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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A pastor to serve as a substitute driver for Christmas 122618
성탄절에도 대리운전 뛰는 목사, 교인들에게 헌금 돌려준 이유
[인터뷰] 하늘뜻푸른교회 박종배 목사, '광야 생활' 하며 기성 목회 프레임 탈피



▲ 박종배 목사(사진 오른쪽)가 손님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 탑승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울=뉴스앤조이) 이용필 기자 = 아기 예수 탄생을 이틀 앞둔 12월 23일, 강원도 강릉시는 초봄처럼 포근했다. 온도계는 영상 10도를 가리켰다. 날씨와 관계없이 성탄절 분위기는 곳곳에서 느껴졌다. 길가에는 크리스마스캐럴이 퍼지고, 성탄 트리 조명이 어두운 길목을 밝혔다.

보통 목회자라면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할 시기인데, 박종배 목사(하늘뜻푸른교회)는 다른 일로 바빴다. 자정이 넘은 시각, 강릉 교동 택지에서 서성이던 박 목사 앞에 승용차가 멈춰 섰다. 박 목사가 재빨리 차량에 탑승했다.

"열다섯 번 픽업. 열다섯 번."

소형 무전기를 입에 바짝 댄 차량 기사가 '열다섯 번' 대리운전 기사를 태웠다고 회사에 보고했다. 대리운전 기사를 태우는 '픽업 차량'이었다. 열다섯 번은 박종배 목사다. 대리 기사들은 이름이 아니라 '영 번', '사 번', '삼십 번' 등 숫자로 불렸다. 픽업 기사는 송신과 동시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아르피엠(RPM)이 치솟았다. 대리운전은 속도가 생명이다. 대리운전 기사 4명을 태운 픽업 차량이 곡예 운전을 하며 도로를 활보했다.

박종배 목사는 대리운전만 6년째 하고 있다. 보통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일한다. 하루 평균 20번 대리운전을 한다. 대리운전은 혼자서 할 수 없다. 대리운전 기사를 실어 나르는 '픽업 차량'이 항상 뒤따른다. 손님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면 픽업 차량이 지정 장소까지 대리운전 기사를 데려다준다. '콜'(주문)이 차고 넘치는 저녁 8~10시에는 말 그대로 전쟁이다.

기자는 박종배 목사가 몸담고 있는 '기분좋은대리운전' 업체에 미리 협조를 구하고, 12월 22일 저녁 7시부터 동행 취재를 했다. 픽업 기사는 "여기는 교통이 발달한 서울과 시스템이 다르다. 픽업 차량이 대리운전 기사를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한다. 바쁠 경우 기사들이 10분 정도 길가에서 대기할 때도 있다. '탕 뛰기'를 해야 하는 기사들 입장에서는 피 같은 시간이다"고 설명해 줬다.

'탕 뛰기'는 대리운전 횟수를 말한다. 탕 뛰기를 많이 할수록 기사들이 버는 돈도 많아진다. 픽업 차량이 멈추자 박 목사가 후다닥 하차했다. 길가에 대기하고 있던 손님에게 다가가 인사한 뒤 키를 건네받았다. "열다섯 번, 노암 수원왕갈비. 노암 수원왕갈비." 무전기 너머로 박 목사 음성이 들려왔다. 손님을 태우고 노암동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한다는 말이었다.

강릉시 대리운전 요금은 보통 7000원부터 시작한다. 이동 거리가 길수록 요금도 올라간다. 지리에 밝고 운전을 잘하는 기사일수록 돈도 많이 번다. 박 목사는 "회사에 있는 한 여성 대리운전 기사는 월 400만 원을 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은 업무 특성상 취객을 상대하는 일이 잦다. 문제는 손님 중 열에 한두 명은 '진상'이라는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에게 시비를 걸거나 멱살을 잡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박 목사는 "처음에는 진상 손님 탓에 많이 당황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다. 폭행 낌새가 보이면 미리 도망갈 준비부터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이날 진상 손님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박종배 목사는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틈틈이 들려줬다.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1년에 1~2번 사고를 당하는 게 대리운전 세계라고 했다.

박 목사도 2주 전 아찔한 일을 겪었다. 새벽 1시경 손님을 태우고 주문진으로 향하던 중, 도로 한복판에 서 있던 고라니를 들이받았다. 80~100km 운전 중이어서 피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차량 하단부가 크게 파손됐다. 박 목사는 면책 보험료로 3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3일치 임금이 날아간 셈이다.

