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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How we reveal the wickedness of pro-Japnanese group disguised as a patriot 030619
애국자 둔갑한 친일파 단죄하는 법, 고등학생 제안에 솔깃
[아이들은 나의 스승] 3.1운동 100주년인 올해는 친일청산 원년 될 수 있을까



▲ 3.1절 100주년, "만세!" 외치는 시민들.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친일 잔재 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어른들은 실천에 옮기는 데는 관심이 없거나 무척 소심한 것 같아요. 생색내는 데만 골몰하는 모습처럼 보이거든요. 친일 문제에 관한 한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다 끝날 게 분명해요.

따지고 보면, 올해가 100주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지나갈 것 같아요. 솔직히 100년이 다 되도록 앵무새처럼 친일 잔재 청산만 되뇌고 있을 뿐, 해결된 건 거의 없잖아요. 섣부르긴 해도, 머지않아 다들 '역사에 맡기자'며 눙치게 될 거라고 봐요."

"4월만 지나면 친일 청산 기사 찾아볼 수 없을 것"

3.1절 기념행사에 다녀왔다는 한 아이가 남긴 '참가 후기'다. 얼마 전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라면 마땅히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다(관련기사: 태극기부대 주제가 된 애국가, 고등학생들의 엄청난 제안). 그러면서 느닷없이 '친일'이라는 두 글자가 언론에 얼마나 오랫동안 다뤄질 것 같으냐며 내기를 걸어왔다. 그는 길어야 두 달이라고 했다.

그는 4월만 지나면 더 이상 친일 잔재 청산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이미 3.1절은 지났고,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만 끝나면 다른 이슈들에 묻혀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힐 거라는 거다. 대한민국에서 친일 잔재 청산은 늘 '장기 해결 과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기실 그가 말하는 친일 잔재 청산의 의미는 단순하고도 명료했다. 누군가가 명명백백 친일파로 규명되었다면, 그로 인해 생겨난 왜곡된 문화와 관행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가치관의 전도를 막는 가장 실효적이고 본질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마당에 후손에게 연좌제를 적용할 수도 없고, 선조가 친일 행위로 얻은 재산을 환수하는 건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전제했다. 그보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까발리고 지워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쉬운' 것부터 실천하는 게 낫다는 뜻일 테다.

이는 식민과 분단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더러, 미래세대에게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호언했다. 여론의 지지를 얻기도 쉬울 거라고 했다. 어차피 친일 잔재 청산의 '완성'은 교육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김백일은 친일 잔재 청산의 '시범 케이스'


▲ "친일 김백일 동상 철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는 3월 1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김백일 동상 옆에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 윤성효

그는 친일파 김백일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전국 곳곳에 동상이나 기념물이 세워진 대한민국 국군사에서 영웅처럼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항일독립군을 진압하던 간도특설대의 장교지만, 6.25 전쟁 당시 무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서울 국립 현충원 장군 묘역에 잠들어 있다.

다른 곳에선 생소해 할지 몰라도, 이곳 광주에서는 역사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정도라면 대개 그에 대해 알고 있다. 몇 해 전 그의 이름을 딴 도로와 초등학교가 시민들의 항의로 일사천리 개명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역 신문은 '민주화의 성지'에 버젓이 친일파가 득세하고 있다며 대서특필했다.

지방정부는 이에 화답하며 기존의 '백일로'를 '학생독립로'로, '백일초등학교'를 '성진초등학교'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도로변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자리하고 있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의 결사단체명이 '성진회'였던 까닭이다. 참고로, '성진(醒進)'은 직역하면 '깨어 나아가자'는 뜻이다.

그는 김백일을 '영웅'은커녕 '악당'으로 간주했다. <친일인명사전>과 인터넷 등에 탑재된 김백일의 행적을 수차례 반복해 읽었다면서, 그의 위상이 여전한 것이야말로 친일 잔재 청산 노력이 말뿐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김백일의 삶이 곧 우리 현대사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친일 잔재 청산의 '시범 케이스'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뜻 투박하고 과격한 그의 주장을 약간 다듬어 옮겨보면 이렇다. 우선 해방 후 '백일'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을 두고, 그간의 친일 행위를 '세탁'하려는 목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본명은 '김찬규'로, 해방 직후 고향인 북에서 월남하면서 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온 세상이 붉은 공산당의 세상이 되어도 홀로 푸른 하늘의 해로 남겠다는 뜻에서 스스로 '백일(白日)'로 정했다고 한다. 그가 이름을 바꾸고 고향을 등진 이유를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남쪽에선 숱한 친일파들이 미군정에 의해 중용되고 있었으니, 그에게 38선 이남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을 거라고 해석했다.

