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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Beyond the age of spritual puberty 112818
신앙 사춘기를 넘어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 어른으로 가는 여정


(서울=뉴스앤조이) 정신실(작가) = "짜증 나", "재수 없어". 아이들의 사춘기는 그렇게 왔다.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생소한 언어와 함께 왔다. 맥락이 없다는 것은 상황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고, 여태 보아 온 (아니 내 손으로 키워 온) 아이 입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이다.

세상 예쁜 말만 골라 하던 아이, 배려와 존중을 타고난 듯 보였던 아이였다. 존재의 맥락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 나오고 눈빛이 어른거리니 당황스러웠다. 머리 모양, 옷매무새 하나에 극도로 예민하게 굴고, 길 가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행동한다. 반면 무례한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고도 반성은 없다. 제 친구 몇 외에는 누구에게도 냉소적이고 어른의 말엔 일단 방어적이고 반항적이다. 세상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이것은 인격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다. 이 아이의 마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이 마음이 문제가 아니다. 내게도 마음이 있는데, 이 내 마음조차 모르겠으니 말이다. 여기선 짧디짧은 단편영화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어제 만난 그 사람을 세워 두고 못다 한 말을 끝없이 퍼붓는 영화도 있고. '그 인간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비판의 향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못난 나 자신을 밟고 팽개치는 자학 영화도 있다. 그중 몇 편이라도 본다면 당신은 놀라 나자빠지고 말 것이다. 드러내 놓은 글과 말에 비추어 상상도 못 할 독설과 냉혹하고 비열한 표정을 볼 테니까.

이렇듯 복잡다단한 내 마음속 전쟁도 사춘기 아들의 질풍노도 못지않다. 이 아이처럼 대놓고 "짜증 나", "재수 없어"를 내뱉지는 못하지만 다리 달달 떨며 침 뱉고 욕하는 중2가 있다. 짧게는 한 5년, 길게는 10년 넘게 '사춘기'라는 이름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상태이다. 혐오와 반항의 대상이 목사, 교회, 신앙생활 같은 것이니 '신앙' 사춘기라는 말이 딱 맞다.

교회의 딸로 태어나, 교회 여자로 자란 나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어릴 적에 부르던 이 찬송의 어린 백합꽃은 그냥 나였다. 그렇게 동일시했다. '은혜 비'는 순종하고 대가로 받는 인정과 칭찬이었다.

시험 기간과 교회 문학의 밤이 겹치면 시험을 버리고 문학의 밤 준비에 올인했고, 주일에 가는 수학여행은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포기했다. 주일에 출근하라는 직장은 사표를 쓰고 나왔다. 토요일엔 교회로 퇴근하여 주보를 만들고, 밤늦도록 청년부 활동을 했다. 주일엔 다시 새벽같이 교회로 가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하고, 주일학교 봉사를 하고, 제자 훈련을 하고, 또 뭘 하고, 또 하고, 하고, 하고, 또 순종했다.

돌연 찾아온 신앙 사춘기에는 어린 백합을 자처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부모와 교회의 기대에 부응하여 예쁜 짓 하는 백합 따위는 뽑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어제의 나와 싸우다 보니 어제의 나처럼 구는 사람은 다 싫었다. 은혜, 순종, 감사, 응답, 간증. 이런 두 글자 말들이 역겨웠다. 한마디로 짜증 나고 재수 없었으니, 진짜 정말 제대로 사춘기. 무엇보다 누구보다 위선적인 목사가 싫었다.

사실 사춘기 시작은 믿고 존경했던 목사의 이면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목사'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쩐지 사기꾼 냄새가 나더라니' 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내 인생 가장 사랑하는 남자 셋(남편, 아버지, 동생)이 목사였고, 목사라서 괴로웠다. 모기 물린 발바닥을 긁을 수도 긁지 않을 수도 없는 심경이었다. 간지럼을 참을 것인가, 가려움을 견딜 것인가. 목사를 혐오할 것인가, 연민할 것인가.

