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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18년 12월 14일, 금 11:16 pm
[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In search of Juli's mom
지하창고에서 발견한 기록... 쥴리의 엄마를 찾아서
[체험기 : 해외입양인 부모 찾기] 내 친구 이름은 이대숙 아닌 김노미였다



▲ 미국으로 입양 당시 촬영한 아기적 쥴리 사진이다. ⓒ 김유경

(서울=오마이뉴스) 김유경 기자

[#1 사진] '천륜인데 어찌 찾고 싶지 않았을까'

이 한 장의 사진. 이름 이대숙. 1973년 7월 19일 한국 출국. 석 달 전 쥴리가 이메일을 통해 내게 보낸 것은 그녀의 생애 첫 여권 사진이었다.

쥴리는 내가 미국에서 잠시 살 때 아이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친구다. 2012년 봄에 만났으니 대략 서로 알고 지낸 지는 6년 정도. 하지만 그녀는 미국에서 지낸 4년 내내 단 한 번도 내게 생모를 찾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생김새는 100%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 물어본 적 한번 없는, 어찌 보면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친구였다.

그랬다. 쥴리는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입양아다. 다행히 그녀는 좋은 가정에서 잘 자라 의사로 성공을 했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언제 봐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고 당당해 보였던 친구. 그것이 내가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다.

그래서였을까? 올 초 그녀가 내게 생모를 찾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천륜인데 어찌 찾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이유를 물을 것도 없이 당장 그녀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친분을 쌓을 만큼 오랜 시간을 같이하지는 않은 친구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 순간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대구 백백합(White Lily) 보육원 출신, 이름은 이대숙. 그것이 그녀가 아는 전부였다.

[#2 대구시청] "찾았습니다! 여권상의 사진과 동일합니다"

먼저 백백합보육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검색해보았으나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대구시청 입양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상으로 들리는 담당자의 목소리는 매우 친절하고 차분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대구에 옛날에 백백합보육원이 있었죠"라며 "지금은 백백합어린이집으로 바뀌었는데 기록은 여전히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구시청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그녀를 미국으로 입양시킨 당사자인 홀트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살다 살다 내가 홀트라는 곳을 다 와보는구나.'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 날. 운전하면서 홀트를 찾아가는 길에 웬 헛웃음이 그리 나던지.

아무쪼록 나는 쥴리의 생모를 찾기 위해 대구시청과 홀트 두 기관에 손을 뻗쳐 놓고 소식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손에 놓지 않고 오매불망 소식을 기다리기 일주일. 먼저 연락이 온 것은 대구시청이었다.

"찾았습니다. 백백합보육원 이대숙씨의 기록이요. 여권상의 사진과 동일합니다."

드디어 단서를 발견했구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그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대숙씨 기록에서 그녀의 모친에 대한 기록을 조금 찾았는데요."
"네? 모친에 대한 기록을 찾으셨어요? 어머나. 세상에나."
"그런데 말이죠. 이거 말씀드리기가 참 그런데요. 그분은 아마도 정신질환자셨던 것 같아요. 기록으로 보았을 때 쥴리는 생모와 함께 몸이 불편한 분들이 계시는 시설에 머물렀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양육이 불가능해졌고 그래서 쥴리를 백백합고아원으로 보냈던 거구요."

아… 어찌 이런 사연이. 쥴리 생모는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분이셨구나. 그래서 그녀를 보낸 것이구나.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그 시설 이름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래요? 그쪽에 제가 여쭤봐야 할 것 같아서요."
"시설 이름은 대구시립희망원입니다."

[#3 이메일] "평생 모르고 사는 것보다 아프더라도 알고 싶다"

대구시립희망원. 전화를 끊고 나서 우선 대구시립희망원을 검색해 보았다. 관련 기사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온다. '7년간 309명 사망', '인권유린의 사각지대' 등등. 소름이 오싹 끼친다.

'아... 어마어마하구나.' 오늘 알게 된 이 엄청난 이야기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쥴리에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엄마가 정신질환자로 시설에 있었다는 사실도 어떻게 말해야 하나 벅차 죽을 지경인데, 이번엔 그곳이 바로 대구시립희망원이라니.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해진다. 그녀와 그녀의 생모가 머물렀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정이입이 된 걸까. 혹시 만일, 쥴리의 엄마가 현재 그곳에 살아계신다면… '그분이 살아계시든 아니든 그곳에 머무셨던 것은 사실일 터.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어떻게 살아내셨단 말인가.' 상상력이 거기까지 미치게 되니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순간 생모를 찾는 일이 두렵게 느껴진다.

