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18년 9월 21일, 금 9:33 a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64
민추협 발족, 반독재 투쟁
[김영삼 평전 64] 민주산악회 조직과 목숨을 건 단식투쟁



▲ 김대중과 함께 반독재 투쟁에 나선 김영삼.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4 19 민주혁명이 5 16쿠데타로 전복된 이래 장장 18년 동안 지속된 1인 독재자가 10.26사태로 암살당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은 신군부 전두환 일당의 5.17쿠데타로 산산히 짓밟혔다. 역사가 직선보다곡선 또는 지그재그나 나선형으로 진행된다고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는 거듭되는 반동현상으로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전두환은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이래 철권통치로 일관하여 정치활동규제, 학원ㆍ노동자탄압, 언론통폐합 등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제반 조치를 취하고 고문ㆍ구속ㆍ투옥 등으로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한편, 각종 대형 권력형 부정비리를 저질러 사회적 비난을 가중시켰다.

60~70년대 군부정권의 성장정책에 희생당한 노동자ㆍ농민ㆍ도시서민 등 기층세력은 80년대에 이르러 변혁운동의 주체로서 크게 질적ㆍ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광주항쟁을 전후하여 보여준 미국의 한국군부정권 비호 정책에 대해 비판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1982년 1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군부 정권은 일부 재벌기업ㆍ제도언론과 결탁하여 민주세력에 파쇼적 탄압을 자행하고, 관제 정당은 어용기관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광주항쟁 이후 크게 성장해 온 민주세력은 반독재 민주화운동 노선에 대해 보다 과학적인 방법론을 찾게 되고, 각 분야에서 성장한 주체역량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광주학살 이후 파쇼 정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최전선은 학생과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광주 희생자 중에서도 이들이 압도한다. 10ㆍ26, 5ㆍ17 그리고 초기 전두환 정권의 헌정유린 사태에서 극소수를 제외하고, 정치인들이 가장 몸을 사렸다. 반유신 투쟁에서 앞장섰던 야당인사들도 폭압의 칼춤이 이어지자 침묵하거나, 정권(정부요직 및 민정당)에 참여 또는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민한당)에 참여하였다.

1980년 5.17비상계엄확대조치와 함께 선포된 계엄포고령 제10호로 모든 정치활동이 중지되면서 한국정통야당의 맥이 단절되었다. 1980년 11월 3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여기서 이른바 '구시대 정치인'으로 분류된 567명의 정치인이 규제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어느 정도 정권수립이 안정됐다고 판단하여 1983년 2월 '국민화합조치'의 일환으로 1차 해금을 한데 이어 1984년 2월과 11월에 2,3차 해금을 단행하고, 김대중ㆍ김영삼 등 '거물급' 14인은 계속 묶어두었다가 제12대 총선이 끝난 1985년 3월 6일 마지막으로 정치활동 규제대상에서 해제하였다. 민추협은 이와 같은 정세의 변화 속에서 추진되었다.

1983년 초부터 김영삼이 조직한 민주산악회를 중심으로 1,2차로 해금된 정치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정통 야당의 한 맥을 차지해 온 김대중 중심의 동교동계는 신군부 등장과 더불어 풍비박산이 되었다. 야당의 대통령후보를 지내고 박정희시대에 일본에서 납치되는 등 사선을 넘어온 김대중은 전두환 정권에서 다시 사형선고를 받고 20년으로 감형되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동교동계의 많은 인사들이 날조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거나 정치규제에 묶인 데 비해 5공 치하의 상도동계는 비교적 덜 탄압 받는 처지이어서 정치활동을 빨리 재개할 수가 있었다. 구 야권 정치인들과 구 여권 출신 정치인 중에서도 5공 정권에서 소외되거나 참여를 거부해 온 정치인과 재야 인사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이즈음 각계 각층의 민주세력은 산발적으로 혹은 연대하여 반 전두환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1984년 신학기가 되면서 대학생들은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학민추)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학자추)를 구성하여 제적학생복교추진위원회와 함께 지도휴학제 폐지 및 강제징집 철폐, 군복무 중 사망한 학우의 사망원인 규명, 학자추 또는 총학생회 공식인정, 평교수협의회 부활, 해직교수 원적대 복직, 학원사찰 중지, 학도호국단 해체, 언론기본법 철폐, 해직근로자 복직, 정치인 전면해금, 노조탄압 중지, 집시법 폐지 등 학내민주화와 사회민주화를 내걸고 교내시위와 가두시위ㆍ철야농성 등 활발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학생들의 민주화투쟁은 5.18광주학살 이래 한 때 움츠려 있던 민주세력에게 새로운 운동의 불씨가 되고, 각계 사회운동단체들과 연대투쟁을 광범하게 조직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추협은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 속에서 발족되었다.
 
 

올려짐: 2018년 2월 25일, 일 10:36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koramtour.net
http://www.geo10.com/krus/fl/g/0401/954/orientalmart.htm
www.smiledentalfl.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thefountainsalonandspa.com
www.miju24.com/market_info/12701
www.ohmynews.com
www.saegilchurch.net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www.okja.org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