사춘기 얘기를 해 보자. "우리 애는 착해서 사춘기 안 하고 잘 넘어갔어요." 하는 말은 자랑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심리적 발달을 아는 사람이라면 안다. 사춘기는 착한 아이는 피해 가고, 문제아는 혹독하게 통과하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다. 학문적 이론도 필요 없다. 이런 일상의 발달심리학 법칙이 있지 않은가. 지랄 총량의 법칙. 평생에 채워야 할 지랄의 양은 정해져 있고, 언젠가는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 다 키운 분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할 때 하는 게 제일 좋아. 다 커서 사춘기 하는 꼴은 더 못 봐." 사춘기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는,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다. 성에 눈을 떴고, 몸은 한껏 자라 어른이 된 것 같은데 정신은 몸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니 혼란과 혼돈이며 질풍노도의 나날인 것이다. 어느 날은 다 자란 어른이 된 기분, 다른 날은 아이처럼 두려운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러니 맥락 없는 감정과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너 도대체 왜 이래?" 하는 부모에게 설명할 말이 없는 것이다.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이니까. 그러니 세상 짜증 날 수밖에.

맥락 없는 분노와 무기력의 방향이 불특정 다방향인 듯 보이지만 화살표 연장선 끝엔 부모가 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사회화한다. 즉 태어나 처음 만나는 타자인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좋은 일로 여기며 발달해 간다. 어쩌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는데 '우리 아가 도리도리하네!' 좋아하는 엄마의 반응에 도리도리를 하고, 잼잼을 하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라는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 옳고 그름을 배우고 사회화되어 가는 것이 생애 초기의 발달이다.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는 서서히 자기 정체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부모의 욕망이 아닌 자기 욕망으로 살려고 한다. 자기 자신이 되겠다는 욕망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때가 사춘기이다. 존재의 서로 다른 욕망이 대등하게 맞설 때 충돌은 불가피하다. 부모의 뜻이냐, 내 뜻이냐. 불꽃이 튄다. 전에 없던 반항에 당황하고 흥분한 부모의 손이 올라가고, 재빠르게 그 손목을 잡은 아이가 말한다. "말로 하시죠."

부모와 대놓고 맞서든, 몰래 일탈 행동을 하든 사춘기는 부모를 넘어서는 시기이다. 부모를 넘어서야 아이는 독립된 어른이 된다. 그러니 사춘기는 의미 없는 지랄의 나날이 아니다. 인간의 심리와 영성 발달에서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신앙 사춘기라고 다를까. 아동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아이가 신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매개자로서 인간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과 인간 사이 매개자로 부름 받거나 자처한 성직자가 어느 종교에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들의 매개로 신과 연결된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목사는 무의식적으로 영적 부모가 된다. 그렇다면 신앙 사춘기 역시 의미 없는 방황, 시간 낭비가 아니다. 매개자였던 목사를 넘어 내 발로 서는 시간이다.

정신분석학자 김서영 교수 역시 프로이트의 '동일시' 이론으로 비슷한 설명을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그 사람의 특성을 모델 삼아 자신을 주조해 간다고 한다. 선망하여 마음에 담는 것, 이것이 동일시이다. 종교와의 동일시도 언제나 특정 인물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이들이 최초로 동일시하는 대상은 부모이다.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 아이는 어느 순간 반드시 부모의 손을 놓아야 한다. 사춘기의 과업이다. 김서영 교수는 이것을 정신적 이유離乳라고 한다. 부모 동일시를 끝내고 부모의 손을 놓는 순간, 아이는 자유로운 두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고 독립된 성인이 된다. 사춘기의 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을 뒤집어 놓는 사춘기 아이의 눈빛과 말. 아이의 사춘기는 엄마로서 인고의 시간이었다. 저런 몹쓸 인성으로 계속 자란다면 어떤 인간이 되겠는가. 어떤 날은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선배 엄마들이 말하듯 그 또한 지나가고 사춘기의 끝은 왔다. 냉소와 분노의 레이저를 수시로 뿜어 대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큰아이의 사춘기 시작과 끝을 확인하고 얼마 되지 않아 둘째의 눈에 독기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어른 대접 해 달라고 온몸으로 주장하는구나'. 조금 편히 대할 수 있었다. 뒤집고, 기고, 서고, 한 발을 떼고, 뛰는 것처럼 발달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신체 발달이 그러하듯 마음의 발달 또한 나이에 따라 혼돈의 사춘기를 지내고 생명력 넘치는 청년기로 넘어가 성인이 된다.

