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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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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의 평양 예배, 민족의 부활 가져온 날"
[문익환의 사람과 물건 2]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


(서울=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거목인 '늦봄'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문익환 목사와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가 남긴 물건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민족과 민중을 위해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리고, '촛불 혁명' 이후 새로운 체제와 다시 시작된 '남북대화 국면'을 맞아 올바른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 1987년 12월,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면서 성명서 발표하는 문익환 민통련 의장 ⓒ 민청련동지회


▲ 평양 봉수교회 앞에서 문익환 목사의 모습. ⓒ 사단법인 통일의 집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의장을 맡은 문익환 목사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민통련에는 민주주의의 실현, 민중생활의 향상 및 민중운동의 발전을 지향하며 자주적 민족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 민주운동 27 단체가 함께 했다. ⓒ 유성호

영화 <1987>에서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김정남(설경구 분)은 한 절에 피신해 스님으로 변장까지 했다가, 은신처가 발각되자 교회로 도망쳤다. 가까스로 경찰의 감시망을 피한 그는 '박종철 고문 사건 수사가 조작됐다'는 이부영의 편지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쪽에 전달한다.

일부 픽션이지만 이 장면은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종교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천주교는 독재정권도 부담스러워했던 강력한 민주화 세력이었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된 것만 보더라도, 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천주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제', 즉 신부만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것은 아니었다. 윤순녀(수산나) 평화의샘 대표는 1973년부터 평신도 단체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소속으로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AFI의 회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운동과 봉사 등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또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윤 대표가 입회할 때만 해도 '독신'이 회원의 조건이었기에, '수녀'라는 오해도 받았다.

그는 65년에 가톨릭노동청년회(JOC)에 들어가 회장까지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73년부터는 3년간 노동청 산업 카운슬러로서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동자의 권리들을 가르치다가, JOC 활동과 노동자 편에 서서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해고를 당한다.

이후 AFI 활동을 위해 해외에 나갔다가, 80년도부터는 인천 부평공단 등에서 수녀들과 함께 살며 '노동사목' 활동을 시작한다. 84년도에는 가톨릭노동사목연구소(현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를 세웠고, 85년도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이 설립됐을 때는 서울민통련의 부의장을 맡아 통일운동에도 관여했다.

90년대 이후에는 여성 문제에 주목했다.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를 설립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여성운동에 헌신해 왔다. 98년에 천주교 성폭력 상담소, 99년 쉼터인 평화의샘을 만들었고, 지금은 청소년 지원시설과 심리상담센터를 더해서 평화의샘을 운영하고 있다.

윤 대표의 이력 속에서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부분은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 만으로는 설명하기에 무리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으로 재야인사들을 도와준 공이 크기 때문이다. 수배당한 이들의 피신을 돕고, 병원에 입원하면 뒷바라지를 했다. 이는 아쉽게도 민주화 운동사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봄이 한창이던 어느날 AFI 회원들이 모여 살아가는 서울 합정동의 전진상 회관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문익환 목사를 회고하고 기록하고자 만났지만, 드러나지 않은 그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갔다. 윤 대표는 박노해 시인 피신을 도와준 일을 언급하며 "좋은 세상 됐으니까 이런 말 하는 거지"라며 웃기도 했다.

문 목사와 윤 대표의 공통점은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로 활동을 하면서 "어디에든 갔고, 어디에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문 목사처럼 그 역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기에, 스스로 "80년대에는 길거리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두 사람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종교적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사회 운동을 시작해, '하루 걸러 만나는' 동지였다. 나이 차와 종교의 다름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예수님' 같았던 목사님"


▲ 윤순녀 평화의 샘 대표가 국제가톨릭형제회 전진상 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문 목사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 문익환 목사님과 언제 처음 만나셨어요?
"당시 민통련 살림을 맡은 사람이 이창복 선생님(재야 인사)인데, 나에게 갑자기 '수산나(세례명)씨 이름을 도용했어'라고 하는 거예요. 당시 장충동 노동사목 건물 옆에 분도회관 4층에 민통련 사무실을 계약했대요. 건물 임대를 자신들이 하면 경찰이 쫓아온대요. 그래서 내 이름으로 건물을 임대하면서 민통련하고 인연이 이어지게 된 거예요. 그때 그분들 밥을 정말 많이 해드렸어."

- 밥을 어떻게 대접하신 거예요?
"우리는 마당이 있어서 거기서 깻잎 같은 것도 기르면서 직접 밥을 해 먹었어요. 처음에는 민통련 분들이 한 분 두 분 정도 오더니, 나중에는 10명 이상 오는 거야. 사실 그분들은 그때 어디 식당을 가자니 돈도 없으셨을 거예요. 그때부터 '이분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줘야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마당에다가 평상 만들어 놓고는 된장국 끓여서 주면 맛있다고 먹고 가셨어요. 그러다 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졌고.

처음에는 민통련 모임에 참석할 이유는 없었는데, 나보고 중앙위원회에 오래요. 그때부터 민통련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다 보니까 목사님하고 하루건너 만나게 됐지."

