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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Between the Hebrew spirit and the clash of capitalist elegancy 101718
히브리 정신과 자본주의 교양의 충돌 사이에서
[예배당 건축 기행] 소망교회 예배당을 살펴보며


(서울=뉴스앤조이) 주원규 목사

히브리 정신

히브리 정신이란 무엇일까. '히브리'란 말뜻에만 주목하면 그 출발점은 유랑, 정착하지 못하는 방랑인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

의견 차이가 있을 순 있다. 방대한 신학적 스펙트럼을 갖고 논해야 할 화두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약성서의 주연을 맡은 히브리인들의 역사 속 스토리텔링을 조금만 살펴봐도 방랑인의 흐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히브리 정신을 방랑의 키워드로 연결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방랑인의 정신은 사실 여느 시대나 존재해 왔다. 비록 오늘의 사회가 거주지 안정을 위해 현상적 방랑을 멈췄다 해도 방랑의 풍미, 그 원초적 열정만큼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일하게 지속되고 있다. 방랑은 대개 불안정함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절대 자유, 절대 낭만의 실마리로 읽히기도 한다. 하나님을 향한 히브리 백성의 신앙의 열정에서 비롯된 '자유'와 예수가 부르짖었던 '자유'에 히브리 정신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음이 그 방증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함께 대한민국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소망교회를 이야기하면서 히브리 정신 운운하는 건 꽤나 모순 같아 보인다. 히브리인들의 일상, 그들의 정신이 외부 환경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주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특징을 기억한다면 소망교회의 정신적 뿌리에 히브리 정신이 녹아 있음을 발견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해될 법도 하다.

필자는 소망교회 칼럼을 준비하면서 지하철 압구정역에서 나와 소망교회에 이르는 길을 몇 번이고 반복해 걸었다. 초고층 아파트와 성형외과 전문 빌딩, 세련의 극치를 이루는 패션숍이 들어앉은 근접 지역과 비교해 보면, 소망교회와 그 주변은 일종의 고립된 섬이란 느낌을 받았다.

일단 교회 주변으로는 층고가 높은 건물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소박해 보이는 작은 간판의 작은 숍들이 약간은 수줍은 모습으로 교회 주위를 둘러싼 모양새였다. 그렇게 소망교회는 평당 1억 원을 호가하는 강남 중심지에서 도도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정중동의 점유지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그 정중동의 내부에 들끓고 있는 외면할 길 없는 욕망의 용광로를 들춰 보긴 전까진 그랬다.


▲ 소망교회 예배당. 교회 주변에 층고가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신비와 실용의 융합

소망교회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강남노회 소속 교회이다. 1977년 곽선희 목사를 포함한 교인 11명이 삼일 기도회로 모이면서 시작된 소망교회는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에서 예배하다가 1981년, 현재의 교회 부지에 예배당을 건립했다.

성경 공부, 평신도 모임이란 모토로부터 출발한 소망교회의 태동 배경엔 평신도 위주의 예배, 교육, 경건 추구란 키워드가 스며들어 있는데, 1981년 건축한 예배당은 바로 그러한 정신이 적절히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축물 외관은 미니멀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단순한 평면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함 속에서도 필요한 종교적 요소들을 표현하려는 의지는 분명하다.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변함없는 불변의 진리를 상징하는 화강석 마감재로 시작된 표현 의지는 정면을 장식한 두꺼운 판재의 차양, 한옥 창살 문양, 벽화, 기둥 등의 조화로 인해 절정의 감각으로 상승된다. 또한 신교와 구교 사이의 간극, 아파트 문화가 도입하는 모던한 분위기를 흐리지 않으면서도 고전적 종교미를 고취하는 벽화와 두 기둥의 상징성이 적절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울러 소망교회 예배당은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핀란드 출신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가 추구한 건축의 인본주의 감각이 적실히 나타나 있다. 인본주의 디자인이란 일상에 도움을 주는 용用만이 아닌 전체 감각을 지원하는 포괄적 실용성을 말한다. 찬양, 설교, 신의 임재를 향한 고도의 집중력을 지원하는 음향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지는 예배당 지붕의 둥근 곡선으로 귀결되었고, 지붕에 돌출한 두 개의 삼각형 형태는 자연 채광을 설교단 쪽으로 최대한 집중하기 위한 예전이 우선시된 배려였다.

이렇듯 소망교회 건축물 안팎이 보여 주는 분위기는 신비와 실용의 융합으로 대표된다. 종교 전통이 추구하는 강고한 보수성, 그 신비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도시화한 주변 환경과의 무리 없는 소통 채널로 기능하고자 하는 실용성이 함께한다. 이는 야훼를 향한 특별한 감격을 표현하면서도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자 했던 히브리 정신의 추구로도 보인다.

제도와 예배 안에 뿌리내린 히브리 정신

여기서 분명히 해 둘 한 가지가 있다. 소망교회의 현재가 보여 주는 온갖 잡음을 잠시 물러 세운 뒤 소망교회의 태동 배경에만 주목해 보면, 지금까지 소망교회가 보여 준 제도와 예전禮典의 특성만큼은 충분히 히브리적이란 사실 말이다.

