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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My son left Korea 112118
아들이 한국을 떠났다, 난 그때 말려야 했을까
그 자신만만한 했던 한 소년이 한국에서 보낸 8년의 기록



▲ 한국 사회를 받아들이려 애썼던 내 아이는 인생의 선택지를 미국으로 돌렸다. ⓒ unsplash

(서울=오마이뉴스) 문선희 기자 = 8월 중순의 끝자락, 아들은 한국을 떠났다.

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떠난 길이었다. 학업이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살 것인지 묻자 '뭐... 돌아올 수도 있지. 하지만 거기서 사는 것이 나한테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아이가 좋아하던 한국은 더 이상 없는 것일까? 8년 전 낯설고 물선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무던히도 노력했던 아이다. 힘든 와중에도 여기서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별로 반기지 않는 한국 사회를 받아들이려 애썼던 내 아이는 결국 인생의 선택지를 미국으로 돌렸다.

떠난 지 이제 두 달이 돼가는 아들에게 한국이 그립지 않은지 물었다.

"모든 것이 평온해 엄마. 그리고 이 평온한 상태가 정말 좋아. 아직 한국이 보고 싶지는 않고..."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이 아이는 한국에서 보냈던 청소년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바라건대 힘들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들었고, 그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쌓았던 시기로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라면 빠짐없이 경험했을 대학 입시는 나와 내 아이에게도 비켜갈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외국에서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초입을 다 보내고 돌아온 아이를 왜 국제학교에 보내지 않았냐고? 아마도 그때의 나는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나는 아이의 잠재력에 투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국을 모르는 채로 어른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를 혼자서 이역만리 먼 곳에 두고 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으며, 거기에 드는 경제적 비용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공부라는 것이 어디서 하든 그 원리는 비슷할 것일진대 입시가 치열한 한국이라고 뭐 그리 다를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교육환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 무지한 학부모였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지만 한국의 학제로 보면 1학년 2학기에 해당했다. 초짜 학부모였던 남편과 나는 뛰어나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평범한 동네라고 판단한 지역의 중학교에 아이를 전학시켰다. 너무 잘난 아이들이 많으면 혹시라도 섞이기 어려워 따돌림을 받을까 걱정한 부모의 세심한 배려였다고나 할까.

왕따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중학생들은 한국말이 좀 어눌해도, 행동거지가 어딘가 모르게 자기들과 달라도 내 아이를 배척하지도, 놀리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집 밖에 나가면 길도 모르고 버스도 탈 줄 모르는 이방인 같은 이 아이에게 스스럼이 없었고 친절하게 대해줬다. 생각해 보면 정말 착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의 생활에 금방 적응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선생님의 충고

그러나 선생님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아직 겪어보지도 않은 내 아이를 두고 "아마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적인 충고를 해줬다. 이 아이는 모든 것이 경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아직 살아남을 준비가 안됐음을 선생님은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한국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충고를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학생의 가능성을 잘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환경은 달랐으나 아이는 학교에서 언제나 유쾌하고 적극적이었으며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학업 성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한국의 중학교라고 뭐가 그리 다를까 싶었다.

실제로 아이는 적응도 잘했다.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걸려도 극복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무사히 마쳤고 우리는 안도했다.


▲ 한국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부족함을 만회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사진은 2018학년도 대입 수능이 연기된 2017년 11월 16일 서울 중구 중림동 종로학원 옥상에서 수험생들이 전날 버렸던 문제집을 찾고 있는 모습)

고등학교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와 내 아이는 깨달았다. 적어도 1년 정도의 공부를 미리 해오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선행학습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막 시작한 한국 학생으로서의 기본적인 공부를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짧은 방학이 시작되면 두세 달 정도의 내용이라도 미리 보고 가려고 애쓰는 아이를 보면서 내 숨이 턱턱 막혔다.

