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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The brutal crime of the general Jun and his men 052318
"너도 XX 하나 잘리고 싶냐" 전두환과 부하들의 뻔뻔함
[리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80년 5월 학살은 어떻게 조작됐나... 끔찍한 진실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제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 ⓒ SBS

영화는 현실보다 과장된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과장'된 경우가 있다. 바로, 1980년 광주 5·18의 진실이다.

국군이 이유도 없이 국민을 학살하고, 대검으로 여성의 신체를 훼손하고, 방금 살해한 피해자의 목을 잘라내는 모습은 영화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자이크 처리한 장면뿐이다.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제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에 출연한 광주 시민들은 '실제 상황이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도 5·18을 다뤘잖아요. 내가 본 건 영화에도 안 나왔어요."
"영화 <택시 운전사>나 다큐멘터리를 여러 번 봤는데,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예쁘게 꾸몄다'라고 진실을 말해주면, (상대방은) '과연 저게 우리나라 광주라는 곳에서 일어났을까' 하고 설마 하겠지, 설마."

영화보다 더한 참극이 광주 시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시위 현장과 멀리 떨어진 광주 외곽에서도 발생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표적 사례로 주남마을을 들었다. 광주광역시 남쪽에 화순군이 있다. 화순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주남마을이 있다. 지나가는 버스를 상대로 공수부대가 무차별 사격을 퍼붓는 일이 이곳에서도 있었다.

1980년 5월 23일, 시내 상황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시민들과 계엄군의 충돌은 5월 18일 시작됐다. 3일 뒤 오후 6시경,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하고 계엄군이 외곽으로 퇴각했다. 이때 시작된 소강 국면은 5월 27일 새벽 4시경 계엄군이 전면전을 개시할 때까지 이어졌다.

소강 국면이 시작되고 이틀 뒤인 5월 23일, 화순과 광주를 운행하는 버스 1대가 주남마을을 지날 때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고 박현숙 님과 홍금숙 님 등 10여 명이 탑승했다고 했지만, 신문 보도에 따르면 승객은 18명이었다.

산속에 매복해 있다가 좁은 산길을 통과하는 적군을 향해 화살을 퍼붓는 옛날 전쟁의 한 장면이 여기서 재현됐다. 길가 풀 속에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버스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한 것이다.

가슴 자르고, 목 자르고... 주남마을 학살


▲ 1980년 5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차가 벌집이 다 될 정도로, 총성이 한참 울려 퍼졌다. 버스는 이미 멈춰서 있었다. 군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격을 개시했다. 버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서 제2차 만행을 저질렀다. 죽은 시신들을 향해 여러 발의 확인 사살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검까지 꺼내들었다. 여성 유방을 훼손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시신 상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다발성 총상이 있는 사람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자상(칼에 의한 상처)이 이루어질 순 없어요. 총상을 입고 사망한 이후에 좌측 가슴부터 커다랗게 드러난 자상의 흔적이 있다는 이 표현을 엄격하게 말하면 사후손괴입니다."

총알 세례를 받고 학살된 여성 시신을 상대로 군인들이 유방을 훼손하는 사후손괴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 날 학살로 현장에서 열다섯 분이 숨을 거뒀다. 버스에서 살아남은 세 분 중 두 분은 인근에서 살해됐다. 나머지 생존자 한 분이 홍금숙 님이다. 이 분은 가슴을 향한 공격의 위협을 받았다. 1988년 국회에서 열린 광주 청문회 때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대검을 탁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너도 유방 하나 잘리고 싶냐 그러더라구요"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잔혹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인 24일에도 이 근처에서 만행이 있었다. 이 날 인근의 부엉산에서 학살당한 고 김부열 님의 상태는 너무도 처참했다. 시신에 목이 없었다. 목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만으로는 사인 규명이 안 됐다. 전북대학교 법의학교실 이호 교수는 살해 후에 시신을 분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남아 있는 몸에서 사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없어진 부위에 사인이 있다는 거죠."