'아... 이를 어쩌지. 그녀에게 사실을 다 말해줘도 되나. 나도 이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데, 그녀는… 차라리 아픈 이야기는 빼고 생모가 있었던 곳을 발견했다고만 전할까?' 한 일주일 정도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나는 큰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이메일을 쓰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그날 쓴 편지는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쓰기 힘들었던 편지였으리라.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구절은 딱 한 문장이었다.

'엄마가 아프셨대' - '엄마가 정신질환자셨대'

그 두 문장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나는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도 더 반복했다.

결국에는 "너의 생모 흔적을 찾았어. 거기에 엄마와 네가 머물렀던 곳도 기재되어 있었단다. 노트에 보니 엄마가 아프셔서 너를 고아원으로 보내게 된 거래. 너와 생모가 묵었던 그곳은 돌볼 분들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다. 계속 알아봐 줄까?"라고 다소 애매하게 문장을 쓰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의사인 그녀는 내 편지 안에 숨겨진 의미를 단번에 알아채고 이렇게 답장을 했다. 다음날 그녀가 보낸 답장은 눈물로 가득했다.

"모든 다른 입양인들의 과거가 슬프듯 나도 그런 것이지? 혹시 엄마랑 내가 머물렀던 곳이 정신질환자 수용시설 같은 곳이니? 그렇니? 그런 거지? 그 소식이 슬프거나 어떠하거나 나는 말야 '사실'을 알고 싶어. 생모와 나의 과거. 모르고 평생을 사는 것보다 아프더라도 알고 싶단다. 도와줄래?"

그녀의 뜻은 분명했다. 친구의 강한 의지를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 즉시 나는 희망원에 연락을 취했다. 지난해 시사고발프로에 나올 정도로 소문난 곳이라 솔직히 전화를 거는데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물론 지금은 운영주체가 바뀌어 정상운영이 되고 있다지만, 다이얼을 누르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4 대구시립희망원]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을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 우려를 한 번에 씻겨줄 만큼 상냥하고 고왔다. 그녀는 지난해 말 희망원에 새로 부임한 팀장 백○○씨다. 따뜻한 목소리에 긴장모드를 해제한 나는 그녀에게 사정을 자세히 설명한 뒤 도움을 요청했다.

"혹시 희망원 안에 이대숙씨의 생모가 계신지 확인해 줄 수 있으신지요? 생모의 이름은 모르지만 가능할까요?"

혹시 살아계실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첫 번째 가정이었다. 생존해 있다면 아마도 60대 후반 아니면 70대 중반 정도일 것 같아 그 분들을 중심으로 봐주실 것을 요청했다. 나는 혹시 모르니 희망원 건물 곳곳에 쥴리 어릴 적 사진과 현재 사진을 붙여두면 어떨까 제안을 했고, 그녀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리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은 기억할 터.

"네,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곳 시설에 현재 약 천명 정도가 계셔서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에요. 대부분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분들이라 더욱 그렇구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백 선생은 두 장의 사진을 갖고 몇 주 동안 희망원을 샅샅이 뒤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일을 돕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몇 주가 지나고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먼저 걸었다.

"안녕하세요! 소식이 없어서요...."
"네. 전화드리려던 참이었는데… 1970년대 초반에 입소한 그 연배의 사람들은 현재 계시지 않은 것 같아요. 생존해 있더라도 이미 이곳을 떠난 상태고 다른 시설에 계신 경우가 몇 있었는데 확인 결과 그들은 그녀가 아니었어요."

아. 돌아가셨을 확률이 커진 것이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아니다. 혹시나 생모에 대한 자료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백 선생님께 다시 생모의 기록 카드를 찾아봐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하지만 이름이 문제였다.

"1970년부터 현재까지 거쳐가신 분들이 수 십만 명은 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예요. 어머니 이름을 알면 그래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보육원 기록에는 왜 아이 이름만 있고 생모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름만 알아도 생모의 과거를 추적할 수 있으련만…. 사실 고아원 입소 카드 중 99%는 부모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아 뒤늦게 부모를 찾으려는 입양아들을 힘들게 한다.

'아니. 아이를 제멋대로 버린 것은 그렇다 쳐도 찾을 권리마저 아이로부터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니야? 이런 나쁜 부모들 같으니라고…. ' 화가 버럭 난다. 방송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마도 그때 즈음인 것 같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에 광고도 내보았다. 하지만 언론에 내보내도 더 이상의 소식은 없었다.

