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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A boy who lost his parents returned to Korea as an astronaut 062018
부모 잃은 소년, 우주공학자가 되어 한국땅 밟다
[해외입양인 인터뷰] 한국입양홍보회에서 활동하는 스티브 모리슨씨



▲ 일산 홀트 복지원에서 원우들과 함께, 정중앙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소년이 스티브 모리슨 입양되기 전 6세~14세까지 스티브 모리슨은 홀트 부부가 세운 일산의 홀트복지원에서 자랐다. 나중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 입양되지 못한 채 이곳에 남았던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스티브는 수없이 물었다. "왜 나는 선택받았고, 이 친구들은 선택받지 못했나?" ⓒ 정현주

(서울=오마이뉴스) 정현주 기자 = 1970년 미국으로 입양된 스티브 모리슨은 현재 미우주항공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1999년 한국입양홍보회(MPAK)를 설립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러 모로 특별한 그의 이력을 접했을 때,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편안한 삶을 누려도 될 그가 굳이 한국 아동들을 위해 입양홍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게 '입양'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6일까지 이메일을 통해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확신에 찬 대답을 보내왔다.

"'입양은 기회'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회이지요. 새 아버지 어머니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다른 아이들처럼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 미래의 성공과 실패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입양은 아동에게 기회를 낳는 일입니다."

스티브(한국 이름 최석춘)는 14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묵호. 원가정과는 다섯 살 때 헤어졌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학대로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얼마 후 아버지도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그는 동생(최대천)과 거리를 전전했다.

낮에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고, 밤에는 묵호역 굴다리 밑에서 선잠을 잤다. 그때 굴다리 밑에서 삶은 게를 파시는 아주머니께서 동생을 키우겠다고 데려갔다. 동생만 데려간 이유는 그가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로 거리를 헤매던 그는 강원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아픈 다리를 수술할 수 있다는 소식에 서울에 있는 홀트복지원으로 옮겨진다. 다리 때문에 동생과 헤어졌지만 그 다리 때문에 홀트와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스티브 나이 6살 때였다.

수술을 받고 많이 좋아졌지만, 장애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홀트복지원은 그의 삶에 수술보다 더 큰 의미를 던져주게 되었다.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큰 감동을 받는다.

홀트 부부는 누구인가? 1955년 이미 6명의 자녀를 둔 홀트 부부는 한국전쟁 고아들의 참상을 담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것을 계기로 한국 고아 8명을 입양했다. 다음해 3월 아예 한국에 건너온 부부는 서울 세종로에 사무실을 얻어 '홀트씨(氏) 양자회'를 만들었다. 64년에는 사재를 털어 장애인 복지시설인 홀트 일산복지타운을 건립했다. 바로 이곳으로 6살 스티브가 수술을 위해 옮겨졌던 것이다.

남편 해리(당시 59세)가 심장마비로 숨지자 홀트 여사는 소외된 사람을 위한 봉사에 더욱 전념해 모두 7만여 명을 외국 가정에, 1만8000여 명을 국내 가정에 입양시켰다.2000년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홀트 여사는 미국에 있던 집과 토지 모두 한국의 홀트 재단에 기부했다.

14세 때 부모 없는 소년으로 한국을 떠났던 스티브가 부모를 만나 성장하고, 27세의 우주공학자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을 때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어려서 자랐던 홀트 일산 복지타운에서 버서 홀트 여사를 만나며 큰 감동을 받았다. 또 홀트 할아버지 무덤을 찾았을 때의 감격은 헤아릴 길이 없었다. 무덤 앞에서 그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감사와 감동과 존경과 사랑...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동안 쌓아두었던 마음이 눈물이 되어 봇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또 그곳에서 아직도 입양가지 못한 채 성년이 된 옛 친구들을 만났다. 그나마 정신적으로 장애가 없는 친구들은 사회에 나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18세에 200만 원(당시)만 받고 강제 퇴소를 당해 대부분 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티브는 그들에 대해 큰 아픔과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수없이 물었다.

"왜 나는 선택받았고 이 친구들은 선택받지 못했나?"