목을 절단한 뒤 어딘가에 감춘 것은, 목 윗부분을 참혹하게 다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살을 자행한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끔찍했기에, 아예 증거를 없애고자 목을 절단해 어딘가 감춘 모양이다. 그래서 남아 있는 시신으로는 사인을 밝힐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 날인 24일, 주남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가 안 되는 송암동에서는 소년들이 말도 안 되는 학살을 당했다. 지나가는 군용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소년들을 상대로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다. 11세 된 고 전재수님은 10여 발의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적군도 아닌 어린이를 상대로 잔혹하게 확인사살을 했던 것이다. 이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참, 우리가 흔히 말하는 르완다 학살이랄지, 그런 것과 뭐가 다릅니까?"


▲ 고 전재수 님의 묘지. ‘망월동 5·18 묘역’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학살자들의 뻔뻔함 광주 청문회 대비해 공작반 만들어

참극을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다. 모자이크 처리를 않고는 영화로도 보여줄 수 없는 참극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더 영화 같은 것이 있다.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도 뻔뻔하다는 것이다. 영화로도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뻔뻔함을 38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남마을에서 학살을 자행한 김아무개 소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나도 피해자야"라고 항변한다. 그 일이 논란이 되는 바람에 진급도 못하고 군인연금도 깎였다는 것이다.

그는 학살이 일어난 연도도 모른다고 말한다. 진압이 정당했다며 한참 열변을 토하다가 "그거는 (희생자들이) 이해를 좀 하셔야 해"라고 말한 뒤, 느닷없이 "근데 이게 82년도인가, 81년도인가?"라며 혼잣말을 했다. 온 국민이 '1980년 5월'의 고통을 다 알고 있고, 더군다나 자신이 직접 학살에 가담했으면서도 그 연도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최고사령관 전두환의 뻔뻔함을 부하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그는 취재진이 갑자기 "입장 바꿔서 선생님 자녀분이 그런 피해를 받았다면"이라고 질문하자, 순간적으로 "열 받지, 내 자식이 총을 맞았어? 그런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라며 흥분했다. 정당한 진압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전두환도 자기 아들이 그때 광주에 있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그 역시 순간적으로 몸서리쳐질지도 모른다.

전두환뿐 아니라 일선 장교들까지 뻔뻔하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고도의 통일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11 연구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이것은 1988년 광주 청문회에 대비해 만든 공작반이다. 5·18 연구위원회가 아니라 5.11 연구위원회다. 5월 11일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위원회는 광주 청문회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짜고, 여당 청문위원과 증인을 사전에 불러 청문회 예행연습도 했다. 1988년에 국민들이 TV로 지켜본 광주 청문회 장면의 일정 부분은 전두환 일당이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따른 '쇼'였던 것이다. 방송에 따르면, 청문회 뒤에 위원회는 이렇게 총평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선방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나 '광주항쟁'이란 표현 대신 '광주사태'나 '광주폭동' 같은 표현을 쓰는 일부 국민들 중에는 "광주에서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어?"라거나 "그 정도 일은 국가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이런 국민들도 광주 청문회를 통해 5·18의 실상을 들었다. 듣고도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역시 5·11연구위원회의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을 듣고도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국민들이 상당수 존재하도록 만들었으니 "우리는 선방했다"고 총평을 내릴 만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작 활동이 있었고 또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기에, 전두환 집단이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끔찍한 학살을 저질러놓고도 여태껏 별 탈 없이 재산과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뻔뻔함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학살을 조작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죄악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지만, 전두환과 그 일당은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지금도 광주 학살과 자신들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전두환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자신이 총리도 아니고 계엄사령관도 아니었다며 발뺌을 한다.

"공무원 조직을 관장하고 있던 신현확 총리나 실병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달리 나는 실제로는 쓸 수 있는 힘이나 수단이 없었다."

형식상의 계엄사령관인 이희성도 발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나왔듯이, 그 역시 "말단 부대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기피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이 학자들과 함께 조사한 미국 국무부나 CIA 비밀문서에는 한국 정부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5·18과 전두환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일례로,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은 희생자 신원에 관한 보고까지 받고 있었다. 항쟁 직후인 1980년 6월 4일, 서울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 관계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자신이 보고받은 상황을 귀띔해 줬다. 이 대화 중에 전두환이 이런 말을 했다고 미국 정부에 보고됐다.

"22구의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22구의 시신 모두 북한에서 온 스파이일지 모른다고 했다."

시신의 신원에 대한 보고까지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5·18 진압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뻔뻔함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5월 26일, 토 4:2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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