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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101718
'경제민주화’ 정책제시, 박근혜보다 15년 앞서
[김영삼 평전 95] 국정개혁 성취와 좌절의 연대기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김 대통령의 1년차 국정수행은 바쁜 나날이었다. 어느 정도 시급한 개혁의 과제를 마무리하고 경제ㆍ민생ㆍ외교문제에 집중했다. 7월 2일 청와대에서 신경제 5개년계획 보고대회를 갖고 경제정의 실현에 목적을 두는 대책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경제민주화’ 구호는 2013년 대선 때 박근혜가 제시한 정책으로 알려졌지만, 가장 먼저 경제정의 정책을 제시한 것은 YS였다. 금융실명제 실시도 경제정의(경제민주화)를 구현하려는 시책의 일환이었다.

나는 5개년 계획은 경제정의 실현에 역점을 두었다고 전제, 소득이 많은 곳에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될 것이며, 금융실명제를 반드시 실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또 참여와 창의를 고취하고 경제정의를 증진하기 위해 효율과 공정이 함께 보장되도록 경제 제도를 개혁하며 경제 전반에 걸쳐 폭넓은 개혁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또 “튼튼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선 부정부패가 없어져야 하고 정치가 깨끗해야 하며 공직 사회가 투명해야 한다”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주석 1)

YS정부의 신경제 5개년계획(1993~1997)은 경제성장률 연평균 6.9%, 소비자물가상승률 3% 수준, 국제지수 1995년부터 흑자를 낸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5개년계획은 성공하지 못하고 임기 말에는 IMF(외환위기)를 맞아 ‘경제국치’라는 전대미문의 국난을 겪게 된다.

YS는 7월 6일 문민정부의 통일정책으로 ① 민주적 절차의 존중 ② 공존공영의 정신 ③ 민족복리의 정신 등 세 가지 기조를 제시했다.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통 제6기 출범식 연설에서 “화해ㆍ협력ㆍ남북연합의 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의 통일조국으로 나가는 3단계 통일방안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는 통일정책을 정권유지에 이용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서 “북한 당국도 우리 내부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7월 10일 클린턴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에로의 복귀ㆍ국제원자력기구(IAFA)의 특별사찰 수용, 남북한 상호사찰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 등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는데 합의했다. 클린턴은 미국의 확고한 대한 방위공약 준수와 주한미군의 현재규모 유지를 다짐했다.

또 YS의 민주화투쟁 경력을 높이 평가하고, YS가 제안한 한미간 경제협력대화기구(DEC) 설치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조깅을 함께하면서 우의를 나누었다.

활발한 정상외교, 프랑스에서 ‘의궤’ 반환

YS는 취임 1년 동안 활발한 정상외교를 폈다.

4월 7일 칼 빌트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 5월 25일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 6월 2일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과 정상회담, 6월 21일 폴 키팅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9월 10일 나라시마 라오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 10월 15일 마리오 소아레스 포루투갈 대통령과 정상회담, 11월 13일 아르파트 곤츠 헝가리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 중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9월 14일 프랑스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방한한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과의 회담이다. 미테랑은 여배우 소피마르소 등 문화예술인들을 대동하여 관심을 끌었다. 미테랑의 방한에는 정치적 복선이 들어 있었다.

YS정부는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업자를 국제 입찰을 통해 선정하기로 하고 프랑스ㆍ독일ㆍ일본 등으로부터 제의서를 받았다. 정부는 1993년 8월 20일 프랑스 알스톰사의 떼제베(TGV)를 선정했고 미테랑의 방한은 이에 대한 감사의 답례 성격이 짙었다.


▲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1권

미테랑은 귀중한 ‘선물’을 갖고 왔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총 297권의 도서 중 한 권인 <휘경원원소도감의궤(상)>(의궤)였다. 순조의 생모 박씨의 장례 및 산소 조성에 관한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상권 만을 가져왔고, 하권은 귀국 후 보내주기로 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담당 여직원이 이를 거부, 사표를 냈다는 이유로 결국 반환받지 못하고 말았다. 프랑스 정부의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고가의 떼제베 도입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문민정부 초기 YS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북한이었다.

취임사에서 ‘동맹국보다 동족’을 앞세우고 이인모를 북송하는 등 우호적인 대북정책에도 북한은 10월 12일 IAEA와의 협상 중단과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YS 대북정책의 기조가 차츰 온탕에서 냉탕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11월 6일에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일본 총리가 방한,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공동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 호소카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한 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을 깊히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陳謝)드린다”고 정중히 사과했다. 근래 보기드문 사과 발언이었다.

YS는 취임 직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의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러나 일본은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천명했다. 호소카와의 발언도 이같은 주장에 대한 답례형식이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화 100억 엔 출자를 대가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종료시킨 데 대해 ys가 지하에서 분노하지 않았을까.

YS가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둔 해외 순방은 11월 17일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 참석이다.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펙회의 기간 8일 동안 각국 수뇌들과 연쇄회담을 갖고 지역협력 문제를 논의한 데 이어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된 북핵 해결 문제도 폭넓게 논의했다.

중국 강택민 주석과의 회담(11월 19일-현지시각)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핵 보유국 출현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얻어 낸 것은 큰 성과였다. 이것은 이후 중국 북핵정책의 기조로 굳혀졌다. YS는 이번 방미 기간 중 아메리칸대학이 개교 100주년을 맞아 주는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국인에게 처음주는 학위였다.

<주석>
1. 앞의 책, 143~144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0월 20일, 토 9: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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