[#5 대구시청 여성정책담당관실] "이름을 새로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3월 7일,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기 3주 전. 나는 대구행 KTX에 몸을 실었다. '더 이상 못 찾는구나' 하고 단념에 이르렀지만 한 번은 대구를 찾아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도움 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말씀도 드릴 겸 다음에 친구와 함께 찾아올 때 동선이라도 파악해둘 겸 사전 답사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먼저 들른 곳은 대구시청 여성정책담당관실이었다. 홍 선생님. 이만큼 쥴리의 과거를 알게 된 데는 그분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그동안 감사합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아닙니다. 찾았으면 더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혹시 다른 루트는 또 없을까요? 생모의 기록을 찾을 수 있는 방안 말이요."
"안타깝지만 대부분 입양인들이 여기까지 물어물어 옵니다. 문제는 이름이에요. 이름이 틀리니 더 이상 진전이 안됩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후 이제 끝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후 홍 선생이 갑자기 말을 이었다.

"아차! 잠시만요. 제가 오늘 아침에 찾은 자료가 하나 있기는 한데…."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급히 방을 나선다. '무슨 얘기지?' 어리둥절하고 앉아 있는데 잠시 후 홍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에게 오래된 검정 서류 뭉치를 들이민다.

"이게 당시 보육시설 입퇴소 현황자료인데요. 1973년 것을 오늘 아침에 건네받아 뒤져 보았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는 당시 매일 매일 보육 시설로 옮겨진 아이들의 명단이 실려 있었다. 하루 사이에 무려 20~30명의 아이들이 보육시설로 넘어가던 시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이 비참한 우리의 1970년대였다.

"그런데 여기 3월 21일. 이대숙씨가 백백합보육원으로 넘어가던 날 말이죠. 그날 보육원으로 이동한 아이들 현황을 찾아보니까 이대숙이란 이름이 명단에 없어요. 이상하죠? 그런데 말이죠. 여기 이대숙이랑 이름만 다르지 조건이 동일한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네?"

홍 선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명단에는 이대숙 대신 다른 이름. '김노미'가 씌어 있었다. 그 옆 기재란에는 "희망원에서 정신 질환자 엄마가 양육불가해 백백합보육원으로 이동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동일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나 몰라 보육원 측에 당일 김노미라는 이름의 아동이 입소했는지 물어보았으나 백백합보육원에는 김노미가 없었다고 한다. 희망원에도 당일 백백합보육원으로 이송된 퇴원 명단에서 이대숙을 찾지 못했다. '이게 무슨 경우지?' 홍 선생님이 말을 이어 나갔다.

"보육원 카드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대숙이라는 이름 위에 작은 글씨로 '작'이라고 써 있어요. 보이시죠? 이건 이름을 그곳에서 새로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고아원에서 그땐 이름을 많이 바꾸었나봐요."
"그럼… 이 둘이 동일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인가요? 세상에… 그럼 보육원에서 쥴리 이름이 바뀐 거에요?"

내 친구 이름이 이대숙이 아닌 김노미가 되는 순간이었다.

[#6 대구시립희망원] "지하 문서보관 창고로 내려 가보실래요?"

보육원에서 왜 이름을 바꾼 것인지 도무지 추측할 수 없으나 우리는 일단 이 자료를 가지고 다음 약속 장소인 희망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구시청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달리다 보면 한적한 언덕길이 나오고 그 한적한 언덕 위에 대구시립희망원이 있었다. 희망원! 이 곳이 내가 석 달간 마음속으로 수 십 번도 더 그렸던 희망원이란 말인가. 친구가 머물렀었던 바로 그곳. 정문 앞에 섰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만감이 교차한다. 장애인 시설이라고 들었기에 약간 긴장도 됐다.

입구에 들어서니 넓은 잔디 운동장이 나오고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운동장에 나와 삼삼오오 산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외부인이 신기한 듯 멀찌감치서 나를 쳐다보고, 또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다. 저 멀리서 이미 약속했던 백 팀장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든다. 한 떨기 백합꽃 같이 선한 미소가 인상적이셨다.

"백 선생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요 뭘."
"아차, 제가 오늘 대구시청에서 이런 자료를 넘겨받았는데 아무래도 내 친구 이름이 바뀐 것 같더라구요."

사실 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친구의 이름이 달라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두 번째 가정, 쥴리가 희망원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후 6개월도 안된 신생아의 이름은 희망원에 기록으로 남겨있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 가정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방금 새로 발견한 사실이 무슨 도움이라도 될까 하고 그녀에게 슬쩍 흘려 말했는데 이게 웬일. 백팀장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터져 나왔다.

