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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042518
세번째 야당 총재에 선출
[김영삼평전 72] 민주투쟁의 진원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 박종철의 죽음을 되새기며 민주와 평화를 바라는 물결.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4월 13일 상도, 동교동계의 신민당의원 70명은 이른바 당내 불순세력 과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통일민주당(민주당)의 창당에 나섰다.

신민당 90명의 소속의원 중 74명이 탈당하여 신당에 참여함으로써 신민당은 교섭단체 정족수도 못되는 군소정당으로 전략하고, 신당이 새로운 정통야당의 법통을 이어 받아 대여 투쟁의 구심이 되었다. 대통령직선제개헌투쟁도 속도를 더해갔다. 바로 그 시간 전두환은 4ㆍ13호헌조치를 발표했다.

민주당 지구당 창당 과정은 험난했다. 안기부장 장세동이 신민당 비주류세력을 지원하여 정치깡패들을 동원. 대회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용팔이 사건 이다.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이 이택희ㆍ이택돈을 만나 6억원의 자금을 전달하는 등 창당방해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장세동이 구속되었다. 이로써 용팔이사건 은 장세동 - 이택희ㆍ이택돈 - 이승완ㆍ이용구 - 김용남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정치공작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총재에 추대된 김영삼은 통일민주당의 노선에 대한 6개 원칙을 제시했다. 김영삼은 85년 3월 6일 정치활동 규제가 해제되었다.

1. 1988년 2월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기해 이 땅에 군사독재는 영원히 추방되어야 하며, 정권교체의 방법은 국민의 의사에 따라 대통령중심 직선제로의 합의개헌이어야 한다.

2. 현정권이 독재정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비참한 말로를 맞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민주화 의지를 실증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3. 우리 당은 명예로운 전통에 따라 의회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임무와 사명을 지켜야 한다.

4. 우리 당은 언론자유의 쟁취를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5. 우리 당은 경제ㆍ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고 발 맞추면서 자기 개혁을 거듭해 온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에 따라, 이번에도 산업사회의 누적된 병리를 치유하기 위한 당 정강ㆍ정책의 보완작업을 단행한다.

6. 국민과 역사의 요청이 군사독재 정치의 종식과 더불어 민주화시대의 개막을 주도하는 민주ㆍ문민정권의 출현에 있음이 분명한 이상, 우리 당은 명실상부한 수권정당으로서 손색이 없어야 함과 동시에, 민주화와 민주통일을 주도적으로 창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세번째 야당 총재가 된 김영삼은 준비된 취임사를 통해 매섭게 전두환과 민정당을 비판했다.

민정당이 취임사를 물고늘어졌다. 민정당은 성명을 통해 총재 취임사에서 현행 헌법하에서 대통령선거는 불참하고 현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투쟁에 나서겠다고 천명한 부분과, 전두환정권하의 선거를 북한의 선거에 비유한 내용, 1988년 서울올림픽을 나치 치하의 베를린올림픽에 비유한 부분을 거론하며, 이는 국가와 올림픽을 모독한 것이며 폭력혁명에 의한 정권탈취 저의까지 있는 것이라며 해명을 촉구했다.

검찰에서도 발언을 문제 삼아 국가모독죄 운운하며 김총재를 소환수사하겠다는 협박했다.

이민우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신민당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11월 6일 신민당총재직과 의원직의 사퇴를 발표하고 정계를 떠났다. 이민우는 두 김씨의 대리인으로 신민당총재에 추대되어 개헌현판식 과정에서 한 때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일련의 돌출행동으로 몰락하고 반독재 민주투쟁전열을 혼란시켰다는 평가가 따랐다.

신민당과 민추협이 이민우의 돌출행동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무렵 서울대생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수배자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한 조사를 받던 중 수사요원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등의 고문으로 박종철군이 숨졌다.

당초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며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으나,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 사건은 박지원 치안감, 유정방 경정, 박원택 경정 등 대공간부 3명이 축소 조작했으며 고문가담 경감이 모두 5명으로 드러나면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내연하던 민주화 열기가 다시 폭발했다.

민추협은 박종철군 고문살인사건 대책위 조사단 을 구성하고 각계 인사 9천여 명으로 구성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 에 참여하는 한편 국민추도의 날 행사에 대비하여 <민주통신> 발행, 홍보전단 배포 등 행사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2월 7일 민추협 등 48개 단체의 공동으로 국민추도회가 광화문에서 거행되었다. 정부는 3만여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무차별 최루탄을 난사하고 참가자들을 연행하는 등 폭력으로 집회를 막았다. 민추협은 조선호텔 앞 노상에서 추도회를 거행하고 대형 스피커 3대를 통해 추모 안내방송을 진행했다. 많은 회직자가 연행되거나 최루탄 파편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정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격랑속에서 두 공동의장은 2월 13일 ‘난국타개를 위한 제언과 우리의 결의’ 를 공표했다. 정부의 인권유린행위의 중지 . 내각제개헌강행 중지 . 선택적 국민투표 실시. 두 의장과 전두환 대통령의 대화촉구 등을 제안했다. 경색정국을 대화를 통해 풀려고 하는 두 의장의 고육책이었지만 정부는 강경일변도로 나왔다. 민추협은 2월 24일 2. 21 총선 2주년을 계기로 사무소에서 ‘고문살인 용공조작 등 인권탄압 폭로대회’ 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전날부터 사무실이 원천봉쇄 당하고, 당일에는 주변에 6.000여 명의 전투경찰을 배치하여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또 3월 3일 ‘국민대평화행진 및 고 박종철군 49재’ 행사를 앞두고 당국은 두 공동대표와 회직자 다수를 가택 연금하여 행사 참가를 봉쇄했다. 그렇지만 많은 국민이 경찰의 경비망을 뚫고 행사에 참가하여 행사는 강행되었다.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열기가 가속되면서 정부는 위기감을 갖고 4월 13일 4.13 호헌조치 라는 것을 발표했다. 전두환은 이날 특별담화에서 평화적인 정부이양과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논의를 지양하라. 고 선언하면서, 제5공화국 헌법으로 88년 2월 정부를 이양할 것과 그에 따른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및 대통령선거를 연내에 실시할 것, 그리고 개헌논의를 올림픽 뒤로 미룰 것 등을 밝혔다.

이것은 타는 불에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 되었다. 폭압통치에 시달려온 국민은 군부정권의 연장을 의미하는 전두환의 4. 13 호헌조치 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추협과 민주당 . 재야세력은 연합하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를 결성하고 대여투쟁에 전 역량을 집결하기로 했다. 국민운동본부 는 6월 10일 국민대회를 열고 26일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 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민추협은 6. 10 국민대회 민추협 12인 준비 위원회 를 구성하고 박영록 부위원장이 위원장의 책임을 맡았다. 민추협 소속 민주당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고, 정부에 내각제개헌 철회, 6개월 째 계속되는 김대중 의장 연금해제, 고문정치 종식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올려짐: 2018년 4월 28일, 토 10:5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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