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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18년 11월 20일, 화 9:11 am
[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Why are they angry only with wokers? 080818
'나사 조이고 억대 연봉, 쳇'
왜 만만한 노동자에게만 분노할까
[게릴라칼럼] 공장 다시 짓는 미국, 내보내기 여념 없는 한국 ②


(필라델피아=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 의식은 기묘한 것이다. 의식은 스스로를 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는 가려움부터 극심한 고통까지 몸 전체의 감각을 만들어 내지만, 정작 자신이 찔리고 잘리는 뇌수술 때에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의식의 사각지대를 묘사하기에도 적합하다. 우리는 매일 몇 번씩 거울 앞에 서지만, 얼굴을 비춰볼 뿐 의식을 관찰하지는 않는다. 코에 얼룩이 묻으면 '내것 아님'을 곧 알아채지만, 의식의 얼룩 대해서는 언제 묻은 것인지, 어디서 묻어왔는지, 누가 묻히고 갔는지 깨닫지 못한 채 손쉽게 '내 의식'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라는 책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혹시 '내 생각이 내 거지, 그럼 누구 거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의 의식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누군가에게서 가져 왔거나,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심어놓은 것이다.

"내 생각은 어떻게 해서 내 것이 되었을까?"

앞의 책은 같은 질문을 바꿔 다시 묻는다. '철밥통' '귀족노동자' '북한 뺨치는 세습 노조' '강경 노조 때문에 나라 망한다' 따위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혹시 이 말을 듣는 순간 적개심이 불끈 솟아오른다면 그 의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라.

자신이 '철밥통'을 찬 '귀족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가족, 친척, 친구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앞집 영희 아버지나 뒷집 철수 어머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사실'이 우리 인식의 일부가 돼, 급격히 혈압을 올리고 심하게 경음화된 발음을 내뱉게 하는 것일까?

나는 '철밥통' 찬 '귀족'들을 안다. 우리가 열심히 욕하는 노동자들의 직장에 핏줄 하나로 들어와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깨질 일 없는 '초합금밥솥'의 소유자들로,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진짜 귀족'이다(이들은 수행원이 있어서 직접 밥통을 '찰' 필요조차 없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뺨치는 세습 노조'라는 표제를 다는 언론들이, 창업 이래로 기업을 대물림해 온 재벌에 대해서는 함구한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광고비를 챙기니 그렇다 쳐도, 당신은 왜 북한의 기록을 갱신한 재벌들의 '4대 세습'에만은 그토록 마음이 평온한가? 왜 분노는 오직 품팔이 노동자들만을 향할까?

'나사 조이고 억대 연봉'에 '금수저 세습'?


▲ '나사 조이고 억대 연봉'이라고? 이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 편하다는 노동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 걸까. ⓒ unsplash

혹시 '세습 노조'라는 말이 당신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면, 정말 주위에 일자리를 물려준 노조원이 있는지 알아보라. 혹시 사례를 알고 있거나 발견하면 제보해주시기 바란다. 직접 보거나 경험한 일이 없는 확신의 출처는 흔히 신문 기사 제목이나 술자리 등에서 들은 이야기이다(물론 이런 이야기의 근거 또한 대개 신문 기사 제목이다).

보수언론이 '금수저 물리기'니 '현대판 음서제'라고 보도한 단체협약 내용은 죽거나 다쳐서 일할 수 없게 된 노동자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한 것이다. 그것조차 2000년, 즉 지난 세기의 규정으로 이미 사문화한 내용이다. 게다가 일부 사업장에만 해당했으며, 이 규정을 근거로 가족이 취업한 경우도 극소수로, 남편이 죽은 후 부인이 급식소에서 일하게 된 것 같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첫 번째 글 '귀족노조 욕하는 당신이 놀랄 일자리의 비밀'이 나간 뒤, 기사 밑에 '나사나 조이면서 억대 연봉 받아 X먹는 O들'이라는 둥, '4차산업혁명으로 곧 사라질 인간들' 같은 댓글이 붙은 것을 봤다. 정말 자동차가 나사로만 이뤄져 있다고 믿는다면, 왜 직접 만들어 타고 다니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노조가 '나사나 조이면서' 고액의 연봉을 챙긴다고 믿는다면, 그는 왜 그 편한 '금수저'의 대열에 가담하지 않을까?

필자 글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내가 이른바 '4차산업혁명'에 할말이 많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미국 테슬라 자동차는 이 '기술혁명론'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것 같은 로봇팔(범용로봇)이 용접부터 페인트칠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물론 나사도 조인다).


