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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허리케인
 
To a senior Korean 012319
"미국이 싫으면 미국을 떠나라"?
플로리다로 은퇴를 즐기러 오신 어르신께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우선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신 어르신께 뒤늦게나마 환영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 곳 플로리다에는 늘푸른 골프장, 그리고 던지자 마자 입질을 하는 환상의 낚시터가 많아 은퇴생활 하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 오셔서까지 조국의 현실로 고민하고 계신 어르신이 있다는 것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어르신께서 이런 저런 모임들에서 저희 신문과 제가 쓴 글들이 '용공', '종북', '반미'라며 비난을 하셨다는 얘기를 잘 전해 듣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싫으면 미국을 떠날 일이지 왜 남아선 좌빨질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접하고는 섬뜩함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분노 보다는 한없는 서글픔에 빠지곤 합니다.


▲ 제가 종종 가고 있는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 피싱 피어입니다. 사시사철 각종 고기가 잡히고 있습니다.

어르신의 비난을 듣고 이래저래 착잡한 심사를 달래던 중 불현듯 대학시절의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학업성적은 물론 리더십도 출중하던 그 친구와 하숙생활을 함께하며 친하게 지내던 처지였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매주 금요일만 되면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가 일요일 밤 늦게 나타나곤 했는데, 알고 보니 소위 사이비 종파의 어떤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깐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계획적인 마음 돌리기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바쁜 추수철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친구의 고향집에 내려가 일도 거들어 주었고, 때로는 친구의 홀어머니에게 고깃근 선물도 했습니다. 친구가 단과대 학생회장에 출마했을 때는 참모 노릇도 해 주었고, 목적을 갖고 종종 서적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1년여 동안 공을 들여오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 뒤편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 저녁의 어이없는 참패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친구가 저를 일격에 다운시킨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친구, 네 맘 다 알아. 근데말야... 참 미안한데, 너 내가 한 경험 해 봤어?"

친구는 간증을 한다며 수 년 동안 쌓여져 온 종교적 경험을 열에 들떠 말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저는 친구가 누려온 체험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정연한 종교적 신념 속에서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온 친구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신념에만 인식이 딱 정지되어 있는 친구와 저 사이에는 엄청난 벽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분단극복 발목잡는 '6.25 경험'

그렇지요. 아마도 어르신의 세대에게는 6·25를 통해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는 이렇게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되뇜이 삶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혈혈단신 땅 문서 쥐고 남으로 내려와 80이 훨씬 넘도록 아직 고향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고백 앞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낍니다. 낮설은 남녘 타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셨을 어르신의 삶의 역정을 미루어 짐작컨데, '북괴'에 대해 원망과 증오의 마음이 어느정도 였을지는 불문가지 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60여 년 전의 그 경험때문에 빨강색과 파랑색 외에 다른 색깔을 볼 수 있는 눈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정말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 개인적 변화과정에 얽힌 저 자신의 긴 사연을 짧은 지면에 구구절절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어르신 세대의 쓰린 경험만큼이나 저의 세대에게도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광주에서 벌어진 '빨갱이 토벌 사건'에 대한 비통한 경험이 있고, '다시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비극이 우리 땅에서 벌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되뇜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지난 세월 우리 땅은 반목의 세 월로 서로 죽고 죽이고 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 'Enough is enough' 아닙니까?

어르신, 70여 년 동안 당신 세대의 쓰라린 경험에 의해 세워진 남북 대결구도가 분단을 허무는데 단 한 치의 진전도 이루어 내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 어떤 대안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이제 시대는 부지런히 변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시대를 변화시킨다기보다는 시대가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급속도로 돌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카이로스의 시간(획기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결정적 시간)을 살고 있는 중입니다.

어르신, 우리가 이러한 결정적 시간을 살면서 과거의 경험에만 매달린다면 어떻게 실패한 역사를 딛고 새로운 역사를 일궈 낼 수 있을까요.

저의 소견은 이렇습니다. "실효성이 없는 박제화 된 경험은 혹 역사진행을 위한 참고는 될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현재와 미래의 역사진행을 추동하는 요인이 되기를 고집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70여년 해 보아서 잘 안 되었으니 이제는 다른 생각, 다른 방법으로 하자"는 것이지요.

저는 이 다른 생각, 다른 방법의 도도하고 당찬 흐름, 즉 '화해를 통한 상생'의 새 흐름이 '옳다' 또는 '더 좋다'고 믿고 이 흐름 속에 나름의 날개짓을 해 왔을 따름입니다.

저는 어르신이 의심하는 좌경도 용공도 반미주의자도 아닙니다. 휴전 직후 남쪽 땅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양코 선교사가 날라다 주던 초콜릿 맛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아왔고, '북진통일' 구호를 지나 '승공통일' '반공통일'을 꿈에도 외치며 세뇌를 받으며 살아온 제가 그리 쉽게 반미주의자·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 1901년에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고, 1980년대 개축된 고향의 교회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초콜릿과 구호물자를 먹으며 자랐습니다.

