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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biography 013019
데이빗 소로우와 무위당 장일순
[무위당 장일순평전 2회] 무위당이 소로우를 닮은 대목은 자연주의사상에서 꼭짓점을 이룬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장일순 선생 무위당 장일순 선생 ⓒ 무위당 사람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한국현대사의 거칠은 들판에서 그때마다 일관된 자세로 시대정신을 구현하면서 정직하게 살아온 야인이다.

'일관→시대정신→정직'이라는 등식의 생애가 여간해서 성립되기 어려운 한국적 풍토에서 그는 그것을 해내었다. 역풍과 반동이 극심했던 시절에 선생은 의롭게 살았고, 그래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무위당의 길은 20세기 후반 한국 지식인으로서 걷기 쉬운 노선이 아니었다. 선생의 삶은 몇 단계로 분류된다.

첫 단계, 미군 대령의 국립 서울대학 총장 부임에 반대투쟁한 학창시절,
둘째 단계, 혁신정당으로 국회의원 총선에 나왔다가 실패한 청년시절.
셋째 단계, 중립화평화통일론을 주창했다가 5ㆍ16쿠데타세력에 투옥된 30대 시절.
넷째 단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중년시절.
다섯째 단계, 지학순 주교 등과 박정희 독재 정권에 투쟁시기.
여섯째 단계, 민청학련사건 관련자와 민주인사들의 보호시기.
일곱째 단계, 농민ㆍ노동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승화한 시기.
여덟째 단계, 민주세력을 통일운동으로 결집한 민족통일국민연합 시기,
아홉째 단계, 도농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의 창립시기.
열번째 단계, 본격적인 생명사상운동 시기.

이것은 필자의 임의적인 분류이다.

중년 이후에는 몇 가지 사업(과제)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선후가 바뀌어 추진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때도, 어느 것도 사적인 이해를 취하거나 명예를 탐하지 않았다. 물론 세속적인 욕망과도 거리가 멀었다.

선생은 시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찾았고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역사에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아는, 그리고 그 자리를 자신의 것만으로 굳히려 하지 않았다. 주어진 역할을 진득하고 충량하게 실천하고 빈자리를 남겼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말한다. 도인(道人)인가 하면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는 소탈한 성품이고, 곰살갑고 다정다감하였다고. 일부 진보적 인사들의 의식이 마치 봉인된 병속에 갇힌듯이 도그마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고 더러는 과격한 주장을 펼 때에도 선생은 한결 같았다. 궁핍함 속에서도 생활의 여유가 있었고 분망함 속에서도 유유자적하였다. 그리고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어울렸다.


▲ 160여년 전 월든 호수 주변에 2년여간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집과 그의 동상. ⓒ 최방식

나는 여러 해 전 미국 동부 보스톤의 콩코드 마을에서 남쪽으로 1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월든 호숫가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살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그가 손수 지은 통나무집은 사라지고 똑같은 모형이 먼 동양의 길손을 맞았다.

미국과 같은 물질문명, 기계문명 사회에서 어떻게 소로우와 같은 자연주의 철인이 나왔을까, 오래 전부터의 의문이었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살던 어느 날 일기에 썼다.

아. 평생 한결 같은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평범한 계절에 작은 과일이 무르익듯
내 삶의 과일도 그렇게 무르익을 수 있다면!
항상 자연과 교감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계절마다 꽃피는 자연의 특성에 맞춰
나도 함께 꽃피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아, 그러면 나는 앉으나 서나 잠들 때나 자연을 경애하리라.
시냇가를 따라 걸으며 새처럼 노래하는 기도자가 되어
커다란 목소리로 혹은 혼잣소리로 기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로우가 떠오른 것은 무위당 선생과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이다.

소로우가 살았던 미국사회 못지않은 물질주의, 퇴폐한 신자유주의, 군사문화주의의 한국에서는 여간해서 무위당과 같은 인물이 나오기 힘든 풍토였다.

미국의 노예제를 반대하고 멕시코 침략전쟁을 비판했던 소로우가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았듯이, 무위당은 남북간의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인 중립화통일론을 주창하다가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무위당이 소로우를 닮은 대목은 자연주의사상에서 꼭짓점을 이룬다. 월든으로 돌아온 소로우의 독백이다.

전에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하던 눈이
이제는 들리고 보인다.
세월을 살던 내가 순간을 살고
배운 말만 알던 내가 이제는 진리를 안다.

무위당이 '한살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연설의 한 대목이다.

지금 세계문명은 핵무기, 공해 같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사람의 욕심에서 온 거란 말이에요. 지구가 병이 들고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대기가 오염된 이런 공해의 일체가 욕심에서 온 거란 말입니다.

자연보호 하자고 하면서도, 자연을 착취하는 생산을 계속하고 있단 말이에요.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그렇지 않습니까? 원인에 대한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문제의 결과만 땜질을 하려 드니까 그게 되나요? 되지를 않지요.

무위당 선생은 20세기 한국에서 대단히 보기 드문 유형의 인물이다. 그래서 '21세기형'이라는 평이 따른다. '21세기형'의 인물은 생태주의사상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 년 신자유주의 이름 아래 더욱 심화된 빈부격차 등 한국사회의 중층적인 모순구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살림' 운동 등에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물질문명 대신 생태문명론을 줄기차게 제시해온 무위당 장일순 선생,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사유한 사람, 대단히 정직했고, 군림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했던, 그러나 범상했던, 무위당의 발자취와 사유의 편린을 찾고자 먼 길을 떠난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2월 01일, 금 10: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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