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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67 031418
정부, 사무실 입주도 못하게 탄압
[김영삼 평전 67] 민주투쟁의 진원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 김영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의 자택에서 이민우 신민당 총재와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갖다. (사진은 김대중도서관)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민추협이 발족은 했지만 운영은 쉽지가 않았다. 사무실을 구하는 것부터 시련이 닥쳤다. 7월 12일 서울 광화문 종각 옆 대왕빌딩에 입주금을 주고 계약을 마쳤으나, 건물주가 입주기관이 민추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미리 들여놓은 집기와 전화기 등을 밖으로 꺼내놓고 문을 잠궈 버렸다.

이날 개소식을 위해 식당 한일회관에서 전체 회의를 마친 다음 김영삼 의장을 선두로 운영위원들과 회직자들이 지하도를 건너 도보로 사무실까지 행진했다. 건물에 도착한 이들은 망치로 잠긴 문을 부수고 현판식을 거행했으며 텅빈 바닥에 비닐 돗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고 앉아서 입주식 을 해야 했다. 민추협의 험난한 여정의 신호탄이었다. 민추협의 기구는 역대 어느 야당 못지않게 확대되었다. 1984년 5월부터 1985년 3월까지 유지된 제1기의 민추협 체제는 다음과 같다.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상임운영위원회와 그 밑에 운영위원회를 두어 의결기구 역할을 맡게 하고, 헌법연구특별위원회, 인권문제특별위원회, 통일문제특별위원회, 노동자, 농어민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집행기구로 간사장과 부간사장을 두고 대변인, 기획조정실과 17개 부서를 두었다.

부서는 총무부, 조직1부, 조직2부, 홍보부, 인권부, 훈련부, 섭외부, 문화부, 조사부, 노동부, 농어민부, 산업부, 출판부, 국제부, 청년1.2부, 부녀부 그리고 약간 명의 전문위원을 두었다.

민추협은 내부 인력강화와 정세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1985년 4월 기구를 대폭 강화했다. 공동의장 밑에 두 명의 부의장을 두었다. 동교동계는 예춘호, 상도동계는 윤혁표가 선임되었다. 특별위원회도 대폭 증가되었다. 증설된 위원회는 지방자치연구위원회를 비롯하여 국방, 국제, 재경, 교육, 농수산, 상공, 건설, 보건사회, 환경, 노동, 자유언론, 문화, 과학기술, 청년, 여성, 재해대책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기관지 민주통신을 발간하는 주간과 부주간 제도를 신설했다. 특별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위원들로 구성하고, 각 부서는 종전의 부장, 차장의 직제에서 국장과 부국장 체제로 상향조정했다. 기구표상으로 정부조직에 버금가는, 예비정부 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민추협은 7월 17일 제헌절을 맞아 현행 헌법상의 반민주적 독소를 규명하고 민주헌정 정립을 위한 국민 각계의 의견을 수렴, 여타 민주화추진기구와 함께 민주헌법연구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 고 밝혔다.

민추협은 전두환 정권이 변칙적으로 개헌을 단행하여 대통령간선제 등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데 대해 이를 바로잡고자 우선적으로 개헌을 위한 민주헌법연구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특위는 위원장 이민우, 부위원장 장명순, 위원 김명윤, 김창근, 문부식, 조승형, 채명석 등이다.

전두환 정권의 민추협 탄압은 전방위적으로 자행되었다. 사무실 폐쇄를 항의하는 회직자 9명을 연행하고,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 참관을 초청받은 김상현 공동의장권한대행과 김동영 운영소위원, 김덕용 운영위원 등의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다. 이를 항의하자 이들을 불법 연행했다. 안기부가 일부 운영위원을 연행하여 사퇴서를 강요하고, 김대중 고문의 옥중서한집을 판매금지 시키는가 하면 김영삼 공동의장을 수사기관원들이 수시로 미행했다.

8 . 15 광복절을 맞아 민추협은 김대중, 김영삼, 김상현의 명의로 <민주화된 사회의 건설만이 참다운 해방의 완결이다>는 광복절 메시지를 발표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제 민족을 짓밟는 사람들이 새로운 억압자로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들은 일제가 이 땅의 식민지 백성을 억압했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원용하여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 라고 주장하고, 구속민주인사 석방, 해직교수 복직, 정치규제 철폐, 반민주적 악법 개폐, 집권층 부정부패 척결, 민주화운동 분열, 이간책동 중지 등을 촉구했다. 성명은 결론 부문에서 오늘의 상황은 유신체제의 말기보다 더 나쁜 증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운동은 민주화할 수 있는 기회의 포착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이룩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힘까지를 국민 내부에 축적할 것이어야 한다. 민주화는 제2의 해방운동이다 고 역설했다.

민추협은 창립 이래 정권의 탄압을 받고, 제도언론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면서도 인권옹호와 대정부투쟁을 강화하여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시국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자체홍보를 통해 이를 국민에게 직접 알렸다. 84년 10월부터 기관지 <민주통신>을 발행했다.
 
 

올려짐: 2018년 3월 17일, 토 6: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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