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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The church fell into the trap of salvation 030619
오늘날 교회는 '구원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다
[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집으로 오는 길에 육십 대로 보이는 한 분이 내게 길을 물었다. 무슨 교회를 찾는 모양이다. 모른다고 말했더니 혼잣말로 “밥도 못 먹었는데”라며 내게 “모르면 됐어요.”라고 말하며 끌고 가던 폐휴지 모은 카트를 힘겹게 끌고 갔다. 몇 걸음 안 가 밥을 못 드셨다는데 그분에게 돈을 드려야 하나를 생각했다. 그럴 땐 정말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그러다 그분이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늘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예수님을 대접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그런 경우가 가끔씩 있지만 번번이 기회를 상실하곤 한다. 물론 잘 대응해서 대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환대를 실천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거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환대를 실천하는 일은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사실 돈이 아까워서 망설인 것이 아니다. 나는 늘 핸드폰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집어넣고 다닌다.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도 늘 준비한다. 환대를 위한 준비이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다녀도 순간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김현경은 환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6년 1월 12일, p.193

나는 그의 정의에서 환대가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말이 참 좋다. 그 말은 곧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순간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 일이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렇다. 환대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 말은 세상에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론 순간적으로 그런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환대가 필요한 시간이다.

환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 참여하는 것

그렇다. 세상은 환대가 필요한 곳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것이 바로 그 사명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존재의 의미를 가지게 하는 일을 넘어 사명이다. 사명이란 맡겨진 임무이며 명령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름지기 환대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늘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환대라는 생각을 한다.

환대란 단순한 구제나 도움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지 않거나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오늘날 현실은 본분本分을 망각한 기독교의 현주소이다. 그래서 나는 방주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방주로 생각한다. 분당의 한 교회는 아예 거대한 방주 모양의 교회를 지었다. 그곳에 들어오면 산다는 것이다. 그런 복음이해를 가진 사람들은 결코 환대를 실천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실천하는 환대는 환대가 아니라 미끼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환대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환대를 베풀다 덤탱이를 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성들인 내 손길을 하찮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덤탱이와 무시는 상대방이 '사람' 연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환대를 실천하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일 뿐이다.

주변에 장애를 가진 부부가 있어 몇 번 반찬을 만들어주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주고 반응을 물었다. 좋아하는 것을 더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부부는 내가 정성을 들여 해준 음식을 하찮게 여긴다. 다시는 해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환대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을 다시 준비한다. 그들이 반기는 음식을 발견할 때까지.

오늘날 교회는 ‘구원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

그래서 구원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담겨 있는 복음에 감추어진 변혁의 폭발력은 발현되지 않는다. 구원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영원한 생명이 부어지면, 거듭나면,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아니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것이 아니라면 구원은 꽝이다. 교회가 방주라는 의식 또한 ‘구원이라는 함정’에 빠진 모습이다.

‘구원이라는 함정’에 빠지면 복음이 자기교회출석(교회 안에서의 예배)과 장례식에서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환대란 행위를 강조하는 인본주의자의 주장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가장 중요한 복음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구원이 진정한 구원이 된다.
 
 

올려짐: 2019년 3월 07일, 목 11:5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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