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18년 7월 23일, 월 3:35 a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062718
야당 총재에서 여당 대표최고위원으로
[김영삼 평전 81] 자신의 정치신조 버린 행보



▲ 90년 1월 3당합당 반대를 외친 초선의원 노무현은 '고립무원'의 호남 민중에게 '동지'로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노태우는 3당통합 선언이 있기 며칠 전 연두기자회견에서 정계개편과 관련하여 인위적인 정계개편이나 연합은 있을 수 없다 고 밝힌 바 있어 갑작스런 1ㆍ22합당선언은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88년 4ㆍ26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로 출범한 지 2년여 만에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여대야소 로 탈바꿈시킨 3당통합은 많은 곡절을 겪으면서 90년대 정국의 돌연변수로 등장했다.

3당통합을 선언한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은 합당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민주당은 1월 30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합당을 결의, 합당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수임기구 결정 등 모든 권한을 김영삼 총재에게 일임키로 했다. 민주당은 이로써 창당한 지 2년 9개월 만에 사실상 간판을 내렸다.

민정당은 2월 1일 임시전당대회를 열고 합당을 위한 당의 해체를 결의, 수임기관으로 당집행위원회로 결정하여 81년 1월 창당한 이래 9년 1개월 만에 사실상 해체되었다. 공화당은 2월5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합당을 위한 당의 해체를 결의하고 수임기관으로 당무회의를 결정했다.

신당창당을 위한 3당의 15인통합추진위원회는 1월 24일 첫 회의에서 민자당통합추진위원회 를 구성하고 통합에 박차를 가해 2월 9일 민주자유당(민자당) 합당대회를 열었다.

민자당은 총재 노태우, 대표최고위원 김영삼, 최고위원 김종필로 선정하고,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자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현실은 우리의 정치가 창조적인 개혁으로 새로워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청신한 국민정당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 고 선언했다.

민자당의 창당으로 총의석수가 221석(민정 127, 민주 59, 공화 35석)을 확보, 개헌선인 원내 3분의 2의석 이상이 되었다. 여소야대 원내 분포가 거대한 여당과 왜소한 야당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3당통합에는 민주당 소속의 이기택ㆍ노무현ㆍ김정길ㆍ김광일 의원 등이 불참을 선언했다.

3당합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국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었던 노대통령의 입장과, 87년 대선패배, 제13대 총선에서 제2야당으로 전락한 김영삼의 궁색한 입지, 군소정당의 형편을 면치 못하게 된 김종필의 궁지가 이같은 신당창당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초 3당합당이 추진되면서 이들은 내각제개헌에 합의하여 합의각서 까지 만들어 서명했던 것이 나중에 밝혀져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격적인 3당통합과 공룡 같은 여당의 등장에 DJ와 평민당은 거센 반발을 보였다. 평민당은 1월 23일 의원총회 및 당무지도합동회의 연석회의에서 노대통령의 위약과 두 야당총재의 정치적 변신을 신랄히 규탄했다.

3당통합은 총선민의를 저버린 정치적 야합행위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전원이 사퇴하고 총선에서 다시 국민의사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평민당은 내각제 개헌을 반대하기 위한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일 것을 결의하는 등 강경한 대여투쟁에 나섰다.

한편 민자당 불참을 선언한 민주당의원 5명과 무소속의 박찬종·이철 의원 및 87년 대통령후보 단일화 운동에 앞장섰던 홍사덕ㆍ장기욱ㆍ조순형 전 의원 등은 새 야당 창당을 선언하고 창당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또 진보적 대중정당 결성을 위한 준비모임 은 3당합당에 대한 성명을 발표, 3당합당을 통한 신당 창당은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고 당리당략만을 위해 군사파쇼세력조차 보수세력으로 위장시켜 정치적 수명연장을 노리는 파렴치한 정치 쿠데타 라고 비난했다.

단시일 내에 거대여당으로 나타난 민자당은 한지붕 세가족 이라는 세평대로 사사건건 계파별로 집안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특히 내각제 합의각서 유출사건을 계기로 심각한 대립을 보였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다수의 힘으로 변칙과 날치기를 저질러 여야의 물리적 대치상태를 가져왔다.

노태우는 당초 DJ에게 통합을 제의했다. 군부세력의 핵심인 자신과 민주화세력의 중심인 DJ가 함께하면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명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DJ는 국민이 선택한 결과로 구성된 여소야대를 인위적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당초 3당합당의 아이디어 는 미정보기관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3당합당 아이디어의 시원이 어디였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시원은 서울의 한 호텔에 모인 세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 3인은 김 아무개 예비역 장군, 차 아무개 목사, 그리고 전 중앙정보부 감찰과장 김 아무개다. 이들은 모두 각각 워싱턴 정계와 손을 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3당합당 아이디어는 어떤 라인을 타고 워싱턴 정보기관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다시 청와대로 들어간 것이다. 김 예비역 장군은 노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였고, 차 목사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대미창구의 하나였으며, 중앙정보부 출신 김씨는 친CIA 거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직계로 정치정보에 밝았다.(주석 2)

김영삼은 3당합당의 명분을 신사고를 통한 구국의 결단 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정의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온 내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쿠데타를 한 세력과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평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나는 쿠데타정권의 재등장을 막고 이 땅에 영원한 문민정부를 세우기 위해, 제3의 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것만이 우리 국민을 현재와 미래의 민주주의 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한 가시밭길일지라도 나는 정의의 길을 갈 것이다.
(주석 3)

<주석>
2. 오연호, <우리 현대사의 숨은 그림 찾기>, 245~246쪽, <월간 말>, 1994.
3. 김영삼, 앞의 책, 241쪽.
 
 

올려짐: 2018년 6월 30일, 토 6:30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koramtour.net
http://www.geo10.com/krus/fl/g/0401/954/orientalmart.htm
www.smiledentalfl.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thefountainsalonandspa.com
www.orlandotour.com
www.miju24.com/market_info/12701
www.ohmynews.com
www.saegilchurch.net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www.okja.org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