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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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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쌍의 강제 합동결혼식... 박정희의 불온한 '생각'
[리뷰] '대한청소년개척단' 생존자들 목소리 담은 다큐 영화 <서산개척단>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돈을 펑펑 썼다. 박 정권의 홍보와 달리, 그는 절대로 검소하고 절제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돈이 많이 드는 술자리에서 최후를 마쳤으며 그런 술자리가 거의 일상화돼 있었다는 사실은 박정희의 씀씀이를 잘 드러낸다.

그는 이성과 술뿐 아니라 조직관리에도 돈을 쏟아 부었다. 일례로, 1973년에는 전두환·손영길에게 진급 축하선물로 크라운 4기통 세단 승용차와 금일봉을 하사했다. 이런 식으로 조직을 키우고 독재를 강화했다. 최태민의 양자이자 박근혜의 재산관리인이었던 조순제의 활동에 관해 그 아들 조용래가 진술한 내용을 담은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에 이런 대목이 있다.

"박정희 사후에 조순제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박정희가 남긴 돈을 최태민 일가 쪽으로 옮기는 데 관여한 것이다. 금덩어리도 나왔고 달러와 채권 뭉치도 나왔다. 외국 은행의 비밀 계좌에서도 돈이 나왔다."

박정희는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모았을까? 1972년 10월 유신 전에는 청와대·중앙정보부·공화당 등을 통해 중점적으로 모으고, 유신 후에는 재벌한테서 집중적으로 거뒀다. 이것들 외에 또 다른 방식 중 하나는 노예노동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현대판 노예노동'이란 표현은 부족하다. 문자 그대로 노예노동이다.

강제노동에 동원... 토굴에서 잠 자고 간장만으로 식사


▲ 다큐 영화 <서산개척단>. ⓒ 훈프로

지난 18일 시사회를 열고, 오는 24일 개봉하는 다큐 영화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시대의 노예노동에서 나타난 인권 착취와 더불어 박 정권의 정치자금 마련 노하우를 소개했다. 영화를 만든 이는 이조훈 감독이다.

서산개척단은 편의상의 명칭이고, 정식 명칭은 '대한청소년개척단'이다. 박 정권은 부랑아 및 윤락녀 교화란 미명 하에 무고한 이들을 충남 서산에 가둬놓고 간척지 개발사업에 강제 투입했다. 공식적으로는, 노동을 통해 이들을 교화하겠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실상은 강제노동이고 노예노동이었다. 대략 1700여 명이 동원됐다. <서산개척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영철(당시 20세)씨처럼, 대부분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자원한 하용복(당시 20세)씨 같은 이들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땅을 파고 지붕을 대충 만든 토굴에서 잠을 자야 했고, 반찬도 없이 간장만으로 식사해야 할 때도 많았다. 함부로 말도 못했다. 질문을 했다가는 말도 못할 구타를 당했다. 그러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


▲ <서산개척단> 스틸컷. ⓒ 훈프로

그런 참혹한 상황에서 '희망'이 하나 제시됐다. 정영철씨의 증언에 나타나는 것처럼 '간척지를 만들면 개인당 3천 평을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약속이 있다 해도, 당장에 고통이 심하면 탈출이나 저항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비해 박 정권은 깡패 출신들을 감시원으로 활용했다. 깡패 출신들이 몽둥이 들고 감시하는 속에서 노예노동이 이뤄진 것이다. 올해 1월 정영철씨 외 10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출한 탄원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위와 같은 처사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기도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집단 구타와 그로 인한 죽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집단 폭행과 강제노역으로 죽어간 동료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았고, 저희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묵묵히 강제노역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오직 생존을 위해 버티면서 곡괭이로 땅을 파서 손수 집터를 닦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 같은 노예노동의 본질은 대가가 없다는 점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3천 평을 받을 거라는 희망을 강제로 주입받았다. 하지만, 돈을 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노동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간척이 완료된 뒤 그 땅은 국유지가 됐고, 이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정부는 1975년경 이후 저희들에게 그 어떠한 통지 또는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저희들이 피땀 흘려 개간한 토지를 쥐도 새도 모르게 국유지로 몰수하였고, 저희들은 국유지 몰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직 간척지 개간사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공짜로 일 시킨 것도 모자라... 돈 내놓으란 국가

국가의 죄악은 그치지 않았다. 공짜로 일을 시켜놓고는, 나중엔 손까지 내밀었다.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국가는 저희들의 항변을 전혀 듣지 않았고, 오히려 저희들에게 간척지 무단점유를 이유로 임대료를 부과하거나 시세보다 비싸게 20년 상환 방식의 국유지 매입을 권유하는 등 저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저희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습니다. ······ 온갖 억압과 학대를 견디면서 단 한 푼의 노임도 받지 않고 약 20년 동안 폐염전에 불과한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한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이런 노예노동이 여기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전국적 현상이었다. 시사회장에서 기자간담회용으로 배포된 자료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시 보건사회부가 공식 집계한 '부랑아 단속' 인원수는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무려 25만 5천여 명에 달한다. 납치·감금된 이들은 전국의 간척 사업장으로 보내져 강제노역과 끔찍한 폭행에 시달렸다. 1970년도 자조근로사업 개선안에는 국가가 시행한 전국의 간척 사업장 수가 140여 곳으로 기록돼 있다."