▲ 테슬라 자동차는 자동화로 인한 혁신과 원가절감을 경쟁력으로 내세웠지만, 자동화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생산효율성을 위협하고 있다. 영미언론은 경영자문업체의 보고서를 인용해 '자동화가 테슬라를 죽인다'고 보도했다. ⓒ Business Insider

지난 2월 테슬라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새 모델의 생산 속도가 턱없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신형 차는 이미 2016년 초에 공개하고 예약까지 받아놓은 터였다. 심각한 생산부진으로 테슬라 주가는 25%나 폭락했고,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회사의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이유가 무엇일까? 시장분석업체인 번스타인 리서치는 '로봇이 테슬라를 죽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나친 자동화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작업 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비용 낭비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분석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테슬라는 지난 5월 대대적인 고용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한 주에 생산직 노동자를 400명 씩, 그것도 꽤 오랫동안 충원할 계획이다.

2014년 독일매체 '벨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자동차 회사 다임러에서 일해 온 65세 노동자를 통해 독일의 제조업 환경을 조명하는 기사였다. 프리츠 슈탈은 15세에 입사한 뒤 무려 50년을 페인트(도색)공으로 일했다. 이제 퇴직할 나이가 됐지만, 좀 더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회사에서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줬다.

기자는 그의 손이 얼마나 부드럽고 고운지 '마치 피아니스트 손 같다'고 묘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임무는 도색이 끝난 차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솟아난 돌기가 있으면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한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데, 페인트의 흠을 놓친 채 조립을 마치면 막대한 비용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지금 테슬라가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을 보여준다. 미국 <포브스>는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머스크가 '인력의 중요성이 저평가 되었다'는 발언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 독일 매체 '벨트'가 보도한 65세의 도색공. 페인트 칠의 상태를 눈으로 점검하는 일을 50년간 해 온 그는 전문화된 기술과 노동의 가치를 잘 말해준다. ⓒ 벨트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혐오

앞에서 '나사나 조이면서 고액 연봉' 같은 댓글을 단 사람은 독일의 65세의 도색공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까? '연필로 낙서나 하면서 고액 연봉'? 이는 우리의 인식에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바로 '노동 혐오'다.

"공부를 안하면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한다."

인터넷에 '박명수 어록'으로 돌아다니는 글이다. 누구나 더우면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추우면 따뜻한 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더우면 시원한 곳에서 놀고, 추우면 따뜻한 곳에서 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일해야 하고, 그중 누군가는 더운 곳에서 땀흘리고 추운 곳에서 입김을 불며 일해야 한다. 여름에도 제철소는 가동돼야 하며, 겨울에도 건설과 배선 공사는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노동자를 향한 자세가 감사나 더 나은 보수와 근무조건을 위한 연대여야 할까, 아니면 '열심히 공부해서 저렇게 되지 말자'일까?

나는 '귀족 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고질적 노동 혐오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고졸 생산직 주제에 대졸 사무직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불쾌한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유행시킨 <조선일보> 기자들과 이 말을 무비판적으로 따라쓰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자동차 생산이 당신들이 하는 일보다 덜 중요한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현 정부가 '노동자'라는 말을 공식화하기 전까지, 한국에 공식적으로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근로자'라는 기이한 존재만이 있었을 뿐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라는 이 말은 독재정치가 물리적 억압뿐 아니라 기호학적 기만의 과정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 노동 천시와 혐오는 한국사회 곳곳에 배어있다. 한 개그맨의 노골적인 노동혐오 발언은 재치를 갖춘 명언으로 환영받았고, 공영방송은 이것을 '박명수 어록'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해피투게더'라는 이름이 아이러니해 보인다. ⓒ KBS

오직 열심히 일하기만 해서는 '근로자'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군 말없이' 일해야 한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망하는 데도 '고액 연봉'을 요구하는 게 문제라고? 같은 기간, 즉 '회사가 망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 연봉을 챙기는 임원들의 돈은 휴지로 만든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노동은 무시받는 정도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경멸의 대상이었다. 집에서는 '저렇게 안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고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지각하거나 성적이 나쁘면 청소를 시키거나 화단의 풀을 뽑는 일을 시키곤 했다. 우리에게 노동은 고귀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징벌이고, 수치이고, 피해야 할 미래의 악몽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한심한 착각 속에서, 우리는 노동이 만들어 준 일자리를 스스로 차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다. 치킨집이 생긴다고 주위에 공장이 들어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장이 들어서면 치킨집, 중국집, 운송회사, 은행이 생겨난다. 노동자가 있어야 관리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덕분에 우리는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당신이 시원하고 따뜻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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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8년 8월 09일, 목 8: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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