강릉에 첫눈이 내린 날, 승합차를 타고 가던 중 빙판길에서 세 바퀴를 회전한 적도 있다. 박 목사는 "운전 실력과 상관없이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도 만났다. 성매매를 하러 가는 현직 판사를 비롯해, 불륜에 빠진 사람,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 유명 영화배우 등을 대신해 운전했다. 술에 취한 다른 교회 장로와 안수집사를 손님으로 맞을 때도 있었다.


▲ 박종배 목사는 6년째 목회와 대리운전을 병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픽업 기사가 말했듯이 저녁 8~10시가 되자 정신이 없었다. 콜이 밀려들었고, 픽업 기사들은 대리운전 기사를 실어 나르기 바빴다. 박종배 목사와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박 목사는 새벽 1시부터 여유가 날 것 같다며 그때 다시 인터뷰하자고 양해를 구했다.

새벽 1시가 되자 피로가 급격히 밀려왔다. 하지만 낮과 밤이 뒤바뀐 삶을 사는 대리운전 기사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콜을 기다렸다.

박종배 목사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교회 세습 문제를 떠올린 적도 있다고 했다. 하루는 고급 외제차를 대리운전한 적 있다. 여타 차량과 비교할 수 없는 승차감과 속도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내리기가 싫었다. 3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소유욕이 밀려왔다.

"내가 고급 외제차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처럼, 세습하려는 목사들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땀과 눈물을 흘리고 열정을 불살랐을 것이다. 교회 규모가 커지고, 추앙받고, 지지 세력이 따르고, 돈도 있다 보니, 교회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말로만 '교회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 같다. 진짜 주인은 뒷좌석에 따로 있는데, 목사가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삯꾼'이라는 비난을 듣는 게 아닐까 싶다."

새벽 2시경 마지막 콜이 들어왔다. 박 목사는 손님을 강릉시 성산면까지 데려다주고 1만 3000원을 받았다. 22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21번의 '탕 뛰기'를 했고 19만 5000원을 벌었다. 번 돈의 절반은 회사로 송금했다. 이날 박 목사는 9만 7500원을 벌었다.

대리운전, 택배, 부식 납품도… 몸으로 일하면서 생각도 서서히 바뀌어

박종배 목사는 2012년 6월 강릉시 교동에 하늘뜻푸른교회를 개척했다. 개척 멤버를 포함 10명 넘게 모였다. 박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에서 10년 넘게 부교역자로 지냈다. 기존에 해 오던 방식대로 목회하면 금방 자리 잡을 줄 알았다. 예상은 엇나갔다. 1년도 안 돼 '생활고'에 직면했다.

이중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창 고민하던 중 목회멘토링사역원(김종희 대표)이 주최한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에 참가한 뒤 마음을 굳혔다.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이중직을 실천하는 목회자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박 목사는 대리운전을 시작으로, 택배, 부식 납품 등을 했다. 지금은 대리운전에 전념하고 있다.

개척 교회 목사가 된 후로 더욱 부지런해졌다. 박 목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리운전을 한다. 일요일에도 쉬지 않는다. 만근滿勤이다. 성탄절에도 일한다. 박 목사는 "교회와 목회를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중직은 뜻하지 않게 사고의 변화를 불러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부교역자로 지낼 당시, 박 목사는 조직에 충성을 바쳤다. 반공·교회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2004년 <시사저널>이 조용기 목사의 재정 유용 의혹을 제기하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규탄 집회로 맞불을 놨다. 당시 박 목사는 <시사저널> 심상기 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에 앞장섰다. 그뿐 아니라 조용기 목사의 재정 의혹을 제기하는 교회개혁실천연대 당시 공동대표 방인성·박득훈 목사를 향해 "좌빨 목사들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뉴스앤조이>를 향해서는 "김일성이 준 돈으로 취재하고 기사 쓴다"고 비난했다.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생각의 틀은 강릉에 온 뒤로 변해 갔다. 강릉은 박 목사에게 '광야'나 다름없었다. 부족함을 몰랐던 삶은 이곳에 온 뒤로 '극빈'으로 내몰렸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각도 변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든 생각은 '동병상련'이었다. 기존에는 '교인들이 고생해서 번 돈으로 헌금을 내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머리로만 이해한 것이다. 막상 직접 일을 해 보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다. 박 목사는 "교인들이 낸 헌금은 피땀 흘려 번 돈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녹록지 않은 교인들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동안 기득권 편에 서 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보다 가진 게 많았을 때는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반공 프레임을 덧씌워 공격했다. 광야에 선 지금은 다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먼저 생각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변하게 됐다.

