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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65
DJ-YS 서울과 워싱턴서 합작선언
[김영삼 평전 65] 민주투쟁의 진원지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1984년 5월 17일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는 김영삼의 주도로 광주민주항쟁 4주년에 즈음하여 서울 외교구락부에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결성했다. 1년 전에 김영삼이 '민주화 5개항'을 놓고 단식을 시작하면서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민추협은 83년 8월 서울과 워싱턴에서 <김대중ㆍ김영삼ㆍ8ㆍ15 공동선언>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80년 ‘서울의 봄' 이래 갈라섰던 야권의 양대 진영이 합쳐 반독재투쟁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김영삼의 단식 소식을 접한 김대중은 워싱턴에서 직접전화를 걸어 격려하면서 민주화에 힘을 모을 것에 뜻을 함께했다.

한국정치사에서 정당도 아니고 재야단체도 아닌 민주화추진협의회(The Council for promotion of Democracy, 약칭 민추협)는 전두환 5공시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전위 역할을 한 재야의 특수 정치단체이다. 제도권 정당이 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난, 군부세력에 도전하는 민간의 저항조직이었다.

민추협은 김영삼ㆍ김대중을 공동의장(김대중 의장을 대리하여 김상현)으로 하고 부의장 19명, 운영위원 452명, 16개 국局, 32개부서의 방대한 조직을 갖췄다. 부의장은 김명윤ㆍ김창근ㆍ박종태ㆍ예춘호ㆍ용남진ㆍ홍영기ㆍ박영록ㆍ박한상ㆍ윤혁표ㆍ태윤기ㆍ권오태ㆍ김영배ㆍ김윤식ㆍ박일ㆍ안필수 등이 맡았다. 민추협은 의장단을 포함한 상임운영위원회를 두고, 간사장은 황명수, 대변인은 한광옥이었다.

민추협은 84년 5월 18일 김대중ㆍ김영삼 공동의장 이름으로 발표한 <민주화투쟁선언>에서 "우리는 군인의 정치개입이 민주헌정을 후퇴시키고 민족사의 불행과 안보상의 불안을 초래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군인이 본연의 사명인 신성한 국방의무로 복귀할 것을 주장하고 시민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투쟁한다"는 등 9개항의 내용을 발표했다. (주석 1)

민추협은 발족하면서 <민주화투쟁 선언문>을 발표했다.(요지)

우리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절대적 사명임과 민주주의는 오직 국민의 투쟁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는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유신독재에 대한 전(全)민중적 항의와 열망의 표현으로 나타난 10ㆍ26사태를 민주주의로 수렴ㆍ승화시키지 못한 것이 12ㆍ12사태, 5ㆍ17비상계엄조치와 광주사태, 그리고 그후에 전개된 현정권의 폭력과 기만에 의한 것으로서, 그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실한 민족사의 치욕임을 국민과 더불어 확인했다.

현정권은 소수의 부패한 특권층만을 위해서 절대다수 국민들을 핍박하고 수탈해 오고 있다. 우리는 우리 국민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국가의 존엄을 해치는 군부독재를 청산해서,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고,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정부의 수립을 위하여, 민주화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이를 위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발족한다. (주석 2)


10ㆍ26사태 이후 정치적 경쟁 관계에 있던 두 세력이 함께 반독재 정치단체를 조직한 것은 큰 의미가 있었고, 이후 정국변화의 변수가 되었다. 10.26사태 이후 4년 여 만에 두 진영은 모처럼 화합하고 힘을 모으게 된 것이다.

민추협은 6월 14일 64명의 1차 운영위원을 발표하고 기구도 마련하였다. 운영위원은 상도동계의 이민우 . 최형우 . 김명윤 . 김동영 . 윤혁표 . 김덕룡 . 문부식 등과 범동교동계의 박성철 . 김상현 . 김녹영 . 조연하 . 김종완 . 박종률 . 박영록 . 박종태 . 양순직 . 최영근 . 송원영 . 김창완 등 50대 50의 비율로 선정되었다.

민추협이 발족하기까지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양측 밀사들이 노력하고 미국에 망명 중인 김대중과 연락을 위해 국내에서는 국제통화가 감청되어 비밀이 새나가는 것을 막고자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미국에 가는 인편을 통해 공동선언문의 내용이 사전에 조율되었다. 이렇게 하여 광복 38주년인 83년 8월 15일을 기해 워싱턴과 서울에서 두 김씨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민주화를 위해 손을 굳게 잡고 공동투쟁 대열에 앞장서겠다고 천명했다.

두 김씨는 <8 . 15 - 38번째의 8 . 15를 맞으며> 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민주주의의 실현만이 갈라진 민족이 합쳐지는 통일로 가는 길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시킴으로서만이 나라의 위신과 민중의 존엄을 국제사회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부정과 불의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유신정권 이래 국제사회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추태로 인하여 한국 국민이 국제 사회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것도 바로 독재정권의 현실적 존재로 인한 것입니다. 라고 주장했다.

두 김씨는 이 성명에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분열했던 것을 사과하고 온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앞에서 우리 두 사람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하나가 되어 손잡고 우리 민족사의 지상과제를 향하여 함께 나아가려 한다. (주석 3)라고 결속을 다짐했다.

두 김씨의 공동성명 발표는 국내보도가 통제된 가운데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김대중과 김영삼씨 연대하여 민주화투쟁>이란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이 성명은 김대중 . 김영삼씨가 공동명의로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되었으며 양 김씨의 민주화를 위한 성명은 처음 있었던 것이다. 라고 전제, 한국에서 반체제 세력을 둘로 나누고 있던 양 파의 결합은 이후 민주화투쟁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고 전망했다.

성명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이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국민에 대한 탄압을 인정하는 행태가 되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서 두 김씨가 ① 정치범과 양심범의 석방 . 복권 ② 제적학생 해임교수 복교복직 ③ 추방된 언론인 해직 ④ 언론자유보장 ⑤ 정치활동 규제해금 등을 요구했다” 고 보도하고, “두 사람은 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답하고 민족과 민주제단에 두 손 모아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바치겠다.” 고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워싱턴의 오다 특파원 발 기사로 미국 체재 중인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후보의 보좌관은 15일 한국해방 기념일을 맞아 김영삼 전 신민당총재와 연명하여 한국에 민주회복을 외치며 성명을 발표했다 고 보도했다. 신문은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의 야당 정치인의 이러한 행동은 재미한국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 전했다. (주석 4) 민추협 발족의 모태가 된 8 . 15 선언 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먼저 보도되고 알려졌다.

<주석>
1. 김삼웅, <반독재투쟁의 전위기구 민주화추진 협의회>, <해방후 정치사 100장면>, 337~338쪽, 가람기획, 1994.
2. 앞과 같음.
3. 구자호 외 편, <민추사>, 민주화추진협의회 발행, 70~71쪽, 1987.
4. <아사히신문>, 1983년 8월 13일치, 서울 고바야시 특파원.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3월 04일, 일 11: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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