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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112118
김일성 급사로 정상회담 물거품
[김영삼 평전 99] 국정수행 성취와 좌절



▲ 김일성 사망 호외를 낸 <조선일보>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시운은 YS의 편이 아니었다.

하늘은 공정한 것인지, 역사는 냉정한 것인지, 지상의 특정인에게 많은 것을 함부로 주지 않은 것 같다. 분단 이래 최초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정상회담이 갑작스런 김일성의 사망으로 좌초된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라이벌 DJ가 6년 후에 이를 성사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YS의 남북 정상회담의 행운은 정치(책)적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카터가 가져온 ‘공짜선물’이었던 것이 그냥 날라가 버린 셈이다.

7월 7일 묘향산으로 가는 길에 김일성은 인근 협동농장을 또 한 차례 현장 시찰했다. 그는 나중에 김대통령을 이곳으로 안내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수은주는 38도 근처까지 올라갔다. 묘향산에 도착한 김일성은 김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단장 중이던 내빈용 별장을 둘러보고 침실과 욕실을 일일이, 심지어 냉장고에 광천수를 충분히 넣어두었는가도 직접 확인했다.

이처럼 강행군을 하고 난 저녁 김일성은 식사를 마친 후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과도한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 의사들이 달려왔지만 극심한 폭우로 인해 김일성을 병원으로 후송할 헬리콥터 운행이 불가능했고 도로 역시 진흙탕으로 엉망이 된 탓에 육상 수송도 지체됐다 (이로부터 몇 달 뒤 묘향산 진입로는 서둘러 포장공사가 완공됐는데 이 조치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관리들은 재미교포 언론인 줄리 문(Julie Moon) 기자에게 의사들이 그의 흉부를 절개해 심장을 소생시키려고 해보았으나 시간상으로 너무 늦어 수포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의 사망이 확인됐다. (주석 5)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한반도 정세는 다시 불가예칙 상태가 되었다. 반세기 동안 절대군무처럼 군림해온 그의 뒷자리는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차지했지만 남북관계는 새권력자의 처신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급조된 ‘세계화 구상’ 발표

YS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업무에 열중했다. 7월 23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신임 일본 총리의 방한, 8월 5일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외교부 제1부장 회담, 10월 4일 경제부처 개각, 11월 10일 제2차 아태경제협력체(APEC) 참석키 위해 필리핀에 이어 인도네시아ㆍ호주 방문, 마닐라에서 한ㆍ미ㆍ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이펙정상회담을 마친 YS는 11월 16일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하여 3박 4일간의 호주 공식방문에 들어갔다. 이튿날 YS는 수행기자들에게 ‘세계화 구상’을 발표했다. ‘시드니 구상’으로도 불리는 이 구상은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종합적인 국가개혁의 방향으로 세계화 전략을 본격추진하겠다”는 의도로 제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즉흥적인 언론플레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YS정부의 ‘세계화’는 1995년의 국정지표가 될만큼 비중이 큰 케치프레이즈였다. 하여 출생 과정과 그 실과 허를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1994년 11월 17일, YS는 호주 시드니에서 ‘세계화 선언’을 한다.

기자 여러분이 나를 동행 취재하면서 무슨 특별한 기사거리 하나 안 나오나 하는 눈친데, 내가 하나 제공을 하지요. 이번 동남아 및 대양주 순방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구상을 했어요. 밖에 나와서 두루 살피다 보니 우리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구상한 것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국하는 즉시, 다음 세대를 위한 세계화 정책을 구체화해서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기자들은 ‘세계화’가 무얼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통령 자신도 모르는 듯했다.

“방금 말씀하신 세계화는 기존의 국제화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을 수행중인 한이헌이 대답했다.

“그 대답은 제가 하겠습니다. 국제화가, 세계의 개방화 추세에 뒤져서는 안 된다는 다소 수동적인 의미라면, 세계화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앞서 나아가자는 것으로서, 국제화에 비해 한결 진취적인 개념이 되겠습니다.” (주석 6)


세계화 정책은 다만 몇 가지 현안을 집행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 한번은 민자당 실세인 최형우가 ‘김종필 당대표는 민자당의 세계화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며 그를 당에서 축출하는 데 이용되고, 또 한번은 박정희 정권 때 신설된 뒤 계속 유지돼 오던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개편하는 데 이용되고, 또 한번은 삼성자동차를 허가하는 데 이용되었다.

“삼성이 자꾸 자동차를 할라고 저카는데, 한 수석 생각은 어떻노.”

“세계화를 하게 되면, 다른 나라의 기업이 한국에서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해도 환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업이 자동차 공장을 짓겠다는 걸 막아서야 되겠습니까.” (주석 7)

주석
5> 앞의 책, 495쪽.
6> 김광수, <역사에 남고 싶은 열망-한국의 통치권자>, 274~275쪽, 현암사, 2003
7> 앞의 책, 274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1월 25일, 일 12:0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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