- 당시 목사님 인상은 어땠는지?
"목사님 소탈하셔라. 당신이 목사라는 그런 게 없어요. 목사님이 감옥에서 '파스요법'을 배우셨거든요. 만나면 손을 잡아서 눌러요. '아야' 소리가 나잖아, 그러면 '비장이 나쁘다, 어디가 나쁘다' 이러면서 파스를 붙여요. 목사님 만나면 파스 안 붙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렇게 격의가 없으셨죠. 예수님이 이러셨겠구나 싶더라고요."

- 예수님이요?
"군중이 몰려 있으면 그 속에서 예수님처럼 손 붙잡고 만져주시면서 파스 붙여주시고 그랬어요, 아픈 사람들한테 파스 붙여주시면서 정치 이야기 안 하잖아요.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당신이 세세하게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주셨던 거예요. 아픈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돌봐주다가 또 싸우러 나가고... 그럴 때는 진짜 예수님 같더라고요."

- 시위도 같이 많이 하셨죠?
"70 노구를 이끌고 가장 앞에 서셨어요. 무슨 일만 있으면 갔고요. 경찰을 뚫고 나가면서 두드려 맞기도 했고요. 그런데 잡혀가진 않았거든. 그러니까 같이 시위하던 사람들이 잡혀가면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그런 일을 엄청 하고 다니셨어."

"통일 대신 평화, 두 체제로 같이 가면 된다"

윤씨는 문 목사의 숨은 조력자다. 문 목사는 198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며 (민통련은 당시 김대중 후보를 비판적 지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단식을 한다고 했다. 87년도에 민통련의 실무자였던 김부겸(현 행자부장관), 임채정(전 국회의원) 등이 "천주교의 장소 중에서 목사님이 있을 장소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고 윤씨는 혜화동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단식 공간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문 목사는 15일 동안 단식을 했다.

- 목사님이 천주교 수도원에 머문 건가요?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어요. 신학생이 나오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세상에 우리 집에 예수님이 오신다는데 얼마나 감사해요'라고 하는 거예요. 오케이 된 거죠. 단식하는데 물하고 소금 이런 거는 수사님들이 다 준비했어요.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목사가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냐고 그러기도 했죠."

- 그렇게 자주 뵙던 문 목사님이 갑자기 북한으로 넘어가셨잖아요.
"감옥 들어가는 건 생각도 못하고 너무 좋아서 박 장로님께 전화 걸었던 생각이 나요. 평양 봉수교회의 부활절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하셨잖아요. 그걸 보고 '우리 민족의 부활을 가지고 오셨다'고 전화에 대고 얼마나 기쁘게 외쳤는지 몰라요."


▲ 윤순녀 평화의 샘 대표가 국제가톨릭형제회 전진상 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에 대해 평화번영에 역사가 쓰여지는 출발점이라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 요즘 남북한의 분위기가 좋잖아요. 감회가 남다르시죠?
"남북회담 하는 걸 보니까 눈물이 나고 기가 막혀요. 너무 감격스러워서 문익환 목사님을 많이 떠올리게 돼요. 목사님이 몸 바쳐서 하시던 일들이잖아요. 목사님뿐만 아니라 목사님의 어머니도 수해 났을 때 북한 물자 내려오고(1984년) 그런걸 보면서 '마음이 하나로 이어졌으니까 통일은 다 됐어'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손 잡고 북쪽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문 목사님이 철조망을 훌쩍 넘는 모습을 그린 '하나됨을 위하여'가 생각났어요.
"그러게요. 북한의 지도자가 통 크게 문을 여니까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을... 그날(1차 정상회담) 보니까 완전히 통일 다 된 것 같아. 그런데 '통일'이라는 단어 쓸 필요가 없어요. 잘못 이야기하면 '흡수통일'이니 '고려연방제통일'이니 논의가 복잡해져요. 평화롭게 살고 싶잖아요. 평화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 평화만? 굳이 통일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일단 '통일'이라는 말이 나오면 싸움을 시작해요. 두 체제 유지하고 평화롭게 왕래하면 되죠. 지금 이산가족들 연령이 있으셔서 빨리 왔다가지 않으면 안 돼요.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서 서로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죠. 이미 북한은 90년대부터 장마당이 시작되고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습니다. 북한 나름대로 빠른 시일 안에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황석영 작가님도 비슷한 이야기 하시던데요. (관련기사: "통일의 '통'자도 쓰지 말아야"... 황석영이 생각하는 문익환)
"아 그래요? 맞아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줘야 합니다. 통일이라는 이름으로는 안 돼요. 요원한 일이죠.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다양성이 민주화의 꽃이잖아요. 그 다양성을 조화시키면 됩니다. 평화 좋잖아요. 이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대신 '평화'가 돼야 합니다. 태극기가 빨간색 파란색으로 나누어져 있잖아요. '우리는 운명적으로 두 체제가 같이 가게 되어있나 보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 문 목사님의 '통일론'이 평화체제로 수렴될 수 있다고 보시는 거죠?
"네. 목사님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는 '평화 통일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였고, 지금은 아니죠."

-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목사님의 뜻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노인들의 생각은 못 고쳐요. 젊은 세대가 중요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화교육을 해야 해요. 이제 (박물관으로 개관한) 통일의 집에서 목사님에 대해 알려주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이디어가 많잖아요. 그 생각을 받아서 재미있는 방식으로 많이 해나가면 되겠죠."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7월 07일, 토 6: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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