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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052318
‘민주화냐 군정이냐’
[김영삼 평전 76] 13대 대선 패배, 총선 제3당 전락



▲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2차 서울 유세에서 민정당의 금품공세를 강하게 비판하다. 지난 11월 29일 여의도유세인파를 훨씬 넘는 130만여 청중이 12만 4천 평의 공원부지와 그 주변지역을 가득 메우다. 사진은 김대중대통령도서관 사료관.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전통적으로 유교문화권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그래서 ‘호’나 ‘아호’가 사용되었다. 퇴계(이황), 남명(조식), 율곡(이이), 다산(정약용) 등 이름보다 호가 더 친숙하고 널리 알려졌다.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생명을 내놓고 조국독립에 헌신해온 애국지사들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에서 이름 대신 호로 불리웠다. 백범(김구), 도산(안창호), 몽양(여운형), 해공(신익희) 등이 이에 속한다.

5ㆍ16쿠데타 후 정치군인들이 등장하면서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아호 대신 영어 이름 머릿글자에서 따온 이니셜 표기를 하기 시작했다. 김종필은 JP, 이후락을 HR이라 하고, 때를 같이하여 야권에서는 김영삼은 YS, 김대중을 DJ라고 썼다. 김종필은 이라는 책을 펴내기까지 했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신군부가 기성정치권을 ‘싹쓸이’ 하면서 이니셜 표기의 정치인들이 정치현장에서 밀려났다가 중반기부터 재등장할 때는 후광(김대중), 거산(김영삼), 운정(김종필) 등으로 표기되었다. 언론이 신군부의 기피 인물인 이들의 애칭에 부담을 느꼈을 법하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民)의 시대가 열리면서 정치권과 언론은 다시 영문 이니셜을 회복하여 ‘3김’, ‘3K’ 등이 회자되고 여권에서는 일해(전두환), 용당(노태우), 허주(김윤환) 등이 불리웠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KT(이기택)ㆍDR(김덕룡)ㆍDY(정동영)ㆍMJ(정몽준)ㆍlJ(이인제) 등이 명멸했으나, ‘3K’의 대중성에는 이르지 못했고, 노무현과 이회창이 대권을 두고 용호상박전을 벌였을 때도 언론은 그냥 ‘노(盧)’와 ‘창(昌)’으로 표기하였다. 또 이명박과 정동영의 대선 과정에서 한때 영문 이니셜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으나 이명박 정권에서 그의 거듭된 실정을 비아냥하는 의미로 ‘MB’가 회자되었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18대 대선과정에서는 아예 영문 이니셜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냥 ‘박’, ‘문’으로 표기되고 국민들도 스스럼없이 박근혜·문재인 등으로 호칭했다.

한국현대 정치사에서 YS, DJ, JP는 국민으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장 많이 불리웠고, ‘대중정치시대’를 연 주역들이었다. 이제부터는 필요에 따라 영문 이니셜로 표기할 것이다. 이니셜 약칭은 존칭도 비칭도 아니어서 일반 대중이나 언론이 부담없이 써왔다.

YS후보 측은 <민주화냐 군정이냐>의 캐치프레이지를 내걸고 집권정책으로 5대원칙을 제시했다.

정치ㆍ외교 – 민주정치ㆍ자주외교
경제 – 넉넉하고 고른 경제
사회 – 화해ㆍ신뢰의 건강사회
교육 · 문화 – 민주교육ㆍ민족문화
통일 · 안보 – 실질적인 통일추구, 굳건한 안보

노태우 후보는 첫 유세인 11월 18일 춘천연설 때부터 “안정이냐 혼란이냐”라는 구호를 들고나와서 “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떠내려간다”면서 ‘3김시대의 청산’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YS는 “민주화냐 군정이냐”를 주구호로 ‘군정종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군정과 민정의 대비를 명확히 하면서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당상임고문으로 영입, 12ㆍ12사태를 쟁점으로 제기했다.

DJ는 ‘문민정부수립’의 구호 아래 중소상공인ㆍ노동자ㆍ농어민ㆍ중산층의 권익보호를 위해 모든 정책을 펴나가겠다면서 광주사태 당시 현지 사단장이었던 정웅 장군을 영입, 광주사태를 집중거론, 노후보를 비난했다. JP는 노후보를 주로 공격하면서 경제안정을 이슈로 제시했다.

선거전은 정당보다는 후보자별 대결로 특징지어졌고 이에 따라 유세장마다 엄청난 인파가 동원 또는 참석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로 여의도광장을 같은 유세지로 삼았는데 노후보가 12월 12일, DJ가 11월 29일, YS가 12월 5일 연설회를 열어 각각 백만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여의도 유세에는 민정당 측이 수도권의 금융기관, 기업체종업원 등을 조직적으로 동원했고 행정지원을 적지 않게 받았다. DJ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규모 유세를 두 차례에 걸쳐 시도했는데, 12월 13일의 보라매공원에는 우리 선거사상 초유라는 150만 명이 모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민통련을 중심으로 한 재야세력은 이른바 ‘비판적 지지’라는 것을 들고 나와 DJ를 지지했고(문익환, 김근태, 이해찬, 장영달 등) 후보 단일화론을 펴면서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후단파는(사실상 YS 지지) 당선이 가능한 인사를 지지하자며 자기 목소리를 냈다.(이부영, 이재오 등) 또한 다 필요 없고 진보의 독자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독자 후보파도 있었는데(후보는 백기완) 선거 며칠 전 백기완이 후보를 사퇴하면서 와해됐다. (주석 3)

<주석>
3) 이동형,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319쪽, 왕의서재, 1911.
 
 

올려짐: 2018년 5월 26일, 토 6: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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