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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A Korean child with polio has grown into an international relief organization 081518
한국의 소아마비 장애아, 국제구호기구 대표로 성장
[해외 입양인 이야기 4] 스티븐 스털링 MAP인터내셔널 대표 인터뷰



▲ MAP 인터내셔널 대표 겸 CEO, 한인 해외입양인 스티븐 스털링 MAP 인터내셔널은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비영리단체로 매년 1400만명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약을 제공하고 있다. ⓒ 정현주

(서울=오마이뉴스) 정현주 기자 = 1960년, 다섯 살 소년이 홀트복지타운에 맡겨졌다. 어린 여동생과 함께였다. 소아마비를 앓던 아들을 치료해보려고 생업도 뒤로 하고 한의원을 전전했던 부모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자 결국 두 아이를 포기했다.

그로부터 5년 뒤, 10살의 그 소년은 동생과 함께 입양되어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의 10년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겼다. 고아이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매일 육체적, 언어적 폭력에 시달렸다.

MAP인터내셔널 대표이자 CEO인 스티븐 스털링의 이야기이다. MAP인터내셔널은 재해지역이나 제 3세계에 의료약품과 구호물자를 공급하는 국제구호기관으로, 세계에서 14번째로 규모가 큰 비영리단체(2017년 경제전문지 포브스 조사)이다.

지난 6월 26일에 받은 스티븐 스털링의 이메일에서 그는 자신을 포기한 부모의 결정에 감사했다.

"저는 낳은 부모님을 찾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요. 왜냐하면 저를 입양하시고, 낳은 자식처럼 길러준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자녀를 갖게 된 뒤에 비로소 생부가 저를 포기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일산 홀트복지원 계단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때 느꼈을 힘겨움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생부모님들을 만나서 그렇게 힘든 결정을 내려 준 데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그 결정 덕분에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더 나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1991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때 친생가족을 찾았다. 생부는 돌아가신 뒤였다.

해외 입양이 선물한 2의 인생

"입양은 저에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미국 땅에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저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코넬대학교, 그 이후에는 노스웨스턴 대학을 거쳐 켈로그대학원에서 MBA(경영대학원) 과정까지 이수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 아동인 자신을 입양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스티븐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코넬대학에 합격,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학업을 모두 마친 후 '존슨&존슨'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브리스틀 마이어 이큅먼트 마케팅 담당이사를 거쳐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식품회사인 콘애그리사 마케팅 담당 부서 부사장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2000년 한국 방문은 그의 삶에 다시 한 번 전환을 가져왔다. 그 해에는 홀트복지회 설립자인 버서 홀트 여사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어려서 머물렀던 홀트복지타운을 다시 찾았고, 그곳에서 장애를 가진 채 입양되지 못하고 나이 들도록 남아있는 옛 친구들을 만났다. 이 만남을 계기로 그는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월드비전, 차일드펀드 같은 국제 구호기구들을 거쳐 2014년 MAP인터내셔널의 대표 겸 CEO가 되었다.

"저는 36년간 500개의 회사와 비영리단체들를 거치며 대표로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년 1400만 명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약을 제공하는 MAP 인터내셔널의 대표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의 이력은 경영인으로서, 봉사자로서 그의 탁월한 능력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입양으로 인해 바뀐 한 사람의 삶이 또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희망을 빛을 던져주며,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해외 입양은 한국 내 '시설 장애 아동'의 첫 번째 선택지


▲ 소년 시절 스티븐 스털링의 가족사진 스티븐의 부모는 한국에서 4명, 캘리포니아에서 2명 모두 6명의 아동을 입양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막내 아들이 태어나는 축복을 내렸다. 소아마비 장애 아동이었던 스티븐은 10살 때 한국일산홀트복지타운에서 미국 알래스카로 입양되었다. ⓒ 정현주

알래스카에 살고 있던 그의 부모는 한국에서 4명, 캘리포니아에서 2명의 자녀들을 입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막내아들이 태어나는 축복을 내려 주었다. 스티븐의 부모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마저도 따뜻한 보살핌을 통해 희망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상처투성이 스티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스티븐의 형제자매들은 품위 있는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한국에 계신 엄마는 나를 태어나게 해주었고, 미국에 계신 엄마는 입양을 통해 나에게 '삶'을 주신 분"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스털링, 장애를 가진 해외입양인으로, 기적 같은 삶의 변화를 일구어낸 당사자로서 그의 '해외 입양'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

