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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18년 12월 14일, 금 11:14 pm
[한국] 정치
 
The reason why pastor Jang has made an appeal 111418
다시 처벌받더라도 낙선운동 할 겁니다, 장준하의 아들이기에
[주장] 장준하 선생 3남 장호준 목사의 상고이유서


고 장준하 선생의 3남 장호준씨가 <오마이뉴스>에 상고이유서를 보내왔습니다. 장씨는 20대 총선 당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신문 광고를 실어 '재외국민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현재까지도 관련 재판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10월 26일 진행된 항소심에선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200만 원)보다 벌금이 줄어들었지만, 그는 상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낙선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선거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장씨가 보내온 글을 가감 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 박근혜 정권 시절 미국에서 시위중인 장호준 목사 ⓒ 장호준

(서울=오마이뉴스) 장호준 기자 = 재판장님, 본 피고인은 진술을 시작하면서 '재판장'이라는 호칭 앞에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겠습니다. 지난 정권들에서 사법부가 저지른 추악한 재판거래 의혹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법부에 속한 판사들이 존경을 받을만하지 않으며, 의미 없이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오히려 재판장님에 대한 조롱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장님, 많은 사람들은 싸움의 목적이 '이기기 위함'에 있다고 합니다. 또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지지 않기 위해 싸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리고 남기기 위한 싸움을 하고자 합니다. MLK(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링컨 동상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워싱턴 DC, National Mall을 가득 메운 시민들을 향해 'I have a dream'(아이 해브 어 드림)이라는 세기적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연설에서 MLK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Today'(오늘) 또는 'Tomorrow'(내일)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One day'(어느 날)라고 말합니다.

흑인 민권 운동이 '오늘' 또는 '내일' 승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미래의 '어느 날'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오늘 그렇게 외쳤다는 것을 MLK은 남기고자 했던 겁니다. 얼어붙은 중국 대륙에서,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민족의 독립과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들과 민주 열사들 역시 '오늘' 또는 '내일' 민족이 해방되고 민주주의가 이룩된다는 보장과 확신으로 모든 희생을 감수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One day', 반드시 일제가 패망하고 이 민족은 독립할 것이며, 독재는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꽃피우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알리기 위한 싸움을 했던 것이라고 저는 믿는 것입니다.

물론 이완용이 매국노로 밝혀지기까지 40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무고하게 살해당한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무죄가 밝혀지기까지 32년이 걸렸으며, 전두환을 법정에 세우기까지는 17년이라는 시간의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의 한 대사를 다시 되뇌어 봅니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걸음을 배울 때 '4.19 혁명'을 겪었고, '엄마'라는 단어와 함께 '쿠데타'라는 단어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당시 일간신문보다 더 많은 부수를 발행했던 월간지 <사상계>가 박정희의 치졸한 정치 공작에 희생되어 졸지에 여관방을 전전해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붉은색 압류 딱지를 들고 점령군처럼 들이닥친 자들 앞에서 '나와 늘 함께 놀던 강아지에게 압류 딱지를 붙이려거든 차라리 내 몸에 붙이라'고 울부짖었던 아이였습니다.

흉가가 된 전셋집 앞에서 체포되는 아버님을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해야 했고, 서대문 형무소와 안양 교도소의 면회실에서 당당히 빛나던 아버님의 얼굴을 숨죽인 채 눈동자에 새겨야 했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님께서 살해당하신 이후 생계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가게와 광산, 그리고 어선과 공장에서 한을 품고 살았던 날들도 있습니다.

1980년 5월 19일 '광주 민주화 항쟁' 다음 날 군에 입대하고, 자살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사라져버린 전우들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던 절망의 날들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제대 후 신학교에 진학하면서 한으로 죽어버린 가슴을 되살린 것은 "다시는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는 아버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번 재판의 '재외국민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죄목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몸부림은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대선 삼 개월 전부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안 되며 될 수도 없음을 알리기 위해 미국 내 한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들을 방문하여 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주중 새벽 5시부터 저녁 6시까지 스쿨 버스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저는 오직 토요일 하루만 '박근혜 낙선 강연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밤 비행기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도시로 갔습니다. 토요일 종일 강연회와 좌담회를 마치고 일요일 새벽 비행기로 돌아와 교회에서 설교를 한 후, 월요일 새벽부터 다시 스쿨 버스 운전을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당연히 박근혜는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국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던 제가 '세월호 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를 하는 한 어린 여학생을 목격한 것은 심장에 비수를 꽂는 계기였습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다시 망치가 되어 저를 내리쳤습니다.

저는 광고비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모인 후원금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광고를 북·남미의 주요 도시와 유럽, 그리고 국내와 아시아의 한인 신문 매체에 게재했습니다. 이어서 민족의 자존심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린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 합의'가 터져 나오면서 더더욱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박근혜의 국정 농단을 종식 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국회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기에 2014년 총선에서 당시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무기인 투표로서 새누리당을 심판하자'는 광고를 게재하게 된 것입니다.


