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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활] 생활
 
Hong Byung Sik Column 020619
어린 시절 돌아보면 ‘행복’ 안다
행복은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로 만들어 지지 않아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근래 초등학교 2학년인 외손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인터뷰를 저에게 요청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이 내준 과외 활동의 일부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아이가 저에게 던진 질문은 거의 전부가 저의 초등학생 시절의 상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한 질문은 “할아버지의 초등 학교 시절에 먼저 떠오르는 기억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당시에는 일본 통치하에 있었던 한국이었는지라 학교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면 처벌을 받았고 집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면 아버지 한테서 야단을 들었다”로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제 외손자는 한국인이 왜 한국어를 사용하면 처벌을 받아야 했는지 이해 하지 못했습니다.

수년 전에 저는 제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 초청을 받아 북한의 참상에 관하여 말을 해줄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리고 고생하는 북한 동포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한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왜 남쪽으로 와서 살지 북쪽에 남아서 그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어린 학생의 마음에는 당연한 질문이었습니다.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그 어린 학생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 어린 아이의 석연치 않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했음을 아쉬어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외손자가 저에게 던진 질문 중에 “할아버지가 초등학생 시절에 집에 있던 현대기구는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세탁기, 건조기, TV, 자동차 등을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솔직하게 대답을 주었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 있었던 유일한 현대 기구는 벽에 걸려 있던 벽시계 한 가지 뿐이었다. 그나마도 그런 시계를 갖고 있던 집은 우리 동네에서 우리집 뿐이었다.”

전화로 제 대답을 받은 제 외손자는 그런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 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의 집에는 자전거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시골에 살던 거의 모든 집에서는 자전거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제 외손자는 뜻 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무엇입니까?”이었습니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는 쉬웠습니다. “아버님은 9명의 자녀를 두셨는데 대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던 기억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다.”고 대답을 주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자녀들과 또는 손자녀들과 여럿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는 즐거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의 행동과학자들이 조사 하고 연구한 결과를 보면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일 주에 세번 이상 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탈선할 획률이 훨씬 낮다고 했습니다. 빠쁜 세상이지만 저녁 식사만은 아버지들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는 사람은 저뿐만 아닐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제 외손자는 여러 가지의 질문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말하기를 열 세가지 질문을 했다고 했는데 질문의 내용으로 보아서 아마도 자기의 부모나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어린아이와 인터뷰를 30여분 동안 하고 나니 60여년 전의 추억이 저의 가슴을 채웠습니다. 한 두시간 동안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눈을 맞으면서 큰 누나의 등에 업혀 등교를 하던 추억, 축구공이 없었기 때문에 새끼 줄을 돌돌 말아 공을 만들어 동네 친구들과 늦도록 공을 차던 추억,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를 치던 추억, 철사줄을 휘어 만든 스케이트를 얼음 위에서 타던 추억, 2차 대전 말 경에는 물자가 모자라 신발도 없어서 맨발로 학교에 가던 추억, 포장이 되어 있는지 않은 소위 신작로에서 하루에 한 두번 오는 버스가 흙먼지를 뿜으며 달리던 모습, 명절에 떡을 치던 장면, 밤의 적막을 뚫고 퍼지돈 율동적인 다듬이질 소리, 한가한 삼복 더위를 알려준 매미 소리, 친척들이 여럿 모여 제사를 지내던 모습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추억들이 주마등 처럼 제 뇌리를 스쳐 갔습니다.

되돌아 보건데 현대의 문명을 누리지는 못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즐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사랑을 나누며 보낸 어린 시절이 지금에 비하여 오히려 행복했던 추억으로 떠 올랐습니다. 행복은 확실히 편리나 소유물로 만들어지지 않는 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올려짐: 2019년 2월 05일, 화 11:0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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