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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053018
5공, KAL기사건·천문학적 자금살포
[김영삼 평전 77] 13대 대선 패배, 총선 제3당 전락



▲ 기억나십니까? 1987년 12월 13대 대선 포스터(출처: 중앙선관위). ⓒ김대중도서관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일 때인 11월 28일 KAL858기 폭파사건이 일어났다.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방콕을 향해가던 대한항공 보잉 707기가 버마상공에서 폭발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한 참사였다.

정부는 수사결과 테러범은 북한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라고 밝혔으며, 투표 전날에 김현희(26)를 한국으로 압송하면서 수구신문과 관영 방송이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공안분위기가 조성되고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4월 김현희를 특사로 풀어주고 안기부 촉탁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특혜를 주었다. 이 사건은 많은 의문이 따르고, 무엇보다 투표 전날 굳이 테러범을 데려온 데서 정치적 배경에 의혹이 쌓였다.

노태우 진영은 공안사건과 함께 기업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선거자금을 모아 살포했다. 제13대 대선은 야권후보 난립, 수구언론의 편파보도, 지역갈등, 야당후보에 대한 색깔론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정부·여당의 천문학적인 자금살포도 큰 작용을 했다.

전두환이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대선자금 마련이었다. 돈을 거둬들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한 관련 인사의 증언이다.

"복잡할 게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30대 기업 총수들을 따로따로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하면서 각각 50억 원씩을 걷었지요. 그것만 해도 1천5백억 원 아닙니까. 그 밖에도 31대에서 50대까지는 30억 원씩을 걷었으니 대선자금은 간단하게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대선자금으로 걷은 돈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후일(92년 1월) 정주영이 폭로했듯이, 전두환은 재벌들로부터 매년 두 차례씩 정치자금을 수금했기 때문이다.

1년에 두 차례씩 정치자금을 냈다. 현정권에는 추석과 연말에 20억~30억 원씩 주었으나 육감으로 적다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 한 차례 50억 원을 낸 뒤에 마지막에 1백억 원으로 올렸다.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는 "대선 직전 전씨 부부가 노 후보의 연희동 자택을 방문, 대통령 선거자금으로 쓰라며 기업인들로부터 모금한 1천5백억 원을 건네줬다 "고 증언했다. (주석 4)

민정당은 전두환이 마련해 준 자금 이외에도 엄청난 자금을 동원하고 선거유세장에 국영기업체 임직원과 통반장, 공무원ㆍ교사를 동원하고 군일각에서는 공개투표를 자행하는 등 총체적인 부정ㆍ관권선거였으나 모든 것이 야권분열 의 이슈에 파묻혀버렸다.

선거결과 유권자수 2,587만 3천여 명 중 2,306만 6천여 명이 투표하여, 89.2%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이중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유효투표의 36.6%인 828만 2,738표를 얻었고, YS는 28%인 633만 7천여 표, DJ는 27%인 611만 3천여 표, JP는 8.1%인 182만 3천여 표를 얻어 노태우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두 김씨가 유효투표의 55%를 얻고도 노태우가 얻은 36.6%에 눌려 정권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야권분열이 군정연장의 기회를 마련해 준 셈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나 개표과정에서 많은 부정과 판권개입이 자행되었다. 특히 민정당측이 의도적으로 조장한 지역감정의 격화와 금품살포·흑색선전 등이 선거전을 과열시키고 부정으로 얼룩지게 했다. 야당후보들의 표를 깎는 흑색선전도 선거막바지에 자행되었다. 12월 15일 김대중 후보 민주대연정에 참여할 듯 이라는 <통일민주당보>의 호외 형식으로 제작된 정체불명의 유인물이 호남지방에 뿌려지기도 하는 등 타락상이 계속되었다.

13대 대통령선거의 가장 대표적인 부정은 구로구청사건 으로 이름붙여진 투표함 반출사건이다. 무장경찰 6~8명이 지키고 있던 1톤트럭에 투표함 1개, 부재자투표 인명부 1박스, 인주ㆍ면장갑 등이 식빵귤ㆍ과자의 박스 밑에 감춰져 있던 것을 시민의 제보로 평민당원들이 적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시민ㆍ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면서 구로구청으로 몰려들었고, 구청 3층 선관위사무실에서 또 다시 투표함 1개, 붓두껑 60개, 새 인주 70개, 백지투표용지 1,506매 등이 적발되었다. 붓두껑에서 인주가 선명하게 묻어나와 방금 사용한 흔적이 뚜렷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5천여 명으로 불어난 시민ㆍ학생ㆍ야당원들의 항의농성이 계속되자 새벽 6시경 조종석 시경국장이 지휘하는 4천여 명의 무장경찰이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면서 진압작전을 개시하여 시위자들의 처절한 저항으로 많은 중경사가 발생했다. 이날 경찰은 적반하장으로 총 1,034명을 대통령선거위반, 집시법위반혐의 등으로 연행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김승훈 신부)은 88년 2월 16일 대통련선거와 관련, 성명을 발표 “개표과정의 컴퓨터 조작설이 사실이라는 증거를 포착했다”면서 “대통령선거가 관권개입과 국민매수, 강제동원 등 각종 선거부정으로 원천적인 무효임을 확신한다”고 주장했고, 한동안 ‘컴퓨터 조작설’이 세간에 떠돌았다.

13대 대통령선거는 민주시민과 학생들이 피로써 쟁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 김씨의 전적분열로 어부지리를 군사정권에 헌납한 꼴이 되어, 두 김씨와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은 내내 국민의 차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진정한 민주문민정부의 실현은 다시 늦추어 질 수밖에 없었다.

YS는 선거패배 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사과성명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룩하지 못한 부덕의 소치에 대하여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으며, 깊이 자성하고 사과드리는 바입니다”라고 했다.

YS는 당직자회의에서 선거 자체를 ‘원천적인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내가 지금까지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을 타도하고 말 것”이라며 정권 타도투쟁을 선언했다. 그는 또한 “선거 혁명을 통한 정권교체가 나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지금 이 정권은 타도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선거유세를 통해 이 정권이 독재정권의 연장을 꾀할 때 제2의 이승만, 제2의 마르코스가 될 것이라고 계속 충고했다. 이것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내 목숨이 두렵지 않다.” (주석 5)고 선언했다.

<주석>
4)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1980년대편 3권>, 215~216쪽, 인물과사상사, 2003.
5) <김영삼 회고록(3)>, 133쪽.
 
 

올려짐: 2018년 6월 02일, 토 5: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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