"아이의 이름이 바뀌었다고요? 이대숙 말고 김노미라…. 저희는 갓난아이조차도 희망원 입소뿐만 아니라 퇴소할 때 기록을 남깁니다. 이대숙이란 이름으로 찾았을 때는 없었는데 이름이 바뀌어서 그랬던 거군요. 혹시 모르니 김노미라는 이름의 퇴소 기록이 있나 찾아봅시다."
"뭐라고요? 정말요?"
"너무 오래전 기록이라 전산시스템에는 없군요. 저랑 지하 문서보관 창고로 같이 내려 가보실래요? 거기에 가면 오래전 기록이 보관되어 있거든요."

[#7 철제 캐비닛] "엄마와 함께 입소한 것이었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어디를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인지. 그곳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물어볼 틈도 없이 나는 허둥지둥 그녀를 따라 지하 계단을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굳게 닫힌 쇠 철창 문이 스르르 열리고 그 안에는 먼지 가득한 수십 개의 박스가 방안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추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소였다.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각각의 박스에는 연도가 쓰여 있었다. 1980년, 1981년 명찰이 붙여진 박스에는 해당연도에 발생한 입퇴소 현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만 보니 전산화되기 전까지의 자료가 보관된 곳이다. 그런데 그 박스의 연도별 순을 훑어보니 1978년. 여기서 딱 끊겨 버렸다.

'아… 1978년까지만 보관된 것인가. 하긴 1972년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 그렇게 낙담을 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옆에 굳게 문이 잠긴 오래된 철제 캐비닛이 눈에 들어온다.

백 팀장이 주저하지 않고 '잠깐만요' 하며 바로 그 순간 그 캐비닛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그 안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던 자료. 정확히 말해 1950년부터 1977년까지의 자료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던 것. 마치 수십 년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 것만 같은 오래된 서류철들이 빼곡히 캐비닛을 채우고 있는데, 순간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1977년, 1976년, 1975년, 1974년, 1973년. 내 손길은 1973년 서류철에서 멈춰 버린다. '됐어! 이제 여기서 1973년 3월 21일. 쥴리가 희망원을 퇴원한 날을 찾으면 된다.' 우리는 미친 듯이 그 서류를 꺼내 날짜를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날짜. 3월 21일. 그날 퇴원자 명단에는 이대숙은 없지만 '김노미'가 있었다. 옮겨진 곳은 백백합보육원. 사유 '모친 양육불가'. 그녀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의 기록에 예상치도 못했던 흔적이 하나 남아 있다. 쥴리가 희망원에 입소한 날이 적혀 있던 것이다. '뭐지?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그녀의 희망원 입소 날짜는 같은 해 1월19일.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어떻게 아이가 혼자 이곳에 입소했단 말인가요. 보통 아이가 발견되면 고아원으로 보내질 터인데 이상하다. 혹시! 엄마가…"

우리는 동시에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서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세상에! 쥴리는 이곳에 엄마와 함께 입소한 것이었어요!"

[#8 입소 기록물] "그녀다! 쥴리의 생모다"

'엄마와 함께였어. 엄마와 함께.'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우리의 손길은 이미 퇴소 기록물 상단에 나란히 정리되어 있는 입소 기록물에 다다라 있었다. '1973년 입소 대장' 부디 이곳에 또 다른 단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는 기록물을 끄집어내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치고,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모두가 하나가 되어 거칠게 페이지를 넘기는데... 5월, 4월, 3월, 2월, 1월… 그리고 1월 19일. 내 손가락은 이미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날 희망원에 입원한 사람은 모두 이십여 명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무 슬펐다) 대부분이 청소년과 성인 남성들이었고 그중에 여성은 단 세 명뿐. 당연히 세 명의 여인 중 한 명은 김노미였다.

'아~ 어떡해 이걸…' 우리의 시선은 곧바로 다른 두 여인의 기록에 집중됐다. 두 명의 여인. 한 분은 60대 중반의 연세가 많은 여인이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나이 29세. 이름은 김순이. '아… 그녀다!' 쥴리의 생모다. 우리는 그녀가 쥴리의 엄마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더니 우리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김순이의 인적 사항은 김노미 바로 위 칸에 나란히 기재되어 있었다. 희망원 입소한 날짜도 같고 발견된 장소도 칠곡군 칠곡면 아시리. 두 사람 모두 동일했다. '이 둘은 모녀인 것이다.' 석 달을 넘게 찾아 헤매었던 비밀의 열쇠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생모 기록 맨 끝에는 같은 해 6월 13일 사망이라는 글자가 차갑게 적혀 있었다.

