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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030718
합작선언 1년여 만에 민추협 결성
[김영삼 평전 66] 민주투쟁의 진원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 2002년 5월 17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18주년 기념식에서 김상현, 김명윤 공동이사장과 민주당 한화갑대표, 공동회장인 한나라당 김덕룡의원 등이 기념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있다.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두 김씨의 연대가 이루어지면서 상도동계의 이민우, 최형우, 윤혁표, 김명윤, 김동영, 동교동계의 김녹영, 박성철, 박종률, 김상현, 김윤식 등 5인씩 10인 소위원회가 구성되고, 여기서 운영위원 선정, 기구 . 투쟁목표 등이 마련되었다.

민추협이 발족하는 데는 김영삼의 단식투쟁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지만, 출범하기까지에는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등 재야 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70년대 민주화투쟁을 지도해 온 재야 주류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던 중 5 .17 사태를 맞았고, 그 중심인물 상당수가 조작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어 2년 여의 옥고를 치르고 1982년 말 출옥, 1983년 초부터 다시 민주화투쟁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재야의 함석헌, 홍남순, 이문영, 예춘호 등은 제2국민선언을 주도하고 김영삼 단식에 동참하면서 두 김씨의 단합과 재야 정치인들의 결속을 촉구하면서 연합전선 형성을 추진했다.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세 사람은 1984년 5월 30일 8개항의 합의서를 만들어 국내의 김영삼계와 접촉하고, 미국에는 고려대 교수로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복역하고 풀려난 이문영이 직접 도미하여 김대중과 만나 84년을 한국 민주화를 위한 전환의 해로 믿으면서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범민주세력의 단합이 극히 필요하며 이러한 뜻에서 재야민주세력은 민주화를 위해 성실하고 책임 있게 투쟁하려는 정치인과의 협력관계를 강화시켜야 한다.:(주석 5)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합의서의 원칙에 따라 우선 두 김씨계열 정치인의 단합이 모색되었다.

4월 26일 예춘호의 집에서 김녹영, 박영록, 예춘호 (김대중계)와 이민우, 최형우, 김명윤 (김영삼계) 그리고 김영삼과 김상현이 참석한 가운데 모임의 명칭, 발기위원 선정 등이 논의되었다.

이 자리에서 명칭을 김영삼은 민주구국투쟁동지회, 김상현은 민주화추진간담회를 각각 내놓았으나 논의 끝에 예춘호가 제시한 민주화추진협의회로 결정되었다. 민추협 탄생의 산파역 노릇을 한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3인의 합의서는 다음과 같다.

1. 양 김씨 등 정치인의 민주화를 위한 공동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연합체다.
2. 단일조직이 아니고 양 김씨 등 정치인의 2원적 협의기구다.
3. 모든 행동은 양측의 충분한 협의로 결정된 사항에 한한다.
4. 김대중씨는 이 협의회 고문이며 고문은 1인에 한한다.
5. 의장은 공동의장 2인이며 김영삼씨계는 김영삼씨가 의장이고, 김대중씨계는 김대중계 합의에 따라 선출된 공동의장 권한대행이 담당한다.
6. 이 협의회는 민주화추진협의회라 칭한다.
7. 회칙은 불문율로 하고 회칙에 준하는 모든 것은 수시 양측이 협의로 결정한다.
8.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도 합의사항에 동의한다. (주석 6)

이 합의서의 원칙에 따라 양측은 운영위원 인선, 사무처기구 마련 등 실무준비를 서둘렀다. 정권투쟁과 민주화를 추진하는 거대한 정치조직이 규칙이나 정관이 없이 불문율 에 따라 운영하게 된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그동안 두 진영의 갈등과 간극이 심했기 때문에 매사를 협의와 합의를 거쳐 화학적 일체를 이루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민추협은 처음부터 불문율 로 운영되었다.

민추협은 발족에서부터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하여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는 1987년 12월 31일 해산될 때까지 3년 반 동안 정관이나 회칙 없이 불문율 로 운영하고 양측 협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특수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운영의 혼선과 비능률, 갈등이 가시지 않았지만 협의와 합의과정을 통해 민주적 운영을 시도했다.

"당시 민추의 정관과 회칙에 대해 본인(김상현)은 민주투쟁에 있어 우리들이 동지애와 신뢰로써, 더구나 민주화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자는 것인데, 정보정치의 상황 하에서 정관과 회칙을 만들어 거기에 얽매이기보다, 우리가 민주화를 왜 추진해야 하는가, 그리고 군사독재 정권을 왜 종식시켜야 하는가 하는 우리의 입장과 투쟁이념을 설정하고 선언하며 행동방침으로 정할 때 합의와 관례에 따라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다시 말하면 회칙과 정관 없이 선언문만으로 민추를 운영하자는 데 합의를 보았다. 그리하여 민추는 지금껏 회칙과 정관 없이 훌륭하게 운영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선례로서 후세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주석 7)

상도동계에서는 공동의장을 당연히 김영삼이 맡게 되었지만, 동교동계에서는 약간의 혼선이 일어났다. 김대중은 미국에서 공동대표에 예춘호를 지명했다. 그러나 예춘호가 자신은 민추협이 결성되면 재야로 복귀하기로 하여 이를 사양하고, 김상현이 대안으로 제기되었지만, 민추협 결성에 동교동계로서 크게 역할을 해 온 박성철 등이 극도로 반대하여 선정이 쉽지 않았다.

진통 끝에 박성철 등의 양해를 얻어 김상현이 공동의장 권한대행으로 선정되어, 민추협의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양측 64명의 운영위원과 상임위원도 선정되었다. 상임위원 인선에는 곡절이 따랐다.

야당성과 활동경력이 중시되었습니다. 공화당 출신인 박찬종, 김창근 양씨의 상임운영위원 임명문제로 논란이 일어 일차적으로 옵서버로 하자고 하여 통과되었고, 김철, 한영수씨 등은 5공 입법의원이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회의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류되었습니다. (주석 8)

6월 14일 외교구락부에서 민추협 창립대회가 거행되었다. 민추협은 이날 대회의 성명에서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농민 등 자신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민생운동이 나라와 세계의 모든 정의 평화운동에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 조직적인 민주화운동을 전개, 반민주적 제도의 폐기 또는 개정을 위하여 투쟁을 집중할 것 을 천명했다.

<주석>
5> 구자호, 앞의 책, 예춘호 소장자료. 윤혁표 부의장좌담, <민추협의 발족과 회고>, 110쪽.
6> 예춘호씨 소장자료, 앞의 책, 115쪽.
7> 김상현 증언, <민추협창립과정>, 앞의 책, 121쪽
8> 윤혁표 부의장 증언, 앞의 책, 112쪽
 
 

올려짐: 2018년 3월 10일, 토 9:4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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