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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How did the 'spy tag' ruin a human for 44 years 111418
44년 '간첩' 꼬리표는 한 인간을 어떻게 망가뜨렸나
재심서 무죄판결 받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의 세월



▲ 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 이희훈

(서울=오마이뉴스) 정대희 기자 = 44년간 그를 따라다닌 '간첩' 꼬리표를 끊어내는 건, 찰나였다. 법정에 "무죄"라는 말이 울려 퍼지자, 예순아홉살의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옆에 있던 사내를 부둥켜안고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와 마침내 광명을 찾은 회한의 눈물"이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김태업)은 이른바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알려진 간첩사건의 피해자 이동현(6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개시 결정 3개월 만이다. 법원은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가 불법감금과 가혹행위로 이씨에게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고 판단했다.

1975년 서울형사지방법원은 달랐다. 25살 청년 이동현을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 6월'을 선고했다. 이유는 '박석주가 북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한 자임을 인지하고서도 이를 각 수사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0년대 일어난 대규모 간첩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재일거류민단 동경도 본부 부단장 진두현 등 15명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간첩죄로 사형과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았다. 현재 일부 유가족은 이 사건이 '조작된 간첩 사건'이라며,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지난 5일, 충주에 있는 빨래방에서 이동현씨를 만났다. 그는 여기서 "억울하게 간첩이 됐던 사연"을 털어놨다. 박석주를 만나게 된 사연부터 들려줬다.

어느 날 찾아온 지프, 남산으로 향하다


▲ 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 ⓒ 이희훈

청년 이동현이 박석주를 만난 건 한국기계공업 주식회사였다. 이동현보다 늦게 입사했으나 직급은 높은 직장동료였다. 당시 한국기계공업 주식회사는 '인천 시내에서 다 외상이 될 정도로 평판이 좋은 회사'였다.

그날은 1974년 개천절이었다. 이동현은 휴일에 출근을 했다. 근무를 하는데 경비가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정문으로 가보니 지프가 한 대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이는 다짜고짜 "이경년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현장반장이라고 답하니 사는 곳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이렇게 지프를 몰고 온 사람과 함께 이경년이 사는 인천 구월동 집으로 향했다.

현장반장 이경년은 휴일을 맞아 처가에 가고 없었다. 다시 이동현은 지프에 올라탔다. 사무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지프는 한강을 건너 남산으로 향했다. 그제야 이동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있는 두 아이와 임신한 아내가 떠올랐다.

이동현은 '의가사 제대'를 했다. 이게 문제가 된 줄 알았다. 남산으로 가는 길 지프를 타고 온 사람들은 가족사와 군대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남산에 도착해선 곧바로 지하에 있는 방으로 갔다. 사방이 하얀 방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허리띠가 없는 군복을 내주었다. 재입대하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열린 날, 이동현은 하늘이 무너졌다.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무기 만들었는데 간첩이라니


▲ 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 ⓒ 이희훈

"새파랗게 젊은 놈이구먼, 통일사업에 수고가 많소."

'노숙한 신사'는 뜻밖의 말을 했다. 이동현은 자신이 끌려온 이유를 생각했다. 이번엔 '무기를 만든 게 잘못됐구나'라고 판단했다. 그는 무기를 제작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1972년 이전에 국방부가 월남전에서 획득한 AK소총을 분해해보니 북한 대동강 철공소에서 제작한 거였다는 거예요. 북한의 기술력에 깜짝 놀란 박 대통령이 우리도 비밀리에 개발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생산할 곳이 한국기계공업 주식회사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총신을 가공할 수 있는 건드릴 머신이 한국기계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만든 게 70mm, 81mm 박격포와 케라바 850 장치대 등이고 후에 유탄 발사기도 만들었습니다. M-79유탄발사기, M-1, M-2 등도 제작했습니다. 도면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고 도면대로 현장 기능공들이 총신 재료를 만들었죠. 멜빵과 개머리판 빼고 총에 쇠붙이 들어가는 건, 다 만들었습니다. 작업지시와 도면이 3급 비밀로 돼 있었죠."

하지만 노숙한 신사는 무기가 아니라 박석주에 대해 캐물었다. 이동현은 어리둥절했다. 수사관은 박석주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라며 위협했다. 이동현은 들은 게 없었다. 수사관은 박석주가 '간첩'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동현은 웃었다.

"그 당시 내가 아는 간첩은 이랬어요. 북한에서 남파된 수상한 사람으로 새벽에 산에서 내려와 이슬을 맞고 다니고 은연중에 북한말을 쓰는 사람. 남한의 물가 사정을 모르고 한밤중에 북한 방송을 듣는 사람. 그런데 박석주는 매일 출근해 같이 일하고 밥 먹는데 수사관이 간첩이라고 하니, 농담인 줄 알고 웃었죠."

구둣발이 날아왔다. 박석주가 '간첩'이라는 증언을 하지 않자 수사관은 오른발로 이동현의 정강이를 수없이 반복해 찼다. 수사관이 말하는 대로 인정하지 않아도 폭력을 가했다. 이렇게 수사관은 주먹과 발로 이동현을 수사했다.

