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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Mun Ikwhan Story2 031418
"내 작품이 정말 청와대로..."
그림으로 문익환-문재인을 잇다
[문익환의 사람과 물건 ②] 민중미술작가 임옥상


(서울=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거목인 '늦봄'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문익환 목사와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가 남긴 물건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민족과 민중을 위해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을 기리고, '촛불 혁명' 이후 새로운 체제와 다시 시작된 '남북대화 국면'을 맞아 올바른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 임옥상 화백과 한신대 교정에 세워진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 ⓒ 권우성

지난달 23일 찾아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수유리 캠퍼스, 언덕 가운데에 문익환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형상화한 '시비'가 자리 잡고 있다. 전날 내린 눈은 문익환 목사의 얼굴 조각에도 내려앉아 있다. 햇볕은 흰 눈에 반사되어 금색 '불꽃 형상'의 시비를 더 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게 색깔이 좋잖아요. 황금빛. 그냥 글자가 아니라 황금빛 찬란한 시어를 구사한 분이라서 그 색깔을 선택했어요. 불꽃 같고 왕관 같고..."

시비 앞에서 만난 임옥상(69) 민중미술작가는 문 목사의 시구 한 글자 한 글자를 놋쇠 조형물로 형상화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뿌듯해했다. 임옥상 작가에 의해 문익환 목사는 분단의 철조망을 단숨에 뛰어넘는 통일 운동의 '거인'(작품 <하나됨을 위하여>)으로, 찬란하고 불꽃 같은 시어를 구사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임 작가가 촛불집회를 그린 작품 <광장에, 서>는 지난해 11월 청와대에 걸렸다. 이미 전시회에서 그림을 구매해 간 사람이 있어서 청와대에서 '빌려서' 걸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에 의해 작품 전시까지 못 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문 대통령은 "이게 촛불집회를 형상화한 건데, 완전히 우리 정부 정신에 부합하고 정말 좋아보이더라"면서 직접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청와대 참모들과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이 이번 정부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분단 극복'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문익환 목사를 그린 작가의 작품이 청와대에 있어서였을까? 문 대통령은 임기 1년도 안 돼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뤄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 준 충격... "꿈 같은 일"

- 얼마 전에 청와대에 작가님 그림이 걸렸어요.
"당신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되는지 아는 거다. 촛불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와 뜻을 천명한 것 아니겠나. 매일 오가면서 작품을 봐야 하니까 각료들에게도 촛불 정신을 새기게 하는 효과도 있겠죠."

- 그림이 청와대로 간다고 한다는 소식 들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놀랐어요. 전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이건 청와대로 가야겠네'라고 말했거든요. 그렇지만 막상 실제로 건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기쁜 것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당혹스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엇갈렸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지난 2017년 11월 21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습이 담긴 대형 그림 '광장에, 서'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광장에, 서'는 임옥상 작가 작품으로 30호 캔버스(90.9㎝X72.7㎝) 108개를 이어 완성한 그림이다.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기념 전시회였던 '시대정신전'에선 청와대의 외압으로 문익환 목사를 그린 '하나됨을 위하여'가 빠졌었잖아요. 시대가 달라지긴 했나 봐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걸지 말라고 이야기하진 않았을 거고, 청와대 수석급에서 걸지 말라고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알아서 긴 거죠. 저야 옛날부터 블랙리스트에 오르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임옥상이는 안 된다' 했을 것이고... 또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통일은 '흡수통일'이잖아요. 문 목사님이 말하는 개념의 통일은 자기들 사전에는 없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봐요."

- 문익환 목사님은 언제 처음 만나셨어요?
"1991년에 호암갤러리 전시에 <하나됨을 위하여>를 전시하려고 했어요. 당시에 목사님은 방북으로 인해 감옥에 계시다가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상태였어요. 그래서 목사님께 '제가 작품을 하나 했는데 와서 좀 보시죠'라며 오픈식 날에 오시라고 했어요. 그런데 당시 (호암갤러리를 운영하는) <중앙일보> 측에서 당국이 막는다고 못 건다는 거예요. 항의를 해봤지만 힘들었어요. 목사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같이 그림을 들고 사진을 찍었죠."

- 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목사님은 왔고 작품은 못 걸었잖아. 그랬는데도 '뭐 어때 작품만 있으면 되는 거지. 이렇게 봤으면 됐지'라면서 좋아하시면서도 조금 쑥스러워하셨던 것 같아요."


▲ 1991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임옥상 초대전'에 와서, 임옥상 작가가 자신을 그린 <하나됨을 위하여>앞에 서 있는 문익환 목사 ⓒ 임옥상 화백 제공ⓒ 권우성


▲ '하나됨을 위하여'. 고 문익환 목사가 분단 상징인 철조망을 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임옥상 화백 작품. '하나됨을 위하여' All for One 235x266cm 종이부조,아크릴릭 1989 ⓒ 임옥상 화백 제공

- <하나됨을 위하여>는 왜 만드시게 된 건지요?
"평양에서의 일성을 듣고 '그렇지, 그냥 통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통일을 보여주신 거죠. 상상력을 초월하는 꿈같은 일이었어요. 너무 충격을 받았고 작가로서는 하나의 전기가 됐습니다. 목사님의 방북을 꼭 작품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우리 모두 통일에 대한 일종의 가위눌림이 있었는데, 목사님은 그걸 일시에 뚫어버렸잖아요."