소망교회를 수식하는 키워드는 대개 이런 식이다. 시대가 낳은 축복의 산물, 급성장한 부르주아들의 사교 모임 장소, 가난한 사람이 다니기 어려운 교회 등. 이는 아마도 한국 부르주아의 3대 조건으로 알려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그리고 소망교회란 상징화로 대표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현실과 다르게 소망교회의 제도 자체가 지향하는 근본 취지는 '탈귀족화'다. 소망교회의 내부 공간은 수직적 계급화와 상하 계층화를 막기 위해 장로석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있다. 장로를 중시하던 1980년대 장로교 전통으로 볼 때 당시의 시도는 소망교회 정체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특징이다.

또한 소망교회는 안수집사 제도도 없다. 행정의 민주화를 위해 한 직분을 2년간 맡은 뒤엔 평회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와 함께 소망교회는 소위 대형 교회가 교인 응집과 결속 수단으로 사용하는 장묘 사업이나 운송 수단의 최소화를 추구한다. 단체 이동을 위해 한 대쯤 가질 법한 교회 버스가 없고, 교회 명의를 대표로 운영되는 묘지도 없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소망수양관 내에 '소망교회 성도의 묘'라고 적힌 비석이 하나 있을 뿐이다. 원하는 교인에 한해 비석 주변에 유골을 뿌려도 되지만 고인의 이름을 따로 기념하는 공간은 두지 않았다.

또한 소망교회는 창립 이후 30년 넘게 단 한 차례도 집회를 열지 않았다. 새 신자를 모집하기 위해 교회마다 연중행사처럼 벌이는 '대각성 전도 집회'도 시행하지 않았다. 새로 나온 사람을 예배 시간에 따로 소개하지도 않고 특별한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예배당 외관은 단순한 평면 형태다. 한옥 창살 문양, 벽화, 기둥 등을 통해 고전적 종교미를 드러내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아울러 예배가 시작되면 고도로 절제된 행동을 교인들에게 요구한다. 예배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고 최대한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박수를 치는 일이나 '아멘'을 큰 소리로 내뱉는 일도 없다. 이러한 예배 특징은 감정의 억제, 혹은 종교 감정의 약화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절대 고요를 통해 신과 만나고픈 경건주의의 발로로 이해될 여지도 다분하다.

이처럼 소망교회는 제도와 예전 속에서 인본주의적 점유 욕망과 노출 욕구를 최대한 줄이고 신의 음성을 찾아 유랑하는 고정된 공간 속에서의 방랑이란 히브리 정신의 내재적 순환을 교회 정체성으로 일궈 왔다. 이러한 정체성을 고수하는 전통은 변화에 대한 거부이기보다는 심미적 숙고를 위한 하방의 의식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씁쓸한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 소망교회가 애써 지켜 온 제도와 예배 속 경건이 추구한 히브리 정신이 그들만의 공간 속에서의 소용돌이에만 머물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 때문이다.

그 느낌의 뒤란에 자본주의 교양이 가진 치명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시적 유목민을 집어삼킨 자본주의 교양의 함정

소망교회 초대 목사인 곽선희 목사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을 물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는 '도시적 유목민'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도시적 유목민'을 향한 소망교회의 설교는 귀에 들어와 박히는 세련된 수사로 많은 이에게 위로를 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위로가 초고속 경제성장이 낳은 자본주의 급물살의 선봉에 선 이들, 소위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의 외롭고 상처 난 부분을 싸매 주는 역할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다.

굳이 들춰내는 것 같아 그렇지만 소망교회는 탐욕과 위선의 끝판을 보여 주고 만 대한민국 전前 대통령 이명박 장로를 배출한 곳이다. 또한 소망교회는 이명박 정부 때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정권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부분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의 걸출하고 화려한 설교, 현대인의 공허를 달래 주는 위로의 말들은 안타깝게도 자기 성찰과 자성의 메시지로 진화하기보단 성공의 독에 취한 이들의 주례사로만 기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자본주의 교양의 늪에 묻힌 치유 메시지는 초고속 경제성장의 맹점, 그 어두운 구렁을 보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굳이 어두운 치부를 왜 봐야 하는가', '음습하고 불길한 누아르 말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 좀 보겠다는데 그게 뭐 잘못이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엔 잊지 말아야 할 전제가 있다. 그들, 세련되고 달달한 자본주의 교양을 추구하는 이들이 바로 어두운 구렁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란 사실 말이다.


▲ 위로 곧게 뻗은 십자가탑에는 '예수 구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초고속 경제성장의 소용돌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천민자본주의의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한 교양은 자기네들이 배설한 어둠의 진창 속에서 탄식하는 약자들의 아픔을 위로할 여유가 없다. 자신들의 성공 신화를 유지·지속하기 위한 보신保身만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정신, 도시적 유목민의 위로가 더 이상 유의미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10월 20일, 토 6:1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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