▲ 강제동원 피해자 정영철씨. <서산개척단> 스틸컷. ⓒ 훈프로

앞에서, 박정희가 노예노동을 시킨 동기가 정치자금 마련이라고 했다. 노예노동으로 확보한 간척지를 농토로 만들어 수입을 얻을 생각도 했겠지만, 더 큰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간척 사업을 명분으로 미국의 경제원조자금을 받고 이 자금을 횡령해 정치자금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미국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을 지원하고 이 나라 기업들의 동아시아 활동을 보호하는 대가로 잉여농산물 원조를 받았다. 이 원조는 미국 공법(Public Law) 제480호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에 입각한 경제원조라 하여 'PL-480 원조'로 불린다. 이 원조를 받으려면, 경제자립을 위한 자조 노력의 의지를 보여줘야 했다. 서산개척단 문제에 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2011년에 의결한 결정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6년 3월경 최초로 PL 480 관련 협정을 체결한 후 1980년대 초까지 관련 협정 또는 수정 협정을 체결하여 미국 잉여농산물(소맥·옥수수·원면 등)을 도입하였고, 각 협정의 자조 조항에 따른 이행의 단계에서 자조 조치의 한 유형으로서 식량 증산을 위한 농촌 개발 및 영세농가 안정화 등 각종 자조 활동을 전개하였다."

식량증산을 위한 농촌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스스로 경제자립을 도모하겠다며, 박 정권이 미국 정부에 보여준 자조 노력이 서산 간척을 비롯한 전국적 간척 사업이다. 미국에서 농산물을 받아 환전할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돈을 주고 간척 노동자들을 고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멀쩡한 사람들을 부랑아 명목으로 붙들어놓고 강제노역을 시켰던 것이다. 그러고는 미국한테 경제원조를 받고 그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전용했던 것이다.

국민들을 노예노동에 동원해 정치자금을 만드는 정권은 현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성한 정치자금을 바탕으로 박정희는 친위세력을 구축하고 독재정치를 연장했다.

윤락녀도 아닌데 윤락녀란 이름으로 끌려온 여성들


▲ 서산 간척지. <서산개척단> 스틸컷. ⓒ 훈프로

<서산개척단> 등장인물들은 '개척단장이 지원금을 빼돌렸다'고 울분을 터트렸지만, 박정희를 정점에 둔 착취 시스템에서 하부 관리자에 불과한 민정식이 횡령 자금을 독점할 수는 없다. 일부를 착복할 수는 있어도 전부는 불가능하다. 감시반의 몽둥이 위협에 벌벌 떠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거대한 착취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하다.

그런데 박정희는 서산개척단 사업에서도 친일파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가 이 사업을 통해 자금을 만드는 방식은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백성들을 동원해 돈을 만드는 방식과 아주 흡사했다.

무고한 국민들이 서산개척단에 강제동원됐다는 점은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박정희가 충성을 바친 일본제국주의도 이런 식으로 식민지 백성들의 노동력을 공짜로 착취했다. 그런데 일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식민지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도 감행했다. 그러고는 그들을 강제동원된 남성들 곁에 배치했다. 박정희는 이 점도 모방했다.


▲ <서산개척단> 스틸컷.ⓒ 훈프로

서산개척단에는 윤락녀도 아닌데 윤락녀라는 이름으로 끌려온 여성들이 많았다. 당시 37세였던 윤기숙씨는 자수 학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에 속아 개척단에 납치됐다. 모포공장 기술자였던 정화자(당시 20세)씨는 "서산 모포 공장에 오면 더 많은 봉급에다가 주택까지 얹어주겠다"는 민정식의 꼬임에 넘어갔다. 정권은 이런 여성들을 윤락녀라고 선전했다. 윤락녀들을 서산에 모아놓고 재활시키고 있다고 선전한 것이다.

박 정권과 하수인들은 납치된 여성들과 강제동원된 남성들을 한 방에 몰아넣었다. 그런 뒤 짝짓기를 했다. "너는 얘랑 결혼해!"라는 식이었다. 이의를 제기하면 몽둥이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강제결혼 한 커플이 225쌍이다. 서산과 서울에서 이들의 합동결혼식이 거행됐다.

국민을 섬기고 보호해야 할 국가는 이처럼 성적 착취와 강제노동을 통해 간척지 사업을 벌인 뒤 미국 정부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아내는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만든 돈의 일부가 박정희 개인의 유흥과 조직관리에 사용됐다. 또 다른 나머지 일부는 어딘가에 감춰져 있다. 이제까지의 대한민국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였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 합동결혼식. <서산개척단> 스틸컷. ⓒ 훈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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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8년 5월 26일, 토 11:1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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