다시는 나라를 뺏기지 않아도 되는 하늘나라, 가난과 억압에 시달려 울부짖는 민중이 없는 민중의 나라, 독재자와 역사의 반동세력의 방해와 난동이 없는 평화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세요. 당신이 졌던 역사의 십자가는 저희들이 지겠습니다. 이 땅에는 많지는 않지만 민중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뿌리고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위해 행동하는 예수의 제자이자 목사님의 제자들이 있으니 평안히 떠나세요.

목사님이 하늘나라로 가신 지금은 '사순절'(四旬節 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의 기간)입니다. 사순절에 우리들은 예수의 수난과 고난을 묵상하면서 목사님을 떠나보내겠습니다. 돈과 복을 사고파는 한국 교회, 불의에 굴복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불의로 전락한 한국 교회가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이 땅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당신의 민중신학이 꽃피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하고 행동하겠습니다. 목사님,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3월 15일, 금 7: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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