신앙 발달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예수 믿은 연수에 맞게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이 없다. 평생 달란트 모아서 상 받는 것에만 목숨 거는 유년부로 사는 사람이 많다. 목사가 불러 주는 대로 괄호 안에 답을 다는 성경 공부로 만족한다. 때로 의문을 품기도 질문을 던지기도 해야 하는데, 목사라는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교인이 많다. 목사의 권력, 돈, 성, 인격 문제로 고통당하며 눈을 뜬 사람들이 있다. 더는 목사의 욕망을 욕망할 수 없게 되었고, 동일시의 대상으로 품을 수 없게 되었다. 기쁨 주고 사랑받는 대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가 매개하던 하나님과의 연결도 느슨해지고 원치 않는 신앙의 사춘기로 내몰린다.

그렇다. 나는 신앙 사춘기로 내몰려 나왔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의 어린 백합꽃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평화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지만, 상처가 두려워 무지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가끔은 차라리 고맙다. 처절하게 실망시켜 준 목사와 교회 덕에 달란트 모으던 상자를 집어던지고 새로운 발달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신앙 사춘기의 어두운 숲 한가운데 서 있던 때였다. 침묵 기도 피정에 참가하였다. 머리로 알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분명한데 가슴으로 만나는 하나님은 두려운 존재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법한 일을 분주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 쉽지 "내 무릎에 와 앉으라"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불가능했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이었다.

피정 이후 더욱 마음이 힘들었다. 유년 신앙의 푸른 초장을 떠나 어두운 숲으로 들어왔건만, 정작 두려움으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나님은 멀리 계셨고,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 무릎에 와 앉으라고만 하셨다. 나는 두려워 다가갈 수 없었고,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못할 곳에 서 있으니 눈물만 났다. 마음의 부대낌은 신체화로 드러나 몸이 많이 아팠다.

친정엄마가 집에 오셨다. 아픈 딸을 위해 기도해 주러 오신 것이다. 며칠 지내며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한 엄마의 일상 설교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말씀을 키워야 헌다. 가정 예배 드려라. 기도혀라. 기도 ㅤㅂㅐㄲ이는 ㅤㅇㅡㅄ다. 주일성수는 허니? 주일날 장 보지 마라." 너무나 익숙한 말과 목소리, 마음 깊은 곳에서 거부반응이 밀고 올라왔다. "엄마, 나 힘들어. 좀 쉴게" 했다. 그때 내 귀에 엄마의 마지막 말이 꽂혔다. "너어,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어." 내 영혼의 수류탄 안전핀을 뽑는 말이었다. 뼛속까지 새겨진 엄마의 목소리.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어",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어". 분노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지금도 두려울 뿐이라고,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신앙생활해 왔다고, 이 어두운 숲에서 더듬어 찾아가 앉을 곳은 그분의 무릎뿐임은 알겠는데 두려워 가까이 갈 수 없으니 속이 시원하시냐고, 평생 하나님이 두려워 사랑의 하나님은 말로만 만나 봤다고, 이제 속이 시원하시냐고,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라는 건 엄마에게 기가 막히게 잘 배웠다고. 침대에 엎드려 오래오래 울었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이렇게 갈라놓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를, 목사를, 교회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엄마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마음으로는 내 집 현관 밖으로 등 떠밀어 내보냈고, 문을 쾅 닫았다.