가혹한 폭력에 허위 자백을 했다. 수사관의 말대로 적힌 수사기록에 지장을 찍었다. 박석주가 '간첩'이라는 걸 증명하는 진술서였다.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에도 서명했다. 그제야 더 이상 주먹과 발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부턴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라디오였어요. 박석주가 내게 '북한방송 내용을 전부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 라디오를 작은 아버지에게 드렸거든요. 나중에 들었는데 라디오를 찾으려고 보안사 수사관들이 작은 아버지 집에 가서 천장과 구들장까지 뜯었대요. 라디오가 안 나오니까 인삼밭 농사는 돈이 어디서 나와서 짓느냐고 꼬투리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라디오를 '간첩' 증거로 활용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법정에서 알게 된 아들 출산 소식


▲ 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 이희훈

이동현은 포승줄에 묶였다. 박석주 등 8명과 함께 줄사탕처럼 엮여 호송차에 올랐다. 박석주는 이동현을 보자 "나 때문에 고생이 많지? 너는 풀려날 거야"라고 했다. 수사관도 "이제 집으로 갈 것이다"라고 했다. 호송차는 서울구치소(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에서 멈췄다. 이때까지도 이동현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몰랐다.

이동현의 죄수복엔 '6622'이라고 적혀 있었다. 방 번호는 '2사상9호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층 사상범 9호실'이란 뜻이었다. 여기서 이동현은 백과사전 같이 두꺼운 공소장을 처음 받았다. 거기엔 '월북'과 '포섭', '무인포스트', '간첩' 등 희한한 단어들로 가득했다. 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이런 '소설'의 한쪽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제야 이동현은 자신이 반공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1975년 4월 이동현은 법정에 섰다. 교도관들의 눈을 피해 방청석을 봤다. 작은 아버지가 손팻말을 들고 앉아 있었다.

'아들 낳았다. 아들 이름 이춘섭'

이동현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내의 배 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1심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그날 밤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서울역으로 향했다. 대기실 TV에 자신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선 모습이 나왔다. 언론은 이동현을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공범'으로 소개했다.

휴일에 출근한 지 6개월만에 이동현은 그렇게 '간첩'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간첩 꼬리표에 27번 이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 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 ⓒ 이희훈

'간첩'이란 꼬리표는 이동현에겐 '빨간 딱지'였다. 1976년 그는 포항제철에 공채로 입사했다. 하나 남아 있다는 사택 입주 추첨에 당첨됐다. 인천에서 포항으로 이사해 늦은 결혼식도 올렸다. 1년 뒤 어느 날 관리실에 불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목에 걸려 있던 사원증을 빼앗겼다. 신원조회에서 '반공법 위반'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꼬리가 붙었다. 포항제철에서 나와 이듬해 한일시멘트에 입사했을 때다. 어딜 가나 경찰이 따라붙었다. 어느 날은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뒀다. 더는 한국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1982년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 한국을 떠났다.

1년 3개월 만에 싱가포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었다. 돌아와서 1985년 한라시멘트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이번엔 강원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경찰이 따라붙었다. 간첩은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1992년까지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한일시멘트 다닐 때 따라다니던 경찰이 전출을 하면서 그랬어요. 당신이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면 삼청교육대 보내려고 했다고. 한라시멘트 근무할 때 쫓아다니던 경찰도 떠나면서 그러더군요. '경찰서에서 빨갱이가 노조위원장 됐다고 난리 났었다, 그래서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도 잡아오라고 했다'고."

조작된 간첩 사건은 인생을 조각냈다. 지금 이동현씨는 충주에 있는 빨래방에서 산다. 낮에는 "세탁물을 수거해 빨아주는 일"을 하고 밤에는 빨래방 한편에 딸린 골방에서 홀로 잠든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27번을 이사했습니다. 애들한테 '간첩 새끼'라고 욕하고, 아내는 '간첩 마누라'라고 손가락질 당하니 어디 정착해 살 수가 없었죠. 끝내 아내와는 이혼했습니다. (남산으로) 끌려갈 때 아내 뱃 속에 있던 아들은 지금도 연락이 안 됩니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묵묵부답이죠. 그 녀석이 해군에 입대하려고 했는데 신원조회에서 내가 걸려 못 갔습니다. 어디 그런 일이 한두 번이었겠어요."

폭력의 흔적도 몸에 남아 있었다. 예순아홉 이동현씨 왼발 정강이에는 수많은 멍자국이 있다. 얼마 전까진 양반다리도 못했단다. 매년 남산으로 끌려갔던 10월이 되면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 이동현씨가 겪고 있는 지독한 후유증이다. 몸은 폭력을 기억했다.

"나도 한때 항소, 재심을 하려고 했다가 더러워서 안 했습니다. 하지만 난 국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불법 감금해 폭력으로 사건을 조작한 수사관들이 나쁜 놈들이지 나라가 무슨 잘못입니까. 제발 이제는 그따위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 국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는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다. 국가는 무죄를 인정했으나 사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를 원망하지 않았다. ⓒ 이희훈

이동현씨는 지금도 모른다. 자신이 왜 간첩이 돼야 했는지. 국가폭력 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보안사가 작성한 수사기록을 보면, 이동현 어르신은 보안사가 박석주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서 엮은 하나의 고리였다. 박석주도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주범이라는 박기래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렇게 보안사는 몇 명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10여 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동현 어르신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은 국가폭력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이런 피해자는 숨어 살기 때문에 찾기도 어렵다."

44년 만에 이동현씨는 간첩 누명을 벗었다. 간첩을 조작했던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에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보안사는, 기무사는, 안보지원사는 이동현씨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1월 17일, 토 4: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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