변한 나를 보고 선배들은 우스갯소리로 어쩌다 '좌빨'이 됐냐고 묻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급유턴을 하긴 했다. 그런데 삶이 달라지니까 똑같은 성경 말씀도 전혀 다르게 다가오더라. 이전 말씀은 흑백이었다면 지금은 3D 입체 영상으로 다가온다."

박종배 목사는 자신처럼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 땅의 목회자들을 변호하기도 했다. 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이유는 경제 때문이지 목회자의 영성이나 인품, 실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닫는 교회들의 목회자가 영성이나 인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총알'(재정)이 없어서 그런 거다. '믿음이 없어서 교회 문을 닫는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성공한 목사만 목회해야 하고, 실패한 목사는 목회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목회자들이 용기를 냈으면 한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 된다. 나는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는다. 술을 안 마시니까 펑크 내는 일도 없고, 돈 계산할 때 속이지도 않는다. 실개천이 냇가를 이루듯이, 우리가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생태계도 변화할 것이다. 일상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일하면 된다."

신앙적 차이로 교인들과 갈등… 낸 헌금 돌려주고, 축복 기도하며 이별

일만큼 목회도 소중히 여겨 왔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닥친 적도 있다. 하늘뜻푸른교회는 올해 3월 진통을 겪었다. 보수적이면서도 기복신앙을 추구하는 몇몇 교인이 박종배 목사의 신학과 신앙관을 문제 삼은 것이다. 결국 박 목사는 교인들과 갈라서야 했다.

"우리 교회는 '서로 함께'를 표방해 왔는데, 내 인격이 부족하다 보니 공동체가 힘들어했다. 기복신앙을 고수하는 교인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니까 갈등을 겪었다. 강릉에만 교회가 240개 넘게 있으니까, 이분들을 포용해 줄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내보내지 않았다. 그동안 이분들이 낸 헌금을 계산해서 돌려줬다. 1000만 원대였다. 건축 헌금 용도로 모아 온 돈을 건넸다. 축복 기도도 해 줬다. 이번 일로 교회 재정은 제로가 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 같다. 만약 '목사는 옳으니까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다면 그분들에게 폭력이 됐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목사가 은연중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기 생각에 반대하는 교인들을 설교를 통해 정죄하거나, 주의종을 자처하며 자신이 옳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박종배 목사는, 목사들이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들이 성경만 가르치면 되는데,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군다. 자기가 진리인 양 떠들기도 하는데, 위험하다. 목사는 목사이기 전에 사람이다. 모르는 건 보고 배워야 하는데, 남이 한마디 하면 목사는 다섯 마디, 열 마디 한다.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박종배 목사는 하루하루가 고되지만, 초대형 교회 부교역자로 있을 때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교구 교인 관리와 예배에 집중했던 이전의 삶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했다. 박 목사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독립 책방'을 열어 보고 싶다고 했다.

현재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경제문제다. 박 목사는 극빈의 나락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극빈에 빠졌을 당시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됐고 삶이 피폐해지는 걸 느꼈다. 박 목사가 쉬지 않고 운전대를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목사는 가난과 극빈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결코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공과금과 차량 유지비를 걱정하지 않는 '가난'의 범주에만 들어가면 된다. 목회자들은 절대 극빈의 영역에 들어가면 안 된다. 이 길을 벗어나는 방법은 자비량뿐이다. 남의 시선이나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의식할 필요 없다. 그런 사람들치고 도와주는 사람 없다. 자비량이라도 해서 극빈의 나락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 이중직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다. 교인의 삶을 이해하게 됐고, 반공·교회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됐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하늘뜻푸른교회는 일요일 오전 9시, 딱 한 번 예배한다. 등록 교인은 10여 명인데 23일 기자가 교회를 찾았을 때, 지하 예배당에는 박 목사와 청년 한 명밖에 없었다. 박 목사는 혼자서 찬양 인도, 기도, 설교, 축도를 했다.

예배가 끝난 뒤 박 목사에게 피곤하지 않은지, 몸은 괜찮은지 물었다. 박 목사는 "육체적으로 피곤하지만 하나님이 순간순간 부어 주는 게 있다. 힘들 때면 성령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감동을 주실 때가 있다. 목회를 성공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성령님 음성을 듣고 힘을 내고 있다. 50대 초반인데 건강한 것만으로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 강릉시 교동에 있는 하늘뜻푸른교회 내부 전경. 박 목사는 2012년 6월 교회를 개척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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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9년 1월 04일, 금 4: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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