한동안은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편해졌다. 돌아보면 동일시를 끊어 내는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아버지와 함께 영적 아버지인 목사들을, 목사들과 함께 교회를 내보냈다. 김서영 교수 말처럼 어린 날 마음에 담은 권위와의 동일시를 끝내고 잡았던 손을 놓으니 자유로워졌다. 말이 좋아 자유이지, 텅 비어 버린 손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처럼 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도, 감정을 자극하는 찬양에 쉽게 마음을 열 수도 없었다. 외로워졌고 덤덤해졌다. 은혜가 되는 설교는 없고, 설령 어떤 설교가 마음을 울려도 설교자의 일상을 애써 상상하며 '거기서 거기일 거야' 싶으니 갈수록 냉랭해졌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삶은 더욱 불확실성으로 내몰렸다.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 어른의 힘이라는 것,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영혼의 중심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성숙한 삶이라는 것을 배웠으니 견뎌야 할 일이다. 텅 빈 손과 낮아진 마음의 공간 안에 생소한 타자가, 새로운 가르침이 조금씩 들어왔다.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여정을 겪은 이들이 다가와 마음을 열어 보여 주었다. 수줍게 맞잡은 손으로 점점 큰 원이 되어 간다. 연대하니 비로소 어두운 숲에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10년 넘게 헤매던 신앙 사춘기의 숲을 손잡고 빠져나가는 중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이 집단적 사춘기를 앓고 있는 것 같다. 분노하고 냉소하며 사기꾼 목사 색출과 퇴출에 목숨을 거는 사람. 교회 봉사 한다고 복 받는 것 아님을 알았으니, 에라, 교회는 팽개치고 여행이나 다니고 몸이나 가꾸며 거침없이 누리기로 작정한 사람. 사회적 하나님에 눈을 떠 부흥 집회 대신 시국 집회와 시위에 열정을 쏟는 사람. '아이고, 의미 없다'며 무기력 병에 걸린 사람. 자기 욕망이 아니라 목사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니 이제라도 자기답게 살겠다며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감정과 욕망을 분출하는 사람. 가려운 곳 딱딱 긁어 주는 신학, 거침없이 욕해 주는 사이다 성경 공부에 매료되어 학구열을 불태우는 사람.

각자 나름대로 다리 덜덜 떨며 사춘기의 숲을 헤매는 것 같다. 사춘기 교인은 넘쳐 나는데 목회자들은 아직 중고등부는커녕 유치부에나 먹힐 설교와 가르침을 내놓고 있다. 교인들은 신앙의 실존 앞에 알몸으로 섰는데, 에덴동산 그림 한 장 들고 "여러분, 세상은 누가 만드셨죠?" 하며 설교하는 형국이다.

사춘기는 못 배워 무식하고, 가난하고, 말 안 통하고, 성질 사나운 부모를 '쪽팔려' 하며 시작하기도 한다. 그 부모와 맞서다 주먹으로 벽을 치고, 몰래 담배를 피우며 일탈도 하고 결국 부모라는 산을 넘어서 어른이 된다. 정신 제대로 박힌 교인들을 사춘기 광야로 내몬 범죄자에 위선자 목사들의 죄를 가벼이 여길 뜻은 없다. 받아야 할 죗값이 있다면 끝까지 받도록 하고, 어설픈 용서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와 나를 한데 묶어 빠르게 추락하는 엘리베이터에 태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 엄마와 연결되었던 탯줄이 잘리며 태아에서 신생아로 세상에 나왔다. 사춘기 아이에서 청년이 되고, 딸에서 아내가 되고, 딸에서 엄마가 되는 생의 전환점마다 다시 끊고 또 끊어야 했던 것이 엄마와 연결된 끈이다. 떠나고 또 떠나와 지금 여기에 섰다. 그렇게 떠나온 덕에 노년의 엄마를 투명한 애정으로 돌볼 힘이 생겼다. 한때 내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고, 미워서 맞서고 대적했던 내 엄마다. 이렇듯 영적 부모, 영적 고향인 목사와 교회를 떠나고 넘어서며 더 깊은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본조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1월 30일, 금 7: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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