홀트 부부에게서 받은 사랑, 그리고 입양되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은 훗날 그가 한국입양홍보회를 설립해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 부모님과 함께 한 스티브 모리슨 성장기 한때 정체성 혼란 을 겪던 스티브 모리슨에게 아버지 존 모리슨은 “네가 미국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 사람이 된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네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 정현주

중요한 것은 미국인이나 한국인이 아닌 '인간'이 되는 것

그렇다면 14살이라는 적잖은 나이의 모리슨을 입양했고, 그에게 '입양은 기회'라는 생각을 갖게 한 그의 부모는 어떤 분들이었을까? 부모님과 함께 한 청소년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가정이 그에게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면, 입양가정은 그것을 치유해 주는 보금자리였다. 그동안 스티브는 늘 가슴 한편에 낳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존 모리슨의 사랑은 그 원망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렇게 스티브는 비로소 낳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다.

1남 2녀의 자녀가 있었음에도 한국에서 두 명의 자녀를 입양한 모리슨 부부의 가정은 늘 사랑이 넘쳤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중심에 있었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께서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과 존경은 스티브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아버지를 보며 그런 아빠, 남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고, 자신도 입양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모두 이뤘다.

그에게는 특별한 인종 차별의 경험이 없다. 철없던 시절에 몇몇 아이들이 동양인이라고 놀린 적도 있지만,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도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고민은 있었다. 그는 늘 마음 속에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한국 사람인가 미국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몸은 한국인이지만 생각과 사고방식은 미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이를 눈치 챈 아버지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미국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 사람이 된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네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 한 마디는 그의 고민을 깨끗이 풀어 주었다.

성인이 된 스티브에게 생부모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그는 이미 원가정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모를 찾고자 하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방송을 통해 낳아준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저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이다. 그리나 아직도 동생 대천이가 그립다. 동생 대천이를 다시 만나는 것은 그의 삶에 남아 있는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최대한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사자로서 해외입양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해외입양을 바라보는 한국 내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당사자 해외 입양인들이 해외 입양을 나쁘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의 말을 쏟아냈다.

"해외입양을 반대하는 입양인들은 어느 한쪽만 보고 다른 한쪽을 보지 못한다. 만약 그들이 입양이 되지 않았더라면 시설에서 자라야하며 18세에 퇴소해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 한쪽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저 다른 한쪽만 주장하며 비판한다. 그들은 말한다.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에서 뿌리를 뽑아 낯선 나라에 이식하며, 인종차별을 겪게 하냐고. 자신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박탈하며 자신들을 해외로 팔았냐?'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입양이 되지 않았더라면 한국에서의 삶이 더 나았으리라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해외입양인의 약 80%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한다. 시설아동들은 5%밖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해외에 입양되어 교수가 된 뒤 해외입양을 비판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렇다면 그는 무조건 '입양'만이 답이라고 외치는 걸까?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해외입양 역시 국내입양처럼 아동에게 기회를 낳는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든 국내든 아동에게는 가정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입양되지 못하고 시설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아동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 중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죠. 그래도 가정에서 자랄 수조차 없는 아이들에게는 '시설'도 필요한 곳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최대한 가정에서 자라야합니다. 가정에서 자라는 것은 '베품'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아동의 '권리'입니다. 원가정에서 기를 수 없다면 국내 입양, 그것도 안 되면 해외 입양을 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 해외 입양을 중단해야 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시설 아동이 원가정으로 모두 복귀하고 국내 입양 활성화를 통해 아이들이 모두 가정에서 자랄 수 있을 때입니다. 그때라면 왜 해외 입양이 필요하겠습니까? 저는 이를 위해 한국 입양홍보회에서 지난 19년간 노력해왔습니다."

그는 입양을 통해 너무나도 소중한 성장을 이루었고,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나에게는 일생을 살면서 정말로 잘한 몇 가지 결정이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두 번째로 좋은 결정은 너의 어머니를 만난 것이며, 세 번째로 좋은 결정은 너를 우리 가정에 데려온 것이었다."

스티브의 아버지 존 모리슨이 스티브에게 들려줬던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입양 가족을 이해할 수 있다. 덧붙여 입양 가족을 넘어 '가족'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진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스티브 모리슨은 2005년 서울명예시민증을, 2007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3년 미국에서 Angels in Adoption by Congressional Coalition of Adoption Institute, DC, USA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스티브 모리슨이 미국에 있는 관계로 이메일로 진행되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6월 25일, 월 4: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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