세속적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기독교인들

딴은 태생적이고 체득적인 한계로 인해 저 같은 세대도 이미 이러한 반미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되기에는 늦어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미국 땅에 와서 30여년 동안 콜라와 햄버거와 스테이크에 뱃살이 올라 버렸고, 본국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십 수 년 동안 미국적 분석의 틀을 갖춘 학문과 삶의 방식에 길들여진 제가 정말 반미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고 해서 저는 철저한 자본주의 신봉자도, 친미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해 아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어르신의 호통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럼, 넌 뭐란 말이냐? 굳이 집요하게 물어 오신다면, 남누리 북누리 우리 땅의 거민들이 강대국의 패권주의적 책략을 간파하여 이에 놀아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우리를 포박하려 들고 있는 그 어떤 한시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도대체 시대 시대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이즘'이라는 것이 인류 모두가 세상 끝날까지 목을 내걸고 추구해야 할 절대가치로 행세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장로님이신 걸로 보아 어르신은 분명 신앙심 깊은 분으로 생각됩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란,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독교적 신념을 지고의 절대가치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니던가요?

여기서 감히 어르신께 도발적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어르신이 그다지도 애지중지 하시는 '반공주의'라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에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믿으십니까?

만약, 반공주의가 '부분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에 부합한다는 점을 인정하신다면, '절대진리'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반공주의라는 '상대가치'에 목을 걸어야 될 이유는 없겠지요. '상대가 절대를 대체할 수 없고, 부분이 전체를 대체할 수 없다'는 논리학적 근거를 떠나, 조금만 사고력을 발휘하면 이같은 사고방식이 얼마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논리적 귀결이 아니더라도, "온전한 것이 이를 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폐하여 진다"고 한 고린도서의 말씀을 떠올린다면, '반공주의=기독교' 같은 등식에 목을 걸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신성한 기독교적 가치를 얼마나 황폐화 시키는 일인지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우리 땅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반공주의'라는 우상에 빠져서 카인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때, 소수의 선각적 기독교인들과 비 기독교인들이 목을 걸고 이를 깨우쳐 주려 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어르신,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남북 가릴 것 없이, 사회주의 자본주의 따질 것 없이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 뭉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기독교인 불교인 유교인 종파 교파 교단 가릴 것 없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아닌가요?

아직도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게 있기에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미국의 통보 한마디로 전쟁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남쪽, '벼랑끝 전략'으로 핵폭탄 달랑 들고 너죽고 나죽자고 버티고 있는 북쪽, 한반도를 거점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며 호시 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미중일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맛을 본 나라이고, 동아시아 패권 전략에 따라 월남전을 획책하여 무수한 살상자를 냈고, 불과 수년 전에는 '대량살상무기 제조나 911 테러의 증거가 없다'며 국제사회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 십만 명을 살상한 나라입니다.

지금이 어느때입니까. 건국 이후 세상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230여 차례) 전쟁을 한 나라, 가장 전쟁을 잘하는 나라, 거의 매년 전쟁을 하는 나라 미국이 이끄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상입니다. 이같은 일극체제 슈퍼파워의 세상에서 남이나 북이나 '민족의 생존'이라는 과제 앞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미주동포는 남북화해를 위한 '디딤돌'

어르신, 잠시 거칠게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어르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왜 이러한 민족적 위기의 때에 우리를 미국땅에 보내 밥술이나 뜨게 하셨을까요. 쉽게 말해서 "그래, 너 참 복 많이 받았다. '멜팅팟'에 녹아 들어가서 잘 먹고 잘 살거라!" 아니면 "그래 미국을 부추겨서 어떻게든 저 '악의 축' 때려 부셔라! 남이나 북이나 모두 폭싹 망하든 말든..." 이것이 하늘의 뜻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어르신께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는 애굽 땅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위기의 때에 조국을 위해 쓰임 받은 요셉이나 모세와 같은 존재로 이 땅에서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혹 우리는 민족 발전의 엉겅퀴와 같은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한 디딤돌 같은 존재로 이 땅에 살라고 '파견'된 것은 아닐까요?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형제가 형제를 적으로 삼고 미워하는 쓴뿌리를 가슴에 품은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외람되게도 '평화의 왕'으로 이 땅위에 오셨다는 예수님을 섬기시고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으실 어르신께 성경 말씀 한 구절을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혹 낚시하시다, 골프하시다 한 번 쯤은 깊게 묵상하며 함께 나누는 기회가 오기를 고대합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십니다" (시편 33편 10절)


▲ 플로리다에는 이처럼 멋진 골프장이 널려 있습니다. 어느날 라운드를 함께 돈 후에 시편의 말씀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올려짐: 2019년 1월 24일, 목 10: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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