▲ 박근혜 정권 시절 장호준 목사가 국내외 신문에 한 광고 ⓒ 장호준

이후 정치 지형의 변화는 재판장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리라 믿기에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지금도 안타까운 것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가 당선됨으로써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결국 민중의 몫으로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또, 박근혜는 탄핵당했지만 그 배후의 친일과 독재에 부역했던 적폐들은 아직도 건재하게 국정과 국민을 농단 유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20년 총선에서도 역시 민족 역사를 왜곡하고 친일을 찬양하며,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반민족 반민주 추종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현행 선거법에 위반되고, 법적인 제제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불의와 부딪쳐 소리 내고 외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불의한 세상에서는 고난당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침묵하고 외면한다면 결국 제 스스로 '못난 조상'이 되고 말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자유'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듯이, '정의'라는 강물은 구비와 부딪쳐 소리를 내고 가로 막은 절벽에서 폭포로 흐른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념을 알아주십시오

재판장님, 저는 현행 '재외국민공직선거법'에 따른 법을 위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에 근거한 공소사실에 대해 저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1974년 아버지께서는 박정희의 반헌법적인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체포 구속돼서 재판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시며 최후변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다 하더라도... 법이라면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지루한 질문을 내뱉은 군복 입은 재판장을 향해 "나는 법 이전에 인간이다"라고 일갈하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으로부터 '역사적 신념'을 배웠습니다. 아버님께서 살해당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중앙정보부 요원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그에게 던진 '事必歸正'(사필귀정)이라는 말은 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신 역사적 신념 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제가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신앙적 양심'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부여한 '자유와 정의, 평등과 평화'를 행사하고 누릴 권리 즉,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이 제한하거나 빼앗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선거법을 위반한 행위는 역사적 신념과 신앙적 양심에 따른 것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正'(바를 정)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역사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正'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거나 멈춘다면 '事必歸正'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역사는 버려진 채 쓰레기 더미에 묻혀 썩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리는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로 빼앗긴 이웃의 권리, 위안부 합의로 짓밟힌 피해 할머니들의 인격, 그리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더렵혀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내게 부여된 권리마저 빼앗기게 되고 만다는 것이 제 신앙적 양심입니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제 행위가 현행법에 따라 유죄가 된다고 하면, '독약도 약이니 먹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의 굴레에 스스로를 묶지 않을 것이며 이후 사는 모든 날들 동안 역사적 신념과 신앙적 양심에 따라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재판에서의 법률적 유·무죄에 대한 판단은 헌법이 보장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에 근거한 재판장님의 몫으로 남겨 둘 것입니다. 재판장님, 저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에 대해서는 문외합니다만 대부분 개인별로 사람을 만났을 때 '인간은 선하다'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악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결국 '구조적인 악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비롯하여 정치범과 이민족 그리고 집시들에 이르기까지 천만 명 이상을 살육한 독일인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더더욱 독일 교회들까지도 이에 동참 또는 묵인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현대신학에서까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1심에서 검사가 벌금 70만 원을 구형했으나, 결과적으로 2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저는 이를 보면서 '사법부라는 구조 속에서 독립적 판사의 판결이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항소심에서는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됨 - 편집자주). 이 역시 구조, 즉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판사라는 위치에 가해지는 압력의 무게가 '독립적 양심'을 얼마나 행사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장로교 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 결과, 제게 있어 교회와 신앙은 장로교라는 구조와 조직 속에서 만들어진 교리와 헌법에 따라 신앙과 비신앙 즉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6년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보낸 선교사로서의 시간은 제게 전혀 다른 구조와 조직, 교리와 규정 외의 신앙에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의 기준이라고 목숨처럼 지켜오며 가르쳤었던 교리들이 한낱 하찮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조직 논리의 결과일 뿐, 하나님을 향한 더 정확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태국 북부 산악지역 꿔민땅(國民黨) 피난민 촌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는 두 살과 네 살 형제를 만났습니다. 온기 없는 차가운 흙바닥에 맨몸으로 누워 죽음의 문턱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고 위로하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괴로움의 끝에 저는 나누어 주려고 가지고 갔던 성경책을 모두 찢어 불을 피워 주었습니다.

교회라는 조직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목숨처럼 귀하게 간직하고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강제한다 한들 한낱 종이에 기록된 글자일 뿐, 죽어가는 한 아이의 몸도 따뜻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하나님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저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신앙의 확신으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법부라는 조직과 구조 속에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의 사정을 1심 재판을 통해 익히 경험한 제 입장에서 재판장님께 '법전를 찢어 태워 보시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떠나기보다 지키기에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판사 개개인이 구조와 조직 논리라는 한계에 따른 제한 없이 담대히 판결을 내리고 그 판결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법부와 구성원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재판장님, 뒷사람이 따를 이정표를 만들어 주십시오


▲ 장호준 목사 ⓒ 장호준

재판장님, 저는 진술을 마치면서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재판장'이라는 호칭 앞에 다시 붙이고자 합니다. 비록 현 대한민국 사법부가 친일 부역과 독재 야합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또한 국정농단의 공모집단으로서 대법관을 퇴임하는 자리에서까지 허탈한 변명으로 흐느적거리는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일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변질되고 부패한 구성원들에 국한된 것일 뿐 모두가 민복기(제5·6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관, 인혁당 사건 사형 확정)나 양승태와 같은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800여 판사들의 대부분은 존경받을 만한 삶을 판결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며, 또한 믿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복과 사제복이 검은색인 이유는 어떤 다른 색으로도 물들게 할 수 없는 색깔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법복을 입고 계신 재판장님께서도 익히 경험하고 계시듯이 검은색 법복은 아주 작은 먼지도 확연히 드러나게 하는 색깔의 옷이기도 합니다. 깨끗한 검은색을 유지하기 위해 몸가짐을 매우 조심스럽게 만드는 옷입니다.

저는 사제복을 입지 않습니다. 검은색 사제복을 검은색 그대로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콩벌레처럼 잔뜩 몸을 웅크리고 먼지가 묻지 않도록 털어내며 사는 것 보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치우기 위해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라도 세상 속으로 달려 들어가야 하는 것이 사제의 본분이라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법복을 입어야 하는 재판장님의 두렵고 고독한 길을 조금이나마 참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저는 진술의 마지막을 김구 선생님께서 38선을 넘으시면서 인용하셨다는 시 한 수로 마치고자 합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내린 들판을 밟아 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라. 오늘 걷는 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재판장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1월 16일, 금 11:4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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