임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 있은 후에 김용택 시인과 ' 빨치산'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남부군의 배경인 전북 순창에 있는 회문산에 갔다고 한다. 당시 문 목사의 방북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회문산에 올라가는 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곳에 철조망이 있는 거예요. 넘어서 갔죠. 그리고 진달래를 보면서 황홀경에 빠져있는데 김용택 시인이 '진달래는 음지에 피는 거여. 음지에 피어있기 때문에 더 선홍색인 거고'라면서 문익환 작품에 진달래를 그려달라는 거예요. '무슨 말이야' 물었더니 '회문산의 남부군 사람들, 정말 비명에 간 민초들의 피가 되살아나는 게 진달래의 모습 아니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넣겠다고 하고 다시 오던 길에 문제의 철조망을 또 만났어요. '에이' 하면서 건너뛰는데 그때 문 목사님이 오버랩된 거예요. 그래서 그 작품이 만들어진 거죠"

"문익환은 최고의 시인이다"

- 문 목사님에게 특별히 주목하신 이유는?
"목회자에서 민주투사가 되신 거잖아요. 시를 쓰는 민주투사. 저는 이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사도로서 살다가 그 삶이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안 거잖아요. 한 개인으로서도 전환이고 시대적으로 봐도 상징성을 내포하는 거죠. 목사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시어로, 또 몸으로 뛴 거예요.

또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시인은 문익환이에요. 일반 민중이나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 쓰는 말을 그대로 시어로 끌어올렸다는 게 중요해요. 자기만이 아는 말을 쓰고 가르치려고 한 게 아니에요. 목회자면 사실 대단히 높은 사람인데 밑으로 내려와서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말로 함께 뒹굴었어요. 그 점이 문익환에게 배워야 할 점이고, 문익환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남아있게 한 이유죠."


▲ 임옥상 화백과 한신대 교정에 세워진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

- 여기 한신대 신학대학원 캠퍼스에 '잠꼬대 아닌 잠꼬대' 시비도 만드셨어요.
"문익환 기념사업회에서 시비를 만들자는 제안이 왔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저는 늘 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사람이잖아요. 다만 문익환 목사님을 제가 작품으로 제대로 모실 수 있을까가 부담이 됐죠. 시를 무엇으로 할지는 제가 직접 정했다. 제가 그 시를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분단 극복의 이정표와 같은 멋진 시잖아요."

- 그런데 중간에 누군가에 의해 놋쇠가 뽑히고 구부러지는 등 훼손이 됐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죠. 사실 도라산역이 막 뚫렸을 때 이 시비가 위치하기를 기대했었는데 좌절된 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개방된 장소에 설치되어서 만족했거든요. 신학대학 부지이긴 하지만 운동장 한편에 있는거니까 많은 주민들이 접할 수 있었고요.

이명박 박근혜 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서도,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도처에서 나타났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일개 시민이 해병대를 자칭하고 군복을 입고 나타나질 않나..."

- 그 이후에는 보호가 잘 되고 있나요?
"좀 만진 다음에 자리도 옮기고 유리도 씌웠어요. 유리는 좀 안 씌웠으면 좋겠는데... 보존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 문화는 손 하나도 안 대고 영원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는 걸 원하는 게 지배적이에요."

- 마모가 되어도 괜찮다는 거죠?
"그럼요. (작품이) 세월에 맞서는 것은 틀린 생각이죠."

"시건방지게 이 사회 어떻게 해보려고 한 적 없어"

- 혹시 저희가 모르는 문익환 목사님을 다룬 작품이 있었나요?
"그렇게 특정한 분들을 부각시키는 작업은 제 작품 정신과 떨어지죠. 저는 민중 중심이에요. 영웅주의가 아니에요."

- 문 목사님을 다룬 작가님의 작품의 주제는 '통일'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통일이라는 주제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을 크게 봐야 해요. 크게 보려면 철학과 세계사적인 안목 등 인문학적인 소양이 갖춰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자기성찰의 시간이 중요한데 지금 그런 것들이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있잖아요. '네 앞에 있는 네 문제 해결부터 해라'는 식으로 내몰리고 그런 '극한 의식' 속에서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 남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좁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세계가 평화롭지 못하면 경제가 잘될 수 있나요? 또 이웃과 사랑 나누지 않으면 인생이 도대체 뭡니까? 우리는 지금 '섬'에 갇혀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 통일에 대한 시각도 그렇고, 작가님 스스로 '문익환의 길'을 가는 중이라고 여기시는지요?
"저는 사회에 기여를 하겠다,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건 아니에요. 살다 보니까 '이건 아니지 않냐' 싶었던 것뿐이죠. 시건방지게 이 사회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적이 없어요. 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거라는 생각도 안 하고요. 마찬가지로 문 목사님의 훌륭하신 삶을 따르고 쫓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자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는 게 아니겠어요. 나도 모르고 그냥 떠오르고 그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이고, 그게 바람직하겠죠."


- 추후에 분단 극복을 위한 퍼포펀스 계획 있으세요?
"계기가 되면 해야 된다고 늘 생각합니다. 당연히."

-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실 겁니까?
"의도하거나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 전체로 읽는 그런 것입니다. 말로 하자면 많은 사람들과 아픔·연민을 나누면서 동고동락할 수 있는 그런 사회에 대한 열망이 작업으로 표현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산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그래 그 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 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 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 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적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구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


1989년 첫 새벽에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3월 17일, 토 6:4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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