개명 사유가 사실이라면, '빨갱이'의 어원도 그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이름 자체가 '빨갱이'와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거다. 오로지 '빨갱이 소탕'이 악질 친일파로 살아온 그가 해방된 나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결과가 '백일'이라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푸른 하늘의 해, 곧 '청천백일(靑天白日)'은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밀려난 국민당의 상징으로, 현재 타이완의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내포된 의미 자체가 '반공(反共)'인 셈이다. 이를 차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방 후 그의 삶은 '반공'으로 점철됐고, 그와 맞서면 무조건 '빨갱이'였다.

순식간에 '친일'에서 '반공'으로 옷을 갈아입는 대표적인 인물이니만큼, 더 확실한 '예우'가 필요하다고 비아냥거렸다. 그의 이름과 행적이 한국사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만약 그의 이름이 교과서에서 다뤄진다면 '김백일류'의 악질 친일파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실 그의 삶은 일제의 주구 노릇을 하던 자들이 애국자로 돌변하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들은 관동군이나 고등계 형사로 일하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 군사학교에 입학해 국군이 되고, 제주 4.3과 여순 사건, 6.25 전쟁 등을 기회 삼아 승승장구하며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편입됐다. 말하자면, 그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현충원 김백일 묘 그대로 두자고 한 까닭


▲ 친일파 김백일의 묘, 서울현충원 내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 김종훈

그는 놀랍게도 국립 현충원에 있는 김백일의 무덤을 파내는 건 그다지 좋은 방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실효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대신 그의 묘비 옆에 친일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새로운 묘비를 세워 교육 자료로 삼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립 현충원에 들어와 있는 친일파들의 무덤을 과거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에 비유했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해 순간 통쾌했을지는 몰라도, 친일 잔재 청산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혹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꼴이라며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국립 현충원은 사시사철 많은 사람이 찾아와 현충의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의 현장이다. 그곳에 버젓이 친일파들의 무덤이 터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뒤틀린 우리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안 보이면 잊히기 마련이니 그 자리에 남아 자자손손 치부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왕이면 현충원 입구와 홈페이지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애국자'들을 검색할 수 있도록 묘의 위치와 행적을 안내하는 게시판을 설치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현충원의 위엄을 훼손시킨 저들을 반면교사 삼자는 거다. 무엇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 아니냐며 반문했다.

김백일과 밀접한 '국군의 날'도 바꿔야


▲ 지난해 10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국군의 날'을 교체하는 것도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국군의 날이 왜 10월 1일인지 몰랐다면서, 친일파 김백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국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 정작 친일파의 무공을 기리기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참고로,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된 후 김백일이 이끌던 1군단이 북진하며 38선을 최초로 넘었던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삼았다고 한다(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한겨레>보도에 따르면 1956년 국군의 날 제정 제안서 등 관련 자료에 38선 돌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군의 항일 투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6.25 전쟁의 전과만 기억되는 셈이다. '원죄'로서 친일 행적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법통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다고 헌법 전문에 명시돼 있으니, 국군의 날을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꾸자는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그가 어른들의 무기력과 나태함을 꼬집었던 건 바로 이 대목에서다. 명분도 있고 대안이 나와 있는데도 여태껏 관철하지 못한 건 기성세대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국군이 해마다 기념식을 열어 친일파를 기리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의 말마따나, 고작 김백일 한 사람과 관련된 친일의 흔적조차 '고르디아스의 매듭' 끊듯 과감히 잘라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판국에 친일 잔재의 완전한 청산은 백년하청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조롱하며 비관했지만, '10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기대어 과연 올해가 친일 잔재 청산의 원년이 될 것이라 낙관해도 될까. 언감생심 올해 현충원 내 친일파 무덤과 국군의 날 변경 관련 입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당장 4월 이후 일제 잔재 청산 관련 기사가 언론에서 사라지면 그가 이긴 거다. 내기의 승패는 늦어도 5월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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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9년 3월 07일, 목 11: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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