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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Sinuiju changed a lot 011619
2년만에 찾은 신의주... 많이 달라졌구나
[신은미의 북한 이야기 -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①] 58톤 쌀에 담긴 동포애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의 북한 여행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2017년 5월 신은미 시민기자가 다녀온 북한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편집자말]


▲ 북한 선전매체 "내나라"가 2016년 9월 공개한 함경북도 지역의 홍수 피해 모습. 홍수로 가옥들이 파손되고 다리가 끊어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 내나라/연합뉴스

(LA=오마이뉴스) 신은미 기자

2016년 북녘의 대홍수

2016년 여름,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의 지역에서 큰 홍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수만 북녘동포들의 집이 파괴됐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중국에서 쌀을 구입해 북한에 전달하기로 결정한 것. '신은미 재단'을 설립하고 동시에 모금운동도 벌였다. 순식간에 4000만 원에 가까운 성금이 모였다. 남한의 동포들, 해외동포들, 그리고 뜻을 함께 하는 외국인들이 동참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한국의 은행 계좌로 입금된 남녘동포들의 성금을 해당 지점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인출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곧바로 서울에 사는 '신은미 재단' 이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변호사인 그분의 도움으로 성금을 송금할 수 있었다. 후일 <시사IN>은 당시의 인출거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종범 수석에게 내린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 개인 금융 정보까지 탈탈 턴 청와대).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예전처럼 힘들진 않다고들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쌀을 구입해 북한으로 가져가기로 한 것은, 비록 한 줌의 쌀에 불과하지만 남녘과 해외동포 그리고 함께 가슴 아파하는 외국인들의 마음을 따뜻한 '밥 한 공기' 속에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성금을 인출하니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미국 국적자가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내려면 미 재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하루빨리 쌀을 전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 몇 개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막상 미 재무부의 허가를 받고 나니, 이젠 쌀 구입을 할 생각에 가슴이 막막했다. 대체 쌀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해야 하며 이를 북한에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 건지...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남편과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재중동포 3세 기업인 리헌호 사장을 소개받았다. 리 사장에게 쌀 구입부터 세관 통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북한 비자를 신청했다.

압록강철교 한가운데서 눈시울을 적시다


▲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 신은미

2017년 5월 13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한다. 14일 밤 북경을 거쳐 심양공항에 도착하니 리헌호 사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심양의 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뒤, 다음날 아침 리 사장과 우리는 육로를 통해 중국의 국경도시 단동으로 향한다.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를 바라보는 도시다.

단동에 도착하자마자 북한 영사관에 가 미리 신청해 놓은 비자를 받아 국경으로 향한다. 점심식사를 위해 압록강변에 위치한 북한식당 '류경식당'에 들어선다. 남편과 나의 남한 말투를 들은 식당의 종업원은 "남조선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라면서 거절한다.

리헌호 사장이 서툰 우리말로 "이분들은 해외동포인데 곧 북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안으로 안내한다. 리 사장에 의하면 2016년 4월, 12명의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남으로 간 뒤부터 북한 식당은 남한 손님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한다(이후 이 집단 탈북 사건을 두고 '국정원의 기획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식사를 마친 후, 58톤의 쌀을 실은 화물 트럭이 세관을 통과해 압록강 철교로 진입하는 걸 확인한 리헌호 사장이 우리를 철교 바로 앞 출입국 사무소로 안내한다. 마음이 따스하고 친절한 리 사장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다.

귀국하는 북녘동포들 틈에 섞여 출국 수속을 밟는다. 대부분 귀국하는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기대로 모두 들떠 있는 모습이다. 입고 있는 옷들도 모두 새로 사 입은 듯하다. 예전 우리네 추석 명절을 앞둔 기차역 귀성객 모습이다.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올릴 때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저 가방 속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들께 드릴 선물들이 가득 들어 있겠지. 나도 트럭에 실려 있을 쌀을 걱정하며 함께 국경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건넌다.

민족의 슬픈 사연이 어린 압록강을 내려다 보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수해를 입은 북녘의 동포들에게 한 줌의 쌀을 전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하나. 쌀이 남아 돌아서 그 쌀의 보관료만도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남녘 쌀을 수해를 입은 북녘 동포에게 보낼 수는 없는 것인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진 또 다른 철교 잔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강을 건넌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신의주


▲ 신의주 화물 하역장에서. 평양에서 온 경미와 함께. 화물트럭 안에 실린 쌀이 바로 동포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쌀이다. ⓒ 신은미

신의주 세관에 도착하니 평양에서 온 수양딸 경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의주 해외동포위원회 직원도 함께 나와 우리의 수속을 도와준다. 2015년 10월 신의주를 방문했을 때 우리를 안내해 줬던 바로 그분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화물하역장으로 가 쌀을 확인한 뒤 신의주 시내에 들어선다. 2015년 10월 처음 신의주를 여행한 이후 두 번째 찾는 신의주.


▲ 새로 짓는 "압록강려관". 2017년 5월에 본 신의주는 2년 전의 신의주와 크게 달라져 있었다. ⓒ 신은미

2017년의 신의주는 2015년의 신의주와 달랐다. 이곳도 평양과 마찬가지로 사방이 건설공사 중이다. 오늘밤 우리가 지낼 '압록강려관'도 바로 옆 빈터에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체크인을 한 뒤 방에 짐을 내려놓고 경미, 신의주 해외동포위원회 직원과 함께 여관을 나선다. 너무 피곤해 밥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마중 나온 이들을 위해 식당을 찾는다.

압록강에서 채취한 조개로 만든 조갯국, 오이물김치 덕에 겨우 섭조개죽 한 그릇을 비웠다. 남편도 피로 때문에 식욕이 없는지 다른 음식은 손도 안대고 육회를 안주삼아 대동강맥주만 마신다. 저녁식사를 마치니 피로가 엄습해 온다. '압록강려관'으로 돌아와 힘없이 쓰러진다. 로스앤젤레스, 북경, 심양, 단동, 신의주를 잇는 긴 여정이었다.

내일(2017년 5월 16일)은 평의선(평양-신의주) 열차를 타고 수양딸들이 살고 있는 평양으로 간다.


▲ 섭조개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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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9년 1월 18일, 금 6: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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