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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An impending peace regime 050918
눈 앞에 다가온 평화체제, 보수·진보 진짜 위기다
[주장] 분단체제에 발목 잡힌 양쪽, 새로운 상상력 필요


(서울=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 = 보수의 위기다.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선언으로 끝나고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 보수는 궤멸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 처음 맞는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현재 보수세력은 지리멸렬 상태다. 분단구조에서 '빨갱이'로 대표되는 안보장사만 했을 뿐, 한 번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수의 위기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모습은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나홀로 단식을 하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의 행색과 표정은 마치 시대의 모든 고민을 홀로 짊어진 듯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심지어 그가 국회에서 테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들이 집권 여당과 몇 석 차이나지 않는 제1야당 원내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 드러누운 김성태, '노숙 단식' 이틀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드루킹 특검' 수용을 촉구하며 이틀째 노숙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바닥에 누운 김성태 의원이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이주연

그 결과는 현재 여론조사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드루킹 특검의 경우 찬성의견보다 반대 의견이 높은데다, 오히려 경남지사 여론조사에서 김경수 후보의 지지율이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와 큰 격차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자유한국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현재 그들이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한반도 평화를 논하며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야당이 국회에서 일은 하지 않고 이렇게 몽니를 부리니 어찌 사람들이 곱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자유한국당을 민심과 더욱 동떨어지게 만드는 이가 있으니 바로 홍준표 대표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판문점 선언을 좌파의 음모라며, 곧 위장평화쇼의 허구가 드러날 것이라고 운운한다. 국민들 인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발언들이다. 도대체 그는 몇 년도를 살고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그에 비하면 김성태 의원은 양반이라고 느낄 정도다.


▲ 홍준표 "남북합의 결코 수용못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4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물론 자유한국당 모든 이들이 홍 대표와 생각이 같은 건 아니다. 실제로 지방선거의 많은 후보들이 그와 거리를 두고자 하고 있으며, 혹자는 당대표를 그만두라고 나서기도 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언론에 나와 홍 대표에 대해 "그분은 보수당을 궤멸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참담한 사실은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세력이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분단구조 안에서 '악의 축 북한'에 대한 공포를 반복재생하면서 기득권을 누려왔던 만큼, 그들은 현재 북한을 빼고 난 이후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찾기조차 어렵다.

보수라 함은 변화로부터 무엇을 지켜야 하는 것인데,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궁극적인 가치가 반공주의다 보니 주적이 사라질 새로운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그들이 보수가 아닌 극우세력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진보의 위기

그렇다면 분단구조가 해체되고 보수가 몰락해가는 지금, 그 반대 위치에 서 있었던 진보세력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진보의 미래 역시 현재 불확실하다. 분단구조 속에서 남과 북이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었듯이, 진보세력은 보수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며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은 보수세력과 날을 세우는 것이었다. 무조건 '빨갱이, 종북좌파' 색깔론을 앞세우는 보수세력에 맞서 북한을 합리적인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면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라는 이름표를 얻을 수 있었다. 다른 국가에서는 보수의 어젠다인 통일과 민족을 이야기하는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들을 진보-좌파라고 칭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변했다. 북한 김정은이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되었고, 분단구조는 곧 해체될 듯하다. 안보장사를 하던 극우세력은 힘을 잃게 될 것이고 현재 집권세력이 진보가 아닌 보수로 명명될 수도 있다. 그동안 분단구조로 말미암아 왜곡되어 왔던 정치구조가 다른 나라처럼 상식적인 좌파-우파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은 어정쩡하기만 하다. 안보장사를 하던 극우세력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이 순간, 집권세력과의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현 정부 보다 조금 더 노동자를 이야기하고, 재벌개혁 등을 이야기하지만 국민들의 관점에서 그것은 아주 미미하게 보여질 뿐이다.


▲ 대한항공 직원들과 가족, 지지하는 시민 등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대한항공 직원들의 집회를 보자.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던 그 자리에 노조는 없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는 노조가 오히려 일반직원들에게 패싱 당하고 있었다. 소위 갑에 대한 을의 반란에서 을이 믿고 기댈 조직이나 정치적 세력이 없다는 의미 아닐까?

이는 단순히 어용이라는 소리를 듣는 대한항공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분단체제에서 항상 빨갱이 덧칠을 당했던 다수 노동조합의 문제이며, 또한 그들을 근간으로 하는 진보세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낮은 노조 가입률과 귀족노조 논쟁, 그리고 노조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바로 이것이 노조와 뗄 수 없는 진보세력의 현주소이며, 아직 국민들이 진보세력을 현 집권세력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새로운 보수와 진보를 꿈꾸며

언론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함께 모습을 드려낸 김정은 위원장의 리설주 여사를 보도하면서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아니었음을 전제하는 분석이다.

그러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분단체제의 자장이 남과 북 모두에게 미쳤던 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구조 역시 지금까지 왜곡되어 왔었다. 극우가 보수의 명칭을 얻었으며,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한데 묶여 똑같은 진보 취급을 받아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극히 보수적인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것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 두 정상의 첫 만남 ⓒ 청와대

따라서 분단체제 대신 평화체제가 들어서고 있는 지금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위기이다. 그동안 스스로를 규정지어 왔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며, 처음부터 다시 정체성을 쌓아가야 한다. 보수는 무엇을 지키고 보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며, 진보는 무엇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5월 12일, 토 5: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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