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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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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의 중심에서 투쟁
[김영삼 평전 74] 민주투쟁의 진원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 7백여 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앞세우고 학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태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6월항쟁 과정에서 야당과 민추협의 역할이 컸다. 민추협은 국민대회장인 광화문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에 경찰의 저지에 대비, 김명윤 부의장과 김병오 상임운영위원, 이규택 국장 등을 사전에 투입시키는 등 면밀한 전략을 짰다. 민추협 사무실도 경찰의 원천 봉쇄와 폐쇄에 대비하여 철야 대기조를 편성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6월 10일 오전에는 6.10 국민대회에 앞서 사무실에서 영구집권음모규탄대회 를 열었다. 김영삼 대표 등 70여 명이 참석하여 행사를 거행했다. 오후 6시로 예정된 대한성공회에서 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대회는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고, 사전에 투입된 민추협과 국민운동본부 20여 명, 성공회의 사제, 신부 등 70여 명이 오후 6시에 예정된 식순에 따라 대회가 거행되었다.

이날 정부는 갑호 비상령을 발동하고 6개 중대 1천여 명의 정사복 경찰이 겹겹으로 애워싸 보도진의 출입도 막았다. 경찰은 4대문안 시위예상 지역에 90개 중대 1만 2천여 병력을 배치한데 이어 대학가 등 외각에 배치한 1만 여 병력도 이동하도록 조치했다.

김영삼 의장과 회직자들은 경찰의 봉쇄를 뚫고 오후 5시 20분경 차량 3대를 앞세우고 시민 500여 명과 함께 롯데백화점 앞으로 집결을 시도했으나 최루탄 난사로 좌절되기를 거듭하면서 6시 5분경 성공회 대성당에 도착했다. 그러나 경찰의 무차별 최루탄 발사로 진입하지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같은 시각 김대중 의장도 동교동 자택에서 민추협 농성에 동참,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경찰은 시민들의 산발적인 시위에도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발사하여 해산시키는 등 과잉진압을 서슴치 않았다. 성공회 대성당에서 대회를 강행한 민추협 인사들은 박종철군의 영정과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성당구내를 돌았다. 때로는 성당밖으로 나오려다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여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경찰은 김명윤, 양순직, 계훈제, 박형규, 지선, 제정구, 오충일, 김병오, 진관, 이규택, 유시춘, 금명균, 송석찬 등 성공회 대성당에서 대회를 강행한 인사들을 이날 저녁 경찰에 연행했다가 13일 새벽 전격 구속했다.

정부는 6ㆍ10대회를 수많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봉쇄했지만, 노도와 같은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 6월 10일의 행사가 비록 일시적으로 봉쇄되었지만, 이것은 종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었다. 이날부터 노태우의 6.29 선언이 있기까지 20여 일 동안 반정부시위는 국민운동본부와 민추협의 수준을 벗어나 국민혁명으로 승화되어 가고 있었다.

민추협은 이날 민주당과 합동으로 오후 5시 10분경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평화대행진식을 거행했다. 많은 회직자가 최루탄 파편에 맞거나 연행되었다. 경찰은 이날 서울의 1,139명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총 3,467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전두환정권은 2주일 이상 전국에서 폭발한 범국민적 시위를 경찰만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군동원을 신중하게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정부는 이런 정보를 입수하고 적극적인 교섭을 통해 군부개입을 저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부여당으로 하여금 중대한 6 .29 노태우 선언 을 극적으로 발표하게 하였다. (주석 21)

민정당 차기 후계자로 지명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6월 29일 8개항으로 된 시국수습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88년 평화적 정부이양 △ 김대중 사면복권과 시국사범 관련 인사석방 △ 언론기본법 폐지 △ 지방자치제 및 교육자율화실시 △ 정당활동 보장 등이었다. 7월 1일 전두환이 노대표의 구상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정부여당의 공식입장이 되었다. 4.13호헌조치 가 정식으로 철회되고 6월항쟁의 성과로 직선제 개헌안이 관철되었다.

민추협은 7월 1일 정부의 6.29선언을 환영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국민은 30년에 걸친 독재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야 반만년 역사의 문화민족으로서 단합 속에 국가발전에 매진할 수 있는 실마리가 풀렸다. 고 전제하고 이 나라가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헌신해 온 민주인사들에 대한 모든 규제를 해제하라. 고 촉구했다.

6.29선언 으로 연금이 해제된 김대중 의장이 당일 정례 의장회의에 참석키 위해 민추협 사무실에 나왔다. 연금 83일 만의 일이었다. 7월 5일에는 이한열군이 사경 27일만에 운명하여 두 공동의장과 회직자들이 빈소를 방문했다.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이 7월 9일 열리고 공동의장도 여기에 참석했다.

김대중 의장이 8월 8일 민주당에 입당했다. 환영식이 열렸다. 김영삼 의장은 민주당이 창당될 때 고문으로 입당했었다. 두 공동의장은 민추협에서 활동의 영역을 넓히며 군사정권 종식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주석>
21) 구자호, 앞의 책. 880쪽.
 
 

올려짐: 2018년 5월 11일, 금 10: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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