선행학습이 돼야 수업 진도를 잘 따라갈 수 있고 내신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시험문제는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기가 막히게 어려웠고, 평균 점수가 50점을 밑도는 과목도 있었다. 정말 아이들의 기를 죽이는 데는 가히 천재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부족함을 만회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잠잘 시간도 모자랐지만 공부할 시간도 모자랐다. 이곳은 어려서부터 부단히 훈련되고 모든 부분이 준비된 학생에게만 허용되는 무림고수의 세계였다.

한국 교육에 늦게 합류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국어는 마치 새로운 외국어를 고차원에서 익히는 것과 같았고,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선행학습을 미처 하지 못해서, 또는 국어로 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려서 항상 허덕거렸다.

남편은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권유했다. 보통 비슷한 생활환경을 경험한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다들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던데, 이 아이는 이상할 만큼 완고했다. 한국에서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을 가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자신이 떠나왔던 나라에 적응에 실패한 루저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아이의 투지가 내심 기특했던 것 같다. 한국의 극심한 경쟁과 열심히 해도 따라가기 힘든 공부량을 생각해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아이를 믿기로 했다. 그때 나는 아이를 더 적극적으로 말려야 했을까?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내 아이도 3년 내내 공부하느라 잠이 항상 모자랐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볼까 해서 사교육 전선에도 뛰어들었다. 고단했지만 시간이 쌓이다 보니 그래도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넘볼 정도가 됐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이 3학년이 되자 아이는 자신의 목표 대학을 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지원 전형을 택해 열심히 준비했다. 이 아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경쟁을 통과해 원하는 학교에 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한국 사회에 완벽히 적응하고 그 일원으로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

몇 줄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쳤다. 비록 원하는 대학에 안타깝게 닿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내 아이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경험한 내 아이는 풀이 죽었다. 어느 날 아이는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울었다.

"엄마,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얻으려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어. 공부하다가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그걸 채우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도 잘하고 싶어서 정말 많이 노력했어. 대부분은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도 얻었고... 그래서 내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고 항상 나는 잘 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어. 근데 여기서는 훨씬 더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 같아. 공부하면서도 항상 불안했고 잘 안 될 거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

나는 물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데? 공부 잘 못해도 괜찮다고,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고 엄마가 얘기했잖아. 그런데도 뭐가 불안해?"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서 불안한 거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해 억울한 내 아이는 울고 있었다. 한국의 교육은 이 아이에게 자신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깊이 심어주었다. 나도 속상해서 같이 울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도 이 세상에는 많단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이 아니라 좀 더 나이가 든 다음에 알아도 되는데...'


▲ 내 아이는 이제 새로 만난 학교를 또 사랑하려나 보다. ⓒ unsplash

활발하고 자신만만했던 한 소년이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한국 교육의 무엇이 이렇게 아이를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서 보자면, 한국 교육은 완벽하고도 처참한 실패다.

아이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나는 화가 많이 났지만, 내 아이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냥 한국 사회가 너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 아이가 이곳에서 학생으로 살면서 그 어떤 시간도 헛되게 보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간 후, 아이는 결국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학교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본모습을 이제야 처음 대면한 것일까. 결국 적응을 못 한 것일까? 오래전 선생님의 '예언'처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가장 좋았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아이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래도 나는 고3 때 밤늦게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 하던 시간이 학교생활 중에 가장 좋았어. 야자하기 전에 석식 먹고 친구들하고 잠깐 농구 하던 시간도 좋았고, 토요일 저녁에 공부 끝나고 운동장에 둥그렇게 앉아 짜장면 시켜 먹었던 시간도 정말 좋았어. 야자 시간도 물론 좋았지. 나 그때 공부 열심히 했잖아. 밤늦게 교문을 나올 때면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

지금 아이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인다. 수업 듣고 공부하고 운동하러 가고 가끔 친구들과 만나는 단조로운 생활인데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영상통화를 끝내곤 한다. 얼마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가끔 공대 건물이랑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보는데, 그러면 아직도 처음 입학한 때처럼 기분이 막 설레고 좋아."

아이는 이제 새로 만난 학교를 또 사랑하려나 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1월 24일, 토 10: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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