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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John Wesley is shocked to see Joel Austin 021319
존 웨슬리가 조엘 오스틴을 보고 경악하다
18세기 설교가들과 오늘날 유명 설교가들의 차이점


(뉴욕=뉴스 M) 편집부

(본 글은 케네스 베델 목사의 Inequlity.org에 소개된 글(A Historical Take on the 'Prosperity Theology' of our Deeply Unequal Times)을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주)

18세기 대각성운동의 주요 설교자들은 조엘 오스틴과 같은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설교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그들은 경악할 것이다.

언뜻보면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설교가들은 18세기의 그들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많은 수의 추종자들의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대규모의 대중집회를 개최하고, 즉흥적으로 설교를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화이트필드,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와 같은 아메리카 식민지(미국) 설교자들도 오늘날과 같은 방식을 취했다.

사실 웨슬리는 아메리카를 한번 방문한 것 뿐이지만, 그는 영국에서 이미 광대한 추종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해 놓았다. 화이트필드는 원고 없이 하는 웨슬리의 설교방식을 따라했으며, 에드워즈는 같은 방식으로 좀 더 감성적 접근을 시도했다.

에드워즈, 화이트필드 그리고 웨슬리는 모두 신학적인 부분에서 동의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드워즈나 화이트필드는 분명 오늘날 유명 설교자인, 오랄 로버츠, 케네스 코프랜드, 그리고 조엘 오스틴과 같은 이들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유명 설교가들은 대체로 같은 신학적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오늘날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주장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허락하시거나 개입하신다고 본다.

대각성운동의 설교자들 역시 오늘날과 같은 접근법을 선호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일했으며, 그와 같은 정신은 18세기 설교자들이 함께 일하는 것을 가능케 했고, 결국 ‘대각성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늘날 유명 설교가들은 예수를 따르라고 하지만,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정의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협조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보편적’(catholic) 정신이 부족한 것은 18세기 설교가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경악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 존 웨슬리(좌)와 조엘 오스틴 목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어라”

그럼, 오늘날 설교가들이 18세기의 그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웨슬리 등은 오늘날 설교가들의 행동과 말하는 방식, 그들의 부와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경악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유하기를 원하신다’ 라든지, ‘가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라는 주장을 듣고 경악할 것이다.

18세기 설교가들은 ‘부에 대한 경배’를 경멸했다. 그들은 모든 일에 ‘절제’를 강조했으며, 추종자들에게 분명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지시했다. 책임과 의무를 넘어서는 모든 ‘부’는 공동의 선을 위해 쓰여져야만 했다.

웨슬리는 “벌 수 있는 모든 것을 벌어라. 절약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절약하라. 그래서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아라. 그리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어라”고 말했다.

물론, 웨슬리에게 있어 ‘벌 수 있는 모든 것을 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도덕적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했다. 또한, 절약한다는 것은 검소한 삶을 주문한 것이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을 의미했다.

청교도 전통의 상속자라 할 수 있는 에드워즈 역시 검소하고 심플한 라이프 스타일을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선(善)을 위해 일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라고 봤다.

에드워즈는 “고결한 애정과 사랑은 하나님 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도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부’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귀속되야 한다고 믿었다.

18세기 설교가 중 가장 잘 알려진 화이트필드 역시 그의 ‘가난’을 보여줌으로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에게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선 엄청난 부로 축복해주실 것이다’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부유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21세기 설교자들은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수준의 재산은 공동의 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번영신학’의 창립자 중 하나인 오랄 로버츠(Oral Roberts)는 수백만달러의 집을 포함한 사치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했다.

케네스 코프랜드(Kenneth Copeland)는 7억달러가 넘는 재산을 소유한 오늘날 가장 부유한 설교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제트 비행기도 소유하고 있다.


▲ 케네스 코플랜드(좌)와 오랄 로버츠 목사

오늘날 번영신학 설교자들은 설교 집회, TV 방송, 그리고 책 판매 등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하고 있다. 오랄 로버츠는 다른 사람들의 기부를 통해 수백만달러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그 접근 방식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공통점도 발견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부유하게 될 수 있는가?’에 청취자들의 관심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랄 로버츠는 언제나 하나님께 헌금을 하면 수배로 갚아주신다고 촉구한다. 그는 늘 헌금이 필요한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머리속에 가지고 있다.

조엘 오스틴은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유하게 만드신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당신의 상황을 받아들여라”고 상담한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에 그들을 부자로 만들지 않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18세기 대각성운동을 일으켰던 설교가들을 통해 미국만의 독특한 특징을 행성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새로운 나라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오늘날 번영신학자들은 ‘평등’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직 개인적인 부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설교에서 정치적 입장을 말하지 않지만, 오직 세금과 관련해서는 ‘부당하다’고 주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의 재산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누가 부자가 되고, 누가 가난하게 되는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을 좀더 평등하게 만들도록 재분배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에드워즈, 화이트필드, 그리고 웨슬리는 그들을 보며 경악하고 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본보 제휴 < NEWS M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2월 17일, 일 11:1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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