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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연예/스포츠
 
The anger of the audience after the movie, Maneuver 082218
'공작' 끝난 뒤 관객들의 분노... 대한민국 참 별로였다
실화라서 더 충격적인 영화 <공작>, 현대사 공부의 과제를 남기다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실화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라는 자막에도, 고등학생 아들 녀석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태어날 즈음인 불과 20여 년 전에 설마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국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람 뒤 그가 '냉전과 분단의 현대사를 소재로 한 판타지물'이라고 굳이 장르를 규정한 이유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 최근 개봉한 영화 <공작>을 아이와 함께 관람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교과서 열권보다 낫다는 게 지론인지라, 퇴근 시간에 맞춰 아무런 예고도 설득도 없이 아이를 영화관에 끌고 가다시피 했다. 대개 관람 전에 영화의 소재나 배경 등 얼개를 대충 알려주지만, 이번만큼은 완전히 백지 상태였다.


▲ 영화 <공작> 스틸컷ⓒ (주)사나이픽처스 , (주)영화사 월광

실화라고 했음에도 믿지 못한 고등학생 아들

영화 도중 스토리가 이해되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남한 사람이고, 누가 북한 사람인지 정도를 제외하면, 시공간의 변화가 워낙 심하고 장면마다 호흡이 짧아 영화의 전반부는 관람 자체가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직접 사건을 겪은 기성세대라면 몰라도, 실화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어린 세대에게는 '잘 만든 추리물' 정도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용서받지 못할 국가의 범죄를 노골적으로 고발한 영화인데도, 영화관 곳곳에서는 충격과 분노의 탄식은커녕 이따금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질 만큼 가벼운 분위기였다. 무겁고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감독의 의도였을 테지만, 관객들의 반응만 본다면 오락 영화로 착각될 정도로 재미를 주는 요소를 군데군데 끼워 넣었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도 물론 한몫했을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총선과 대선에 개입한 안기부의 '북풍 공작'을 다룬 작품이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타락한 정치 현실과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통째로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당시의 공작 정치가 모든 불의와 부패를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였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요즘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국가기관들의 낯뜨거운 행태에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남북의 긴장과 대치. <공작>의 긴장감은 여기에 기인한다


▲ 영화 <공작>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당장 배우들의 대사가 너무 낯익다. 예컨대, '국가의 명령'이라며 무조건 따르라는 안기부장의 발언은 과거 영화 <실미도>에서 등장한 중앙정보부장의 그것과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게 똑같다. '국가의 명령'은 곧 VIP의 뜻이고, 조직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최근까지도 목도하고 있는 바다.

정곡을 찌르는 대목도 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고히 하려면, 상대가 적절히 괴롭혀줘야 한다는 대사는, 기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던 '금기어'였다. 지난 오랜 냉전 시기에 남과 북의 정권과 기득권 세력들은 서로 '적대적 동지 관계'였음을 굳이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 셈이다.

"'뼛속까지 빨갱이'인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진짜 빨갱이'인 북한 정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말이 되나요?"

안기부의 스파이 '흑금성'의 도발적인 질문에, 정치란 원래 그런 거라고 눙치는 최 실장의 모습은 복선이자 영화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언뜻 정치에 대한 환멸을 조장할 수도 있는 대사지만,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고 제작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국가'를 위한 그의 목숨 건 첩보활동이 결국 '정권'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결론에 해당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전의 보수 정권 때라면 개봉은커녕 시나리오 작업조차 불가능했을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에 온정적인 영화는 결코 아니다. 90년대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팔아 정권 자금을 마련한다는 설정은 북한 권력의 부패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씨 세습 권력'의 무능을 꼬집는 북한 고위 관료의 발언 장면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짧게만 느껴졌던 2시간 20분 러닝타임


▲ 영화 <공작>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오로지 정권의 충직한 개가 되어 온갖 추악한 공작을 서슴지 않는 안기부를 고발하면서도, 백성의 굶주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 권력의 무능함도 함께 꼬집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권의 수족일지언정 남과 북에는 진정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 곧 주인공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주제를 더욱 부각시켜준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외화벌이 책임자인 리명운과 안기부의 스파이 박석영은 또 다른 '적대적 동지 관계'인 셈이다.

사회경제적으로 확연하게 다른 남과 북의 현실을 보여주는 '소품'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남한과 폐쇄적인 사회주의에 경도된 북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설정으로 읽힌다. 박석영이 건넨 신뢰의 징표 '롤렉스시계'와 리명운이 건넨 '넥타이핀'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공작> 스틸컷ⓒ (주)사나이픽처스 , (주)영화사 월광

넥타이핀에 적힌 '호연지기'라는 글자는 북한 제품이라는 의미와 함께 신뢰에 대한 화답이라는 중의적 표현이다. 화려한 롤렉스시계와 소박한 넥타이핀이 교환된다는 건, 남과 북이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는 당위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종국에는 그들이 서로 간절히 바랐던 남과 북의 경제 교류가 결실을 맺는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향한 복선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이 영화는 근래 본 것들 중에 가장 짧게 느껴졌던 작품이다. 광고를 뺀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에 이를 만큼 결코 짧지 않은 영화지만, 장면 하나 대사 하나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어 몰입도가 높다. 모르긴 해도, 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의 '잘 만든(Well-made) 영화'라는 상찬도 바로 이런 점을 높이 산 것이라 본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관객들의 어깨에 짐을 지우고 있다. 실존 인물이었던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년 형을 선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 <공작> 스틸컷ⓒ (주)사나이픽처스 , (주)영화사 월광

고 노회찬 의원을 떠올리게 한 장면들

이는 냉전과 분단을 숙주로 맹위를 떨친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이 여전히 엄존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아무런 배경 음악도 없이 침묵 속에 흘러가는 불과 몇 초간의 자막이지만, 과연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있다. 정작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흑금성'이 아니라 안기부와 국회의원들 아니냐는 반문이기 때문이다.

영화관 출구에 줄선 관객들로부터 나름의 영화평을 엿들을 수 있었다. 다들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동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당시의 북풍 공작과 국가보안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편, 영화로 제작될 만큼 유명한 사건을 자신은 지금껏 까맣게 몰랐다며 정치권과 함께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이도 있었다.

그때 한 젊은이가 앞서가며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런 파렴치한 국회의원들도 활개를 치며 잘만 살고 있는데, 그깟 정치 자금 몇 푼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국회의원은 뭐지?" 당시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이 북한의 고위 관료를 찾아가 남쪽에 총격을 가해달라고 요청하는 영화 속 장면에서 순간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떠올린 것이다.


▲ 영화 <공작>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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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8년 8월 24일, 금 5: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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