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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Pastor Choi's column 090518
불가능의 역설
[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예수님은 로마 제국이라는 막강한 제국이 지배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에의 도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뜻 복음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자각에 도달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이 없이 출발하는 그 어떤 신앙의 삶도 복음을 살아내지는 못합니다. 타고난 자기합리화의 장인으로서 인간은 끝없는 곁길과 둘레길로 복음을 왜곡하거나 에둘러 바라볼 뿐입니다. 거기에 어리석은 자만이 더해지면 하나님을 둘러리로 세우면서 자기의 업적의 끝마무리로 영광이라는 금칠을 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웅들의 나라가 아니며 부자들의 나라는 더더욱 아닙니다. 쇄락한 다미안 성당을 프란치스코가 리모델링하였지만 그 모습은 결코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자랑하는 대성당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애초의 모습보다 더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헤롯의 대성전'을 함께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화려한 헤롯의 대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허물어져 버릴 인간의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백향목과 같은 이들의 나라가 아니라 겨자풀과 같은 이들의 나라라는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가장 먼저 인간의 욕망이 한사코 겨자풀 같은 인생을 거부하기 때문이며, 그 다음으로 겨자풀 같은 가난한 이들의 연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힘과 영향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작도 해보기 전에 먼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손을 맞잡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손을 맞잡는다면 자신의 문제에 상대방의 문제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대책 없는 몰락이 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바로 여기에 역설이 존재합니다. 인간의 능력이 끝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시작된다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다른 가난한 자들의 가난이 더해져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병이 낫지 않는 것에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완전히 소멸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온전해지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복음 전파에 치명적으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고질병,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신이 온전해질 수 있는 비결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병이 낫지 않았지만 그의 복음 전파는 닫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복음 전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는 발견합니다. 자신의 약함이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의 통로가 된다는 이 역설적인 진리를 자신의 몸으로 체득한 것입니다.

만일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면 그 역시 오늘날 오만한 기독교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업적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금칠을 해대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자신이 한 모든 일들을 수포로 만들고, 나아가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완전히 망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0)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위대한 사도인 바울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을 것이라 지레짐작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으며, 그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도성은 늘 의심의 도마에 오르는 단골메뉴였습니다. 그는 몰이해로 빚어진 아픈 상처 때문에 '눈물의 편지'라고 알려진 글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야 했으며, 초기 교회 성도들로부터 말에 졸하고 어리석은 자라는 취급을 받았습니다.(고후11장 참조) 그의 삶은 세상의 눈으로는 결코 형통의 연속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았습니다. 느꼈습니다. 자신이 좌절을 느껴야 하는 그 순간마다 자신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했고, 그는 마침내 '내가 약한 그 때에 감함이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침이야말로 그가 자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순간의 감격이었고, 그런 그를 통해 초기 교회의 선교와 복음의 확장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불가능에 도달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불가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기술의 발달과 문화의 발달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반역한 인간의 사고가 스스로 가능한 것들만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성취한 모든 일들에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금칠을 하여도 그 일이 결국에는 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기의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단순한 인간의 자가당착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은 물론 당사자인 자신마저도 속고, 착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단의 올무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인간의 불가능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역의 시작이라는 사실과, 애초부터 인간에게 가능한 것을 선택한 모든 성취들이 다만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자기의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불가능을 선택하는 무모함이야말로 진정한 신앙함이라는 이 역설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은 성숙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성숙은 완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끝없는 순종과 헌신은 그제서야 시작됩니다.

평화 노래꾼 홍순관은 '낙타를 따라'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낙타를 따라 바늘구멍으로 들어가 봅니다.
따라 들어가 보니 그렇게 넓을 수가 없습니다.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어 춤을 추고도 넉넉합니다.

낙타를 따라 바늘구멍으로 들어가 봅니다.
좁을 줄 알았던 바늘구멍은 좁은 곳이 아니라
보지 못하였던 신비였습니다.
너무 넓어, 보이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낙타를 따라 바늘구멍으로 들어가 봅니다.
바늘구멍은 좁은 곳이 아니라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닫힌 문이었습니다.
들어가려는 사람에겐
낙타 수천 마리가 쉽게 드러나는 자유의 문이었습니다.
내가 열리니 우주의 문이 열립니다.
바늘구멍은 동서남북사방팔방으로 열립니다.

낙타를 따라 바늘구멍으로 들어갑니다.
천국의 춤을 추며 덩실덩실 들어갑니다.

-홍순관, <<네가 걸으면 하나님도 걸어>>, 살림, P.118-119

그의 노래는 불가능을 극복한 신앙의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줍니다. 천국의 춤을 덩실덩실 춘다는 그의 표현에서 우리는 성령의 춤을 봅니다. 인간의 불가능에서 시작하고, 인간의 불가능을 극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는 그의 노래에서 보고 듣고 배우게 됩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자기의 소설쓰기를 바늘로 우물 파듯 인내하는 과정으로 설명했다면서 우리 앞에 있는 저 거대한 탐욕의 바위를 파 생수가 돋아나는 우물을 만들기 위해 바늘 하나를 가지고 나서는 참 바보들이 그리운 시절이라고 말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에게서 똑같이 불가능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홍순관은 자신의 시에서 이것을 신비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신비라는 말 이외에는 이 현상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참 바보들은 바늘 하나를 가지고 바위를 파는 사람들입니다. 참 바보들은 불가능에 도전함으로써 하나님의 신비에 도달할 것이며 반석에서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생수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 생수를 마신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참 바보들로 살아갈 것입니다. 낙타를 따라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며 천국의 춤을 덩실덩실 추는 참 바보들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올려짐: 2018년 9월 06일, 목 6: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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