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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032818
총선 앞두고 김대중 전격 귀국
[김영삼 평전 69] 민주투쟁의 진원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에 도착하여 나리타의 홀리데이인호텔에서 1박 하다. 사진은 김대중도서관 사료. 1985년 2월 7일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김대중 고문의 귀국 예정일이 2월 8일로 알려지면서 12월 초부터 민추협은 환영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영삼)를 구성하는 등 귀국환영 준비를 서둘렀다.

새로 창당한 신민당 이민우 총재가 부위원장, 선거대책본부장인 김재광이 사무총장이 되어 전국 92개 지구당에서 각 300~500명 이상의 당원을 김포공항에 동원하며, 각 지구당에서 3개 이상의 펼침막 등을 준비하기로 했다.

2월 8일 김포공항에는 김대중을 환영하고자 민추협과 신민당 관계인사, 일반시민 등 5만여 명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당국의 방해로 환영 나온 사람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커텐으로 창을 가린 버스에 실려 강제 귀가 조치되어 동교동 자택에 연금되었다. 동교동자택 주변에는 100여 개의 경찰초소가 세워지고 정사복 경찰이 경계했다. 당시의 신문보도를 통해 귀국과정을 살펴본다.

82년 말 신병치료차 도미했던 김대중씨 (60. 전 신민당 대통령후보)가 8일 상오 11시 40분 미 NWA 191편으로 부인 이희호 여사 등 가족과 함께 김포공항에 귀국했다. 김씨는 공항에 도착한 후 기자회견 등 일체의 외부접촉 없이 삼엄한 경비를 편 당국의 호위 속에 1시 20분께 커튼으로 창을 가린 18인승 미니버스로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이날 김씨가 도착한 김포공항에는 경찰이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경비를 펴 일반인의 공항출입을 막고 동교동 자택부근에도 경찰이 경계망을 펴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다.(주석 13)

그의 귀국길에는 에드워드 페이언, 토머스 폴리에터 등 미국 하원의원을 비롯하여 저명인사 수명이 수행하였다. 정부 당국은 김영삼 의장을 비롯하여 주요 인사들을 연금하고 김포공항 주변에 수많은 전경들을 배치하여 공항출입을 막았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다. 외국인 수행원 중에서는 입국수속 때 정부 기관원으로부터 폭행과 모욕을 당했다. 미국정부는 수행원들의 폭행과 관련하여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미국정부의 항의 내용에 대해 제레지언 대변인은 미국이 한국정부와 맺은 묵계가 이행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는 근년 들어 가장 심각한 어조로 네 번이나 유감 이란 용어를 썼다.” (주석 14)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민주당(신민당)이 창당되었다.

84년 12월 20일 창당발기인대회에 이어 85년 1월 18일 창당대회를 열었다. 민추협 인사들과 해금된 구신민당 인사들, 각계 민주인사들로 구성된 창당발기인들은 발기취지문을 통해 문민정치 확립을 내걸고, △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제도개혁 △ 정치활동규제법 폐지와 전면해금 △ 2 . 12 총선승리 등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신민당 총재는 양 김씨의 합의로 이민우가 추대되고, 부총재는 김녹영, 이기택, 조연하, 김수한, 노승환 등 5명을 선출했다. 신민당은 창당선언문에서 “민주화의 열망과 민주적 역량을 총집결, 민족의 주체세력으로 모든 반민주적 세력과 요소들을 과감히 제거하는 데 앞장 서겠다”고 다짐했다. △ 대통령 중심제와 대통령직선제 △ 일체의 독재와 독선배제 △ 지방자치제 조기실시 △ 언론기본법 폐기 △ 군의 정치적 엄정중립 등을 정강정책으로 채택했다.

신민당 창당과정에서 특정 인사들의 참여문제를 두고 내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이철승 등이 또 다시 참여하는 것을 보고 상위에서 강력히 반대하며 뒷날 크게 후회할 것을 경고했으나 김상현, 조연하 위원 등이 소극적으로 대응하여 그대로 창당되었습니다, (주석 15) 라는 증언도 있다. 실제로 신민당은 이후 개헌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노선투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이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주석
13> <한국일보>, 85년 2월 9일치.
14> <중앙일보>, 85년 2월 9일치, 장두성 워싱턴특파원.
15> 윤혁표 증언, 앞의 책, 112쪽.
 
 

올려짐: 2018년 3월 29일, 목 9: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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