"돌아가셨구나. 돌아가셨어."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는구나. 허탈함. 슬픔. 먹먹함.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차가운 지하공간을 가득 메운다. 이 부탁을 들어주기로 쥴리에게 처음 약속했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렇게까지 몰입해 이 일에 빠져들게 될지 몰랐다.

너무도 슬픈 결말에 가슴은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다 끝났구나'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그 심정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특별하고 힘든 무엇이다.

"백 선생님! 그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지를 발휘하셔서 도움을 끝내 주시는 군요.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나는 마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그녀를 안아버렸다. 그녀는 그런 나를 그렇게 토닥토닥.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선생님! 이 포옹은 내 친구 쥴리를 대신한 것입니다.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안고 또 안아 주었다.

"다음에는 쥴리와 함께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백 팀장과 인사를 나누고 희망원을 나서는데 한참 동안 그녀는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따뜻한 사람이구나…' 그녀의 눈빛에서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읽혔다.

[#9 핸드폰] "네 실제 이름을 찾았어"

희망원을 나서며 나는 바로 동영상 통화를 통해 쥴리에게 이 모든 사실을 전달했다. 한밤중 아이를 재우다 전화벨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온 쥴리는 '무슨 일이지?'하는 표정이었다.

"쥴리! 오늘 대구시청에서 네 실제 이름을 찾았어. 네 이름은 이대숙이 아니야. 김노미. 김노미란다. 이름이 정말 이쁘구나."

쥴리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늘 소식 많이 기다렸지? 알다시피 대구에 와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네 기록을 찾아보았고 그 가운데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어."

무엇을 더 꾸미거나 뺄 것도 없이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을 쥴리에게 솔직하게 다 이야기해주었다. 엄마 본명을 발견했다고 전했을 때 쥴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쥴리! 이젠 네 이름. 네 생모 이름. 그리고 그분이 돌아가신 것까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어."
"고마워. 그렇게 된 것이구나. 진심으로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길 한 가운데서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얘기하며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 순간 하늘에서 쏟아지던 봄볕은 어찌나 찬란하던지. 마치 그녀의 생모. 김순이씨가 '드디어 알아냈구나! 드디어 내 딸이 내 이름을 알게 됐어'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향해 미소를 환히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10 고향 대구] "감사를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 기부를 생각했어"

지난 3월 28일. 쥴리는 가족과 함께 대구시청을 방문했다. 꿈속에서 아마도 수백 수천 번은 더 가보았을 곳, 태어난 고향 대구. 한 살 때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이의 품 안에 안겨 올라탔던 미국행 비행기. 45년 지난 지금,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구를 찾아 자신의 생모 기록을 찾아준 데 큰 공을 세워주신 두 분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말이지 지금 너무 행복하다. 내가 태어난 곳에 이렇게 나를 진심 다해 도와주신 분들이 계시다니. 그 사실이 정말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이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기부를 생각하게 됐어. 희망원도 그렇고 내 생모와 같은 미혼모들이 계신 보호시설에도 기부를 하고 싶어."

내게 부탁을 했다. 기부! 그녀는 슬픔을 너머 아픔을 건너 '기부'라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에 마침표를 찍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석 달간의 긴 여정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지난 3개월. 쏟아지는 눈물에 감정을 주체 못 해 몇 날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 희망원에 다녀온 날부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력을 못 찾아 링거를 맞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팠던 이유는 아마도 혹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픈 사연'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무도 부끄럽고 슬픈 우리 역사. 그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랑아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시설에 가두고, 실종아동이나 버려진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해외로 마구 수출했던 부끄러운 나의 나라 대한민국(실제로 실종아동의 경우도 한 달 이내 입양이 결정된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쥴리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대구시청 홍 선생과 그리고 희망원의 백 팀장. 세상에 이런 천사 같은 사람들이 있다니. 이 두 분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진심 어린 노력과 관심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말 세상에 몇 되지 않은 보석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남의 일을 자신의 일 이상으로 진심을 다해 노력해준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의 진심과 정성이 하늘에 닿아 오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가끔 쥴리의 엄마가 우리에게 이 두 천사를 보내주신 게 아닌가 생각도 했다.

비록 힘들었지만 너무도 소중한 경험을 해보았던 2018년 봄. 아마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봄으로 기억될 것만 같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올려짐: 2018년 11월 16일, 금 11:0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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