그는 입양, 그리고 해외 입양, 그 중에서도 장애 아동의 해외 입양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한국의 시설에 있는 아동들이 국내에서 입양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바로 다음 단계로 해외 입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동이라면 가장 첫 번째 선택지가 '해외 입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 아동이라면 '국내 입양'이 첫 번째 선택지가 되는 것이 좋겠지만, 장애 아동은 해외에서 가정을 찾아야 공평한 기회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스티븐의 확신에 찬 대답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1991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가진 장애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도 별로 없었고, 그의 장애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그러나 그 후로 한국도 많이 변했다.

"2004년부터 2005년 사이, 그리고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제가 한국에 다시 왔을 때에는 눈에 띄게 변화된 모습을 봤습니다. 한국은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지닌 아름다운 국가입니다. 저는 미국인일 수 있어 자랑스럽고, 한국인일 수 있어서도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그가, '장애 아동에게는 국내 입양보다 해외 입양이 첫 번째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매몰되어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의 이메일을 받기 전후로 있었던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는 스티븐의 견해가 타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시위는 작년 10월 신길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다 추락사한 중증장애인 한경덕씨를 추모하고,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6월 14일과 7월 2일 신길역에서 두 차례 시위가 진행되었을 때, 지하철 운행이 지연된 데 대해 몇몇 시민들은 불만과 욕설을 쏟아냈다. "집구석에나 처박혀 있지." "너희는 쓰레기다. 다 치워버려야 한다." (관련기사: 지하철 장애인 장례 행렬..."태풍보다 리프트가 더 무섭다")

이 시위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모습 위에, 스티븐의 인터뷰 내용이 겹쳐졌다. 해외 입양인으로서 인종 차별 경험이 있는지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목발과 버팀대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경험은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21세기,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한국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후진적인 편견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러한 현실은 입양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애 아동의 국내 입양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무른 채 답보상태이다. 2000년 이전에 장애 아동은 99% 이상 해외로 입양되었다. 그 후 조금 더 늘어나 2000년 이후부터 장애아동 국내 입양률은 계속 5%대를 맴돌았다. 그 기간 나머지 95% 이상의 장애 아동은 해외로 입양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입양 특례법 제정 후 해외 입양이 어려워지면서 장애 아동의 해외 입양은 건수는 2015년에는 4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입양되지 못하고 시설에 남는 장애 아동들이 예전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 MAP인터내셔널 대표 스티븐 스털링의 국제 구호 활동 한국에서 소아마비 희생자, 장애 소년에 불과했던 스티븐 스털링에게 해외 입양은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 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켈로그 대학원에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36년간 500개 회사와 비영리 단체를 거치며 대표로 일해왔다. ⓒ 정현주

해외 입양인 스티븐 스털링의 사례는 한국사회에 '장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 공간이 있다. 빛이 전혀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인 로드마스터의 안내를 받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이 <어둠 속의 대화>가 우리나라 서울에도 생겼다.

빛이 없는 칠흑의 공간은 우리에게 '무엇이 장애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공간에서는 평소 시각에 대부분의 감각을 의존했던 사람들이, 청각과 촉각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된다. '장애인'이란 결국 다수자들이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국 이름 이명수, 해외 입양으로 제 2의 인생을 얻은 스티븐 스털링의 이야기는 그러한 진리를 입증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 소아마비에 걸린 제 삶은 매우 우울하고 비참했어요. 저는 그저 한 명의 '소아마비 희생자, 피해자'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입양을 통해 저는 국제 NGO 단체의 회장이자 대표가 되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18년 5월, 그는 MAP 인터내셔널 대표 자격으로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부부에게 글로벌 헬스상을 수여했다. 델타 파이트 뮤지엄에서 열린 행사에서였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부모 잃은 장애인 소년이 미국 대통령 부부에게 상을 수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해외 입양이 어떻게 한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표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스티븐 스털링은 올해 6월, 하버드대에서 '인도주의자 상'을 받았으며, 7월에는 조지아 아시안 타임즈가 뽑은 '가장 영향력있는 아시안 아메리칸 25명'에 